2020년 7월호

[영상] 조영남이 대법원에서 미처 못한 이야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6-25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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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씨. [홍중식 기자]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씨. [홍중식 기자]

    가수 조영남(75) 씨가 25일 이른바 ‘그림 대작 사기’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씨는 조수에게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한 뒤 자기 작품으로 속여 판매했다는 혐의로 2016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후 만 4년간 이어진 재판은 ‘창작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대법원은 이 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해 5월 28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검찰과 조씨 측 참고인은 재판정에서 ‘조수가 참여한 그림을 조씨 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당시 조씨는 자신이 ‘창작자’임을 입증할 작품 다섯 점을 들고 법정에 나갔으나 준비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법원 선고로 무죄가 확정된 직후 ‘신동아’와 만난 조씨는 자신이 대법관들 앞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작품들을 공개했다. 첫 작품은 화병에 화투꽃이 꽂혀 있는 모습을 그린 ‘극동에서 온 꽃’이다. 


    조영남 씨의 작품들. [홍중식 기자]

    조영남 씨의 작품들. [홍중식 기자]

    -왜 이 그림을 대법원에 가져갔나. 

    “화투를 ‘극동에서 온 꽃’이라고 한 이 제목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다른 그림을 들어 보이며) 화투 다섯 장을 그려 종교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이 작품 제목은 ‘항상 영광(always glory)’이다. 이런 미술적인 제목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다른 그림을 가리키며) 이 작품은 화투 마흔여덟 장 가운데 가장 홀대받는 흑싸리를 모아놓은 것이다. 제목은 ‘겸손은 힘들어(hard to be humble)’다. 이러한 이중성이 중요하다. 또 이어서 흑싸리를 한데 뭉쳐놓고 위에는 팔공산을 띄운, 이 작품에 내가 미국 현대 문학의 선두 주자인 샐린저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catcher in the ry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런 제목에 유의해야 한다. 화투를 어떻게 그렸느냐, 어떤 캔버스에 그렸느냐, 조수를 썼느냐 안 썼느냐는 (창작자를 정하는 데) 아무 관계가 없다. 홀대받는 화투를 내가 왜 이렇게 멋있게 그렸는지, 이것에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 한 작품은 뭔가. 

    “이건 ‘조수 사건’ 나고 내가 곧장 만든 거다. (대작화가로 알려진) 송모 씨 말고 내 딸이 그렸다. 내 딸이 송모 씨보다 훨씬 잘 그렸지. 그러나 이건 내 그림이다. 그 얘기를 하려고 공개변론에 그림 다섯 점을 들고 갔는데, 거추장스럽고 모양새가 안 좋은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다.” 

    -조수가 그림에 참여했다 해도 창작자가 될 수는 없다는 말씀인가. 

    “화투를 ‘극동에서 온 꽃’이라고 정의한 작가의 결정, 그 철학성, 미학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다. 그날 법정에서 (검찰 쪽 참고인한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멋있는 팝 아트 제목을 본 적 있습니까’ 하고 묻고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했다. 

    내가 세계 미술사를 다 뒤져봐도 결국 (중요한 건) 아이디어다. 피카소, 반 고흐 등이 다 그랬다. 내 작품 특징은 문인화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그림 그리고 나면 한문으로 뭐라고 쓰고 낙관을 찍었다. 나는 그걸 이어 받아서 반드시 내 그림에 제목을 넣는다. 어떤 화가들은 제목 넣는 것에 대해 유치하다, 격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반드시 넣는다. 보는 사람들이 금방 알 수 있게.” 

    -1심에서는 실제 그림을 조수가 그렸는데 구매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아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하지 않았나. 

    “하지만 화투장 그리는 것보다는 제목 붙이는 작업이 훨씬 중요한 거다. 화투장 그리려면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든다. 언제 이걸 내가 다 하겠나. 한 가지 아쉬운 건 (미술계에) 조수 쓰는 교수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그때 나서서 ‘나도 조수를 쓴다’고 안 한 것, 그 용기 없음이 아쉽다.” 

    조씨는 5월 28일 공개변론에서 “이런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이 된 작품이 ‘고유한 아이디어를 표현한 창작물’이라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대법관들에게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길 청한다”고 호소했다. 조씨는 무죄가 확정된 뒤 “이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작가가 돼야 한다는 ‘프레셔’를 느낀다”며 “내 전시에 온 사람들이 ‘이렇게 허접한 그림 그리는 사람 때문에 5년 동안 그 소란이 있었단 말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게, 사람들이 와서 ‘아 그럴 만 했구나’ 할 만큼 그리려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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