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최고의 삼해주를 찾아라! 가양주 마니아들의 ‘삼해주 배틀’

김민경 ‘맛 이야기’⑮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06-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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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양주 배틀’에 등장한 각양각색 삼해주. 병 앞에는 양조법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가양주 배틀’에 등장한 각양각색 삼해주. 병 앞에는 양조법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올봄 삼해주(三亥酒)를 담가 애지중지 냉장실에 보관해두었다. 삼해주는 음력 1월 첫 돼지날 밑술을 빚고, 다음 돼지날 중밑술, 그 다음 돼지날 덧술을 빚은 다음 합쳐서 숙성하는 술이 다. 올해는 2월 2일 삼해주 빚기 여정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12일 간격으로 중밑술과 덧술을 빚고 익기를 기다리는 사이 봄날이 갔다. 

    정월 돼지날 삼해주를 빚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6월 20일 충북 단양에서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삼해주를 선보이는 ‘삼해주 배틀’이 열렸다. 장소는 도담삼봉이 보이는 어느 식당. 오래전부터 전통장과 술, 식초 같은 발효음식을 연구하고, 알리며 손수 만들고 있는 ‘마중물 자연음식연구소’ 김서진 선생이 운영하는 곳이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빚은 삼해주 11개가 한 자리에 놓였다. 각각의 병마다 곡식 재료와 물 양, 누룩 종류, 빚은 방식, 빚은 이 이름 등이 적혀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 내용이 다 제각각이다. 어떤 삼해주는 거르지 않고 두었다가 맑은 술만 떠왔고, 봄부터 내내 실온에서 익힌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색도 맛도 향도 다 다르다. 이런 차이가 바로 가양주의 백미다. 


    삼해주는 음력 1월 첫 돼지날 밑술을 빚고, 다음 돼지날 중밑술, 그 다음 돼지날 덧술을 빚은 다음 합쳐서 숙성한다.

    삼해주는 음력 1월 첫 돼지날 밑술을 빚고, 다음 돼지날 중밑술, 그 다음 돼지날 덧술을 빚은 다음 합쳐서 숙성한다.

    이날 참석자들은 술 빚은 사람이 손수 적은 양조 방법을 꼼꼼히 읽고, 그 술을 맛본 뒤, 준비된 종이에 술의 향, 빛깔, 맛 등에 대한 묘사와 자기 의견 등을 적어나갔다. 한 잔 술을 입에 털어 넣기는 쉬운데 그 술이 가진 오묘한 매력과 섬세한 특징을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19년 전 와인을 처음 공부하던 때가 생각났다. ‘비오는 날의 가죽 냄새’라느니 ‘까막까치밥나무 열매 향’이라느니 ‘태우다 둔 시가 향’이라느니 했던 낯선 설명들에 당황했다. 생전 맡아본 적 없는 냄새니까 당연했다. 그런데 우리 쌀로 빚은 술도 영 표현이 안 된다. 

    눈으로 보면 모두 다른 색을 ‘약간 투명하다’ 하나로 기록할 수 없어 한참을 궁리하다 흐린 완두콩 색, 연한 볏짚 색, 여러 번 씻은 쌀뜨물 색 등으로 적어나갔다. 이 고뇌는 색뿐 아니라 향과 맛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술 한 잔 비우는 데 한참씩 걸렸다. 술도 오미(五味)를 갖고 있단다.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떫은맛이다. 이날 맛본 여러 술 중 매운맛을 찾지 못한 건 아둔한 내 혓바닥 탓인 것 같다. 



    시음을 마치고는 저마다의 술 빚기 이야기를 나누며 석탄주(惜呑酒), 과하주(過夏酒), 감홍로(甘紅露), 이화주(梨花酒)도 한 입씩 맛볼 수 있었다. 석탄주는 쌀로 죽을 쑤어 누룩과 섞은 다음 삭혀서 담근 술이다. 기포 없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청량하고 맛이 좋다. 오죽하면 마시기가(呑) 아까운(惜) 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과하주는 잘 빚은 술에 독한 증류주를 넣어 발효한 것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지만 맛과 향은 부드럽다. 감홍로는 쌀과 조로 빚은 술을 두 번 증류한 귀한 술이다. 계피, 지초 같은 약재를 넣고 발효해 맑고 선명한 붉은 색이다. 독주의 뜨끈함에 아련한 단맛이 깃들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화주는 쌀누룩을 사용해 물 없이 담그는 술로 요거트처럼 찰지고 되직하다. 이처럼 귀하고 이름 있는 술 바탕에는 팔뚝술, 머슴술, 아비술, 벼락술, 들밥 감주, 뜬쌀 누룩처럼 집집마다 빚은 어머니의 술이 있단다. 가양주의 명맥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가슴에 뜨끈한 밥 한 덩이 올려둔 것처럼 그득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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