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서 승마하는 김정은 포착하는 ‘KH-13’
위성·정찰기가 겹눈으로 北 훑으며 이상징후 감시
제원·능력 베일에 가려진 ‘극비 기체’ RQ-180
5만 대 넘는 PC에 악성코드 심어 정보이동 감시
KH-12, 키홀위성. [global security 홈페이지]
일찍이 손자(孫武)는 ‘손자병법’ 3장 모공(謀攻)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미국은 그 지피(知彼)를 위해 4개 유형 17개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정보기관은 국가정보국(DNI) 통제하에 철저하게 전문화·분업화돼 있다. 이들 기관이 1년 사용하는 공식 예산이 800억 달러에 달한다. 정보 수집에 동원되는 각종 정찰기나 선박 등 장비 구입비용이 예산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 예산이다.
막대한 예산을 쓰는 미국 정보기관 중 장비 면에서 첨단을 달리는 곳은 단연 국가정찰국(NRO·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이다. NRO의 위성은 신호정보(SIGINT·시긴트)·지리공간정보(GEOINT·지오인트)·통신중계 용도로 분류된다. 그중 시긴트와 지오인트가 이른바 ‘정찰위성’이다.
시긴트 정찰위성은 ‘네메시스(NEMESIS)’ ‘오리온(Orion)’ ‘레이븐(Raven)’ 등 최소 5개 넘는 위성이 존재한다. 이 위성들은 지구동기궤도에서 100~150m 크기의 전개형 메시(Mesh) 안테나를 이용해 지구상 거의 모든 대역의 전파를 수집한다.
시긴트 위성들은 적의 통신 감청(COMINT)은 물론 레이더 전파 수집(ELINT), 미사일 텔레메트리 정보 수집(MASINT) 등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저궤도에 있는 지오인트 위성이 투입된다. 지오인트 위성은 합성개구레이더(SAR·Synthetic Aperture Radar)를 이용하는 레이더 정찰위성 ‘토파즈(TOPAZ)’ 시리즈와 광학장비를 이용하는 정찰위성 ‘키홀(Key Hole)’ 시리즈가 있다.
토파즈 시리즈는 NROL-25 또는 USA-234로 알려진 위성이다. 고도 1100㎞ 상공을 돌며 SAR 레이더를 이용해 주·야간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데, 촬영 해상도는 약 10㎝ 수준으로 차량까지 식별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SAR 위성은 주·야와 기상에 관계없이 원하는 지역을 촬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레이더 전파를 이용하는 장비이기에 대상의 형상은 식별할 수 있어도 색상은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고해상도 전자광학카메라를 탑재한 광학정찰위성 키홀 시리즈를 운용하고 있다.
180초 분량 영상 촬영도 가능
현재 우주에 전개된 키홀 시리즈는 1978년부터 운용한 KH-11의 개량형이 주력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KH-12는 KH-11 Block III 모델이고, KH-13으로 알려진 위성은 KH-11 Block IV 모델인데, 현재는 EIS(Enhanced Imaging System)로 통칭된다.이 위성들의 정확한 제원은 극비다. 국제기구에 등록된 궤도나 아마추어 천체 관측 동호인들의 망원경에 관측된 바에 따르면 330~450㎞ 사이의 저궤도를 돌며 목표 지역 상공을 하루 두 차례 정도 지나간다.
이 위성들이 지구상 그 어떤 위성보다 압도적 성능을 갖췄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NRO는 2012년 노후화한 위성 2기를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넘긴 적이 있다. NRO가 구식이라며 넘긴 이 위성들이 NASA 위성들보다 압도적 성능을 가졌다는 사실에 NASA 관계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내용을 종합하면 KH-12의 해상도는 10㎝급이고, 5초에 1회 정도 사진 촬영과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다. 이보다 더 진보한 KH-13은 1㎝급 해상도의 사진뿐 아니라 180초 분량의 영상 촬영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1㎝ 해상도는 가로 1㎝, 세로 1㎝를 하나의 점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이 정도 능력이면 지상의 차종이나 미사일을 완벽하게 식별하는 것은 물론 간판이나 현수막의 글자를 인식할 수 있다. 사람의 체형이나 체구를 인식해 인물 추정까지 가능한 수준이다. 쉽게 말해 강원 원산시의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인물이 김정은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으나 고위인사가 승마를 즐긴다고 추정할 수는 있다.
