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이명(耳鳴), 스트레스가 주원인
진료받으러 왔다 펑펑 울고 가는 이명 환자 많아
여름철 요주의, 알레르기성 비염(鼻炎)
‘넣었다 뺐다 돌리는’ 보사침법(補瀉鍼法) 복원
tvN 드라마 ‘명불허전’ 원작 ‘허임’ 집필
해병대 출신 한의사 아들에게 의술 전수
[박해윤 기자]
서울 수서동에 위치한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이명·비염 분야에서 명의로 통한다. 1989년 경북 경주 안강에서 한의원을 연지 10년 만에 전국에서 모여든 환자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명성을 인정받았다. 요즘도 이곳은 각종 이비인후과 질환과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받으려는 환자들로 북적인다.
갑산한의원은 이명 외에도 비염(鼻炎) 치료로도 유명하다. 이 원장은 2006년 대구대 한의대 교수로 스카우트된 특별한 이력을 지녔는데, 당시 그는 일본 도야마의대와 협력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한의학적 비염 치료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 화제를 모았다. 한방 임상시험에 양의가 참가한 것도 처음이지만, 난치성 질환인 알레르기 비염에 대한 한방 치료의 효과를 객관화된 지표로 도출해 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과도한 이어폰 사용 조심해야
갑산한의원의 또 다른 강점은 ‘푸근함’이다. 4년 전 신축한 갑산한의원은 병원 전체가 한옥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 시골 외갓집에 온 듯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무 기둥과 나무 바닥은 물론이고 대기실 한쪽에는 평상도 놓여 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 원장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환자들을 맞는다. 이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료를 보다 보니, 환자들은 자신의 아픈 곳을 얘기하다 그만 펑펑 울어버리기도 한다.
“이명처럼 난치성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이에요. 환자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진심으로 환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죠. 이명의 원인 중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인데, ‘耳鳴(이명)’이란 뜻 자체가 ‘귀울음’이에요.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죠. 고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법도 찾을 수 있어요.”
실제로 증상에 따라 처방하는 약도 달라진다. 갱년기 여성처럼 열이 상체로 차올라 이명이 온 경우에는 단순히 몸의 열을 내려주는 약을 처방하면 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마음의 울화를 풀어주는 육울탕, 사물안신탕 등이 효과적이다.
우리 귀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치료 또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교감신경계가 흥분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몸에 열이 오른다. 한방에서는 귀가 차가워야 건강하다고 보는데, 스트레스로 화가 쌓여 귀가 뜨거워지면서 병이 생긴다. 이상곤 원장은 “귓속 달팽이관 안에 있는 유모세포는 평소에도 소리를 내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유모세포가 울음을 토한다. 그래서 병명도 귀울음, 즉 이명”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과도한 이어폰 사용으로 이명 증상을 보이는 환자도 늘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귀 안에 압력(소리)이 가해지면 신경세포가 손상돼 이명 내지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허준도 인정한 허임의 침술
이상곤 원장이 보사침법으로 이명 치료를 위해 혈자리에 침을 놓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이후 이 원장은 허임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소설 ‘조선제일침 허임’을 펴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이 소설은 2017년 인기리에 방영된 tvN 메디컬 드라마 ‘명불허전’의 원작이다. 이상곤 원장은 ‘조선제일침 허임’ 외에도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낮은 한의학’ ‘신한방임상이비인후과’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고, 5년째 ‘동아일보’에 ‘실록한의학’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보사침법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임금 선조는 이명을 크게 앓았는데, 이때 허임이 선조에게 침을 놓아 병을 다스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귀로 치밀어 오른 기(氣)를 손발에 침을 놓아 손발 끝으로 분산한 것. 문헌에 따르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준도 허임의 침술을 높게 평가했다. 허준은 어느 날 선조에게 “신은 침을 잘 모릅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라고 했을 정도로 허임의 침술은 유명했다. 이상곤 원장은 보사침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 침은 한 번만 찌르는 반면, 보사침법은 침을 놓을 때 깊이에 따라 3회에 걸쳐 찌르고, 찌를 때도 낚시를 하듯이 침을 살짝 올렸다가 내리고 3회씩 침을 뱅글뱅글 돌린다. 이렇게 총 9번을 돌리면서 침을 찌르면 혈에 폭발적인 기(氣)를 응축할 수 있다. 일자형의 쇠보다 돌돌 말린 스프링이 더 힘이 센 것과 같다.”
