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단독] ‘그림 사기’ 무죄 확정 조영남 “감옥 갈 준비했다, 역사적 판결 남겨 뿌듯”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6-25 11: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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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씨. [홍중식 기자]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씨. [홍중식 기자]

    “나 감옥 안 가도 되냐? 감옥 갈 일 없어?” 

    25일 오전 10시 21분,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가수 조영남(75) 씨가 처음 한 얘기다. 이날 오전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모 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3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16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조씨가 판매한 그림의 상당 부분을 송씨가 그렸으며, 조씨가 이런 사실을 구매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이 혐의를 인정해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8년 8월 항소심은 이를 뒤집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화투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은 조씨 고유의 아이디어”라며 “송씨 등은 조씨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일 뿐이며, 조씨가 직접 그렸는지 여부는 반드시 구매자에게 고지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이에 불복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대법원에서 조씨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조씨는 이날 집에서 판결 결과를 기다렸다. 그에게 처음 ‘무죄 확정’ 소식을 전해준 이는 가수 임백천(62) 씨다. 이후 곧바로 상고심에서 조씨를 변호한 강애리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조씨는 만면에 웃음을 띄고 “강 변호사 축하해. 당신 덕이야”라고 인사했다. 그와의 일문일답. 



    -소감 한 말씀 해 달라. 

    “지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로 떠오르는 말이 없다.” 

    -오늘 아침에 어떤 마음이었나. 

    “감옥 갈 준비를 했다. 역사를 보면 임금이 (죄인을) 유배를 보냈다가 사약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유배 보냈다가 또 다시 오라는 글을 보내기도 한다. 나는 임금이 어떤 조치를 취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막 ‘죄를 안 지었으니까 안심해라’ 이런 연락이 온 거고, 참 다행이구나 싶다. 내가 죄를 안 지었구나. 

    죄를 지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 사건 나고 한 번도. 그런데 검사님, 판사님이 미술을 잘 모른다는 걸 느끼고 암담했었지. 그래서 미술책을 썼다. 오늘 바로 출판될 거다. 이 사건으로 내가 미술한다는 게 세상에 많이 알려졌고, 한국에도 현대 미술이 있구나 하는 게 알려졌다. 큰 일 한 것 같다.” 

    -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보나. 

    “법원이 그림에 조수를 썼다는 걸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없던 판례다. 처음 있는 거다. 내가 1심에서 유죄를 받는 바람에 재판이 길어졌고, 대법원까지 갔는데 그게 결국 나한테 도움이 됐다. 긴 시간 동안 더 많은 그림을 그렸고, 또 친구들과 교유를 두텁게 했다. 지금 보면 다 도움 된 것 같다.” 

    - 향후 계획이 있나. 

    “두 군데 정도 전시 제안이 있다. 가능한 한 빨리 그동안 작업한 작품 선보이겠다. 미술 사조가 인상파 추상파 입체파 등 많은데 나는 트로트파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대중, 민중이 알아먹기 쉬운 현대 미술이다. 이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 앞으로 다시 조수를 쓸 생각이 있나. 

    “미술계에 조수는 미켈란젤로 시대부터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를 그림 못 그린다, 실력 없다고 하는데 아니다. 내가 그린 작품이 많다. 하지만 다시 전시하고 바빠지면 조수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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