미국이 보유한 정찰위성의 수명은 최장 10년가량이다. 임무 소요에 따라 궤도를 변경하면서 수명이 감소하기에 실제 수명은 5년 안팎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매년 1~2기씩 위성을 쏘아 올려 정찰위성 수십 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위성 하나의 가격이 20억~25억 달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어느 수준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미국 공군 RC-135W 정찰기와 주한미군 RC-12X 정찰기가 5월 20일 한반도 상공에 동시에 전개됐다. 북한의 통신·교신을 감청해 미사일 도발 징후 등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美정찰기 동시 출격 北 훑었다… U-2S는 수도권서 김정은 식별
미군이 보유한 U-2S 정찰기. [Airliners 홈페이지 ]
정찰기는 작전 고도와 정보 수집 가능 범위에 따라 ‘전략정찰기’와 ‘전술정찰기’로 구분된다. 전략정찰기는 전구(Theater)급 정보수집 임무를 담당하며 수백㎞ 거리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한다. 전술정찰기는 단위 부대에서 운용하며 전방 지역의 적 상황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전략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정찰기 전력은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합동기지를 사령부로 둔 16공군(16th Air Force) 관할이다. 16공군에는 무인정찰기를 주로 운용하는 9정찰비행단과 319정찰비행단, 각종 대형 정찰기를 운용하는 55비행단 등 9개 비행단이 소속돼 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9정찰비행단은 냉전 시절부터 고고도 유인 정찰기인 U-2를 운용해 온 부대다. 이 부대 소속 U-2S 정찰기 3대가 현재 한국의 오산공군기지에 전개돼 있다.
U-2S 정찰기는 기체는 구식이지만, 탑재된 정찰 장비 성능은 최신형 정찰기 글로벌호크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산에 배치된 U-2S는 최첨단 전자광학정찰시스템인 MS-177과 아날로그 카메라인 OBR(Optic Bar Camera), 고성능 통신감청기를 주력 정찰 장비로 탑재하고 있다.
MS-177은 2016년부터 정찰기에 탑재된 최신형 전자광학카메라다. 정확한 성능은 비밀이지만, 고도 20㎞, 거리 150㎞에서 10㎝급 해상도를 가지고 있고, 고도를 10㎞로 내리고 거리를 60~70㎞까지 좁히면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고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감시정찰기 RQ-4. [미국 공군 홈페이지]
OBR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수도권 상공에서 평양 일대를 촬영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식별할 수 있을 만큼의 해상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은 U-2S는 물론 글로벌호크에도 MS-177과 OBR을 통합한 정찰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제원·능력 베일에 가려진 ‘극비 기체’ RQ-180
RQ-180. [The National Interest 제공]
전문가들이 RQ-170의 성능을 토대로 추정한 RQ-180의 정찰 능력은 가공할 수준이다. 현존 최고 수준의 스텔스 설계가 적용돼 어떠한 레이더로도 탐지할 수 없으며, 기존 무인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고고도 장기 체공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RQ-180에는 U-2S나 RQ-4보다 더욱 향상된 성능의 정찰 장비가 탑재돼 있으며, 위협이 되는 표적에 대해 재밍 등 전자전을 수행할 능력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면 대낮에 평양 상공을 휘젓고 다녀도 아무도 모를 수준이다.
해외 작전 내용이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 9정찰비행단과 달리 55비행단 소속 정찰기들은 수시로 그 모습과 항적을 드러낸다. 최근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한 이른바 ‘135 시리즈’가 55비행단 소속이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펏공군기지를 본부로 둔 55비행단이 운용하는 135시리즈는 크게 5종류다. 200~250㎞ 거리에서 적의 레이더 전파나 통신 전파를 수집·감청하는 RC-135V/W 리벳조인트, 적의 무선통신을 실시간 감청하는 RC-135U 컴뱃센트, 탄도미사일이나 위성 발사체 궤도를 추적하는 RC-135S 코브라볼은 최근 한반도 상공에서 자주 식별된 정찰기다.