보사침법을 풍선에 비유하기도 한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몸에 기를 채우는 것이 ‘보(補)’이고, 반대로 ‘사(瀉)’는 풍선에서 공기를 빼는 것처럼 기를 빼는 것이다. 이명의 경우에는 사법을 주로 쓰는데, 바람을 빼는 작업으로 유모세포의 비정상적 흔들림을 진정시킨다는 게 이 원장의 주장이다.
비염의 주적은 에어컨
웅담을 넣어 만든 비염고를 환자 코 안에 바르고 있다. [박해윤 기자]
“예전에는 누런 콧물을 흘리는 증상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맑은 콧물과 재채기,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훨씬 많아요. 코는 외부 공기가 들어오면 0.25초 만에 36.5도가 되도록 데워서 심장과 폐에 그 열을 전달하는데, 이 기능이 약해지면 우리 몸은 차가운 공기를 적으로 간주하고 콧물이나 재채기로 이를 밀어냅니다. 이게 바로 비염의 대표적인 증상이죠.”
비염의 또 다른 원인은 점액 분비 능력 저하다. 이 원장은 “강아지도 늘 코가 촉촉해야 건강하다”며 “코 안의 점액은 보통 하루에 1.2L 정도 분비돼야 정상인데, 그 양이 줄어들면 재채기와 콧물, 가려움증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비염 치료를 위해 곡지혈과 합곡혈에 보사침법으로 침을 놓는다. 곡지혈과 대추혈은 우리 몸의 양기를 끌어올리는 혈이고, 합곡혈은 코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염증을 삭히는 혈자리로 알려져 있다. 침과 함께 약물 치료도 병행한다. 코의 체온 조절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마황, 작약, 오미자, 감초 등으로 만든 소청룡탕(小靑龍湯)을 주로 쓰고, 코의 점액 분비에 이상이 있을 때는 맥문동탕(麥門冬湯)을 써 몸의 진액을 보충해 준다.
갑산한의원에서 직접 개발한 다양한 패치와 연고도 환자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높다. 대표적으로 이명에 좋은 청음고(淸音膏)와 장원고(狀元膏), 그리고 막힌 코를 시원하게 해주는 비염고(鼻炎膏) 등이 있다. 먼저 청음고는 사향과 용뇌, 지렁이(蚓)를 넣어 만든 고약으로, 귀 뒤에 붙이거나 솜으로 감싸 귓속에 넣으면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장원고는 배꼽 주변에 붙여 원기를 돋우는 패치로 청나라 황제들이 배에 고약을 붙인 것에서 착안해 만들었다고 한다.
비염고는 ‘웅담’이 들어간 게 특징이다. 예부터 웅담은 염증 완화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곤 원장은 “‘현종 임금이 웅담을 써서 코의 병을 치료했다’는 문헌 기록을 보고 웅담을 넣어 코점막 연고(비염고)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막힌 코를 틔워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양방에서는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제 등을 사용해 콧물이나 코막힘의 증상 자체를 빨리 사라지게 합니다. 하지만 한의학은 질환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더 집중하죠. 코는 몸 전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코에 병이 생기면 몸 전체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치료에 앞서 면역력을 기르는 게 우선입니다.”
이 원장은 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맵고 따뜻한 음식을 섭취해 기운을 보충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매운 콩나물국을 먹고 땀을 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생강과 대추, 파뿌리 등을 넣어 끓인 물을 수시로 마시면 코 내부의 온도가 올라간다. 또 에어컨 바람이 강한 곳에서는 목에 스카프 등을 둘러 몸속으로 찬 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고, 페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 배에 올려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의술 펼쳐
요즘 이상곤 원장은 자신의 뒤를 이어 한의사가 된 아들(이근희 원장)에게 의술을 전수하고 있다. 이근희 원장은 원광대 한의대 졸업 후 바로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진료를 보다 지난해 6월 경북 경주 안강에 있는 갑산한의원 본원으로 내려갔다. 이근희 원장도 아버지 못지않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의대 재학 중이던 2014년 ‘동아일보(주간동아)’ 인턴기자를 수료했고, 공중보건의 대신 해병대를 선택한 것도 남다르다.
“아직 배울 게 많지만 해병대 정신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의술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전수되는 게 아닌데, 다행히 아들이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하긴 하죠. 그동안 제가 축적해 온 기술과 노하우를 아들이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곧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