이 밖에도 대기 중 인공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집해 핵실험 여부를 식별하는 WC-135W 콘스탄트 피닉스 기상정찰기, 상대 국가의 동의를 얻어 통상 정찰 활동을 하는 OC-135B 오픈 스카이스 등이 대표적인 ‘135’ 시리즈다.
이처럼 미국의 정찰기들은 눈에 보이는 물체부터 보이지 않는 전파에 이르기까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범위에서 정보(Intelligence)를 수집해 이를 다른 자산으로 획득한 정보와 교차 검증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정밀하고 가치 있는 정보(Information)를 만들어낸다. 어지간한 나라는 흉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독보적 능력이다.
적성국뿐 아니라 동맹국 활동도 감시
에셜론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것으로 의심받은 영국의 멘위르 힐 미군기지. [위키피디아]
인공위성은 일정한 공전 주기에 따라 움직이고 그 궤도의 움직임은 어렵지 않게 추적이 가능하기에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 시각에 맞춰 활동을 중지하거나 위장망을 이용해 시설을 감추는 등의 대응이 가능하다. 정찰기 역시 레이더에 잡히기에 접근하는 것을 멀리서 확인하고 관련 움직임을 중단하거나 숨길 수 있다.
그러나 감시 대상 국가가 포착할 수 없는 은밀한 감시수단을 이용한다면 어떨까. 미국 정보기관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부터 이러한 감시수단을 고안하고 발전시켜 왔으며, 현재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감시정찰 자산을 전 세계에서 운용하고 있다.
냉전이 절정이던 1960년대 미국이 일본과 서독 등 주요 우방국에 설치한 울렌웨버(Wullenweber) 시스템이나 AN/FLR-12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시스템들은 거대한 코끼리 우리, 혹은 거대한 천체관측소처럼 생겼는데, 여기에 설치된 안테나들은 저주파는 물론 초단파(VHF)나 극초단파(UHF)를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데이터를 분석한다.
현재 NSA(국가안전보장국) 등 미국 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전파 수집 시스템의 구체적인 제식 명칭과 성능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970년대 미국이 일본에 넘긴 AN/FLR-12의 발전형인 J/FLR-4 감청 시스템의 경우 5000㎞ 이내의 전파를 수집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전파 정보 수집 기지는 일반적인 통신시설로 위장해 한국은 물론 일본, 영국, 독일, 호주 등 세계 주요 우방국 대부분에 설치돼 적성국뿐 아니라 동맹국의 활동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미국이 굳이 정찰기를 띄우지 않아도 북한군 전연군단의 평시 활동과 이상징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것은 이러한 무선 통신 감청 시스템 덕분이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미국은 거대한 덩치 때문에 그 존재가 드러나는 대규모 통신소 대신, 소형 안테나를 이용해 정보 수집 대상의 지근거리에서 감청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21세기 초부터 급속도로 확산된 인터넷 통신 내역을 전부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감청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일명 ‘스테이트룸 작전(Operation Stateroom)’이다.
이 작전은 2013년 NS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스노든이 폭로한 것은 이 작전 내용의 극히 일부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미국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은 주요 국가들의 미국대사관이나 영사관 건물, 미국 정보기관이 만든 위장회사가 입주한 건물 등에 소형 감청용 안테나와 감청 시스템을 구축해 근거리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장거리 통신 감청 시스템이 수행한 것처럼 무선통신을 감청하는 것은 물론 지근거리의 건물 내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까지 감청했다.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이 베이징에서 이러한 기지들을 광범위하게 가동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중국은 미국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베이징 전역을 이 잡듯이 수색하기도 했다.
무선 감청과 더불어 스테이트룸의 또 다른 핵심 활동은 전 세계의 데이터 네트워크 장악이었다. 미국은 세계 20개 주요 지점에 핵심 기지를 설치하고 대륙간 초고속 광케이블망을 오가는 모든 인터넷 데이터를 수집하고 최소 5만 대 이상의 PC에 악성코드를 심어 대상 국가의 온라인 정보 이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감시했다.
에셜론 프로젝트는 감시정찰 활동 일부
미국의 전방위적 감청을 폭로한 전 NS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 [AP=뉴시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2013년 스노든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 그 누구도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감시 네트워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국은 더욱 은밀하게, 더욱 정교하게 감시정찰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온라인’하는 순간 그 누구도 미국의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