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일방적 ‘미국 편승’은 시기상조” 미·중 디커플링 시대, 한국의 선택

  • 이문기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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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7-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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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두려움’ ‘中 오만함’ 충돌

    • 지구전으로 가면 궁극적 승자 예측 어려워

    • 中, 정면대응·회피전술 혼용

    • 진영 논리 넘어선 대승적 통합 절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뒤집어놓았다. 국제 정치·경제 질서가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이후(AC·After Corona) 시대로 구분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국제 질서는 세계화의 종말과 각자도생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국제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지도력을 갖춘 국가가 없는 ‘G0’ 시대의 도래를 전망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아시아 회귀’ 전략을 입안한 커트 캠벨은 국제관계 평론 잡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코로나19가 가져올 국제정치의 지형 변화가 1956년 영국의 몰락을 가져온 ‘수에즈 순간(Suez moment)’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간 세력전이가 더욱 가속화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국제정세는 바야흐로 미·중관계의 결별(decoupling)과 신냉전의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는 형국이다.

    미·중 결별(decoupling)

    미국은 위기감이 커질수록 대(對)중국 공격의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고, 이에 맞서는 중국 또한 마치 미국의 허점을 보았다는 듯이 정면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5월 21일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된 ‘양회(兩會)’를 개최하면서 방역 성공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백악관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국가안보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최근 20여 년간 중국에 대한 관여(engagement)정책은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 중국을 장기간의 전략적 경쟁이 불가피한 상대로 규정했다. 미국은 경제·가치·안보 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도전으로 간주하고, 네 가지 정책 목표를 확인했다. 첫째, 미국 국민, 본토, 삶의 양식을 보호한다. 둘째, 미국의 번영을 촉진한다. 셋째, 힘을 통한 평화를 보장한다. 넷째, 미국의 영향력을 확장한다. 이를 위해 워싱턴은 미국의 제도, 동맹 및 파트너십 국가와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이러한 미국의 노력을 저해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사전에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 역시 강경하다. 5월 24일 양회 기간 중 진행된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내외신 기자회견은 미국 성토장이었다. 23개의 질의응답 대부분이 미·중관계에 집중됐다. 왕이 외교부장은 서방에서 제기하는 코로나19 중국 책임론과 홍콩 이슈를 미국의 음모로 규정하고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인의 결기(骨氣)를 쉽게 보지 말라”는 다소 감정적 표현까지 쓰면서 정면 대응을 예고했다. 



    최근 중국 외교 행태에서 이런 강경한 태도로의 전환을 ‘전랑(戰狼) 외교’라고 한다. 전랑은 2015년부터 중국에서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007시리즈를 본 뜬 것이다. 중국 특수부대가 세계 곳곳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 외교는 매우 호전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코로나19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을 거론하는 서방 언론에 대해 해당국 외교관들이 전에 없이 거칠게 비판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예정된 전쟁’이라는 책에서 미·중관계의 구조적 대결 양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과거 수많은 역사적 충돌 사례를 귀납해 볼 때, 함정에 빠지는 상황은 기성 대국의 위기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신흥 대국의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함’이 부딪칠 때라고 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상황에 잘 들어맞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신흥 대국의 도전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다. 반면 시진핑 체제는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이라는 통치 슬로건을 내세우고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중화민족주의 정서를 한껏 고무시키고 있다. 확실히 미국의 두려움과 중국의 오만함이 맞부딪치는 형국이다.

    舊냉전과 달라

    중국의 공세적 부상 전략과 미국의 대중 봉쇄전략이 충돌하면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한 악성 경쟁이 구조화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커다란 불확실성에 빠져들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전략은 기존의 관성과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는 향후 전개될 미·중 간 신냉전 체제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국내의 많은 담론이 신냉전을 과거 미소 간 냉전체제와 유사한 진영 대결로 단순화해 이해하거나, 미국의 시각에서 제시하는 일방적 전망을 마치 기정사실의 미래로 간주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런 관성적 접근을 넘어선 좀 더 균형 잡힌 이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념경쟁 측면에서 21세기 미·중 간 신냉전은 20세기 미·소 간의 구냉전과 큰 차이가 있다. 미·소 간의 냉전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상극의 보편 이념을 기반으로 했다. 또한 상호 간의 경제 및 인적 교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의 양대 진영 간 대결구조였다. 반면 미·중 간의 이념적 차이는 구냉전 체제만큼 분명하지 않다. 이는 비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중국이 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적 보편이념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 수호라는 이념적 명분을 제시한 데 반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은 이념적 색채가 없이 체제, 문화를 뛰어넘어 모든 국가와의 ‘상호존중’ ‘호혜협력’을 강조한다. 심지어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는 사이 중국은 국제 자유무역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기까지 한다. 국제사회에서 미국 지도력의 공백이 보이면, 중국은 이념과 관계없이 손을 내밀고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려 할 것이다.

    회색지대의 이점

    다시 말해 미국은 자유주의라는 이념적 진영논리로 접근하지만, 상대인 중국은 탈이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정치체제가 권위주의를 강화하면서 비자유주의적 노선으로 분명하게 굳어지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중국은 자유주의에 대항할 만한 이념적 자원이 없고, 최대한대로 탈이념적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이 제시하는 신형대국관계론이나 인류운명공동체론, 정확한 의리관(義利觀) 등의 개념은 모두 이념적 색채가 없이 실용적인 것들이다. 굳이 이념적 해석을 하자면 유가철학의 화이부동(和而不同) 개념을 현대 국제관계에 접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국제관계를 규율할 정도의 체계성과 보편성을 갖췄다고 보기에는 너무 공허하고 초보적인 수준이다. 요컨대 ‘자유주의 대 비자유주의 진영’이라는 대립구도는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을뿐더러, 양 진영을 넘나들면서 미국과 경쟁하려는 중국의 접근법 때문에 구(舊)냉전체제만큼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미·중 간 신냉전 체제는 흑백으로 완전히 단절되기보다는 중간에 적지 않은 회색지대가 존재할 것이다. 미·중 양국은 폭넓은 중간지대 국가들을 상대로 한편으론 강압적 수단까지 동원하며 우리를 선택하라고 압력을 가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국 진영으로 유인하기 위한 구애 전략도 펼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사안에 따라 ‘선택 압력’과 ‘선택 기회’가 교차하는 복합적 환경에 직면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국가는 절체절명의 안보위기에 직면하지 않는 한, 회색지대의 이점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일방적 편승외교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택 압력’ 충격 최소화해야

    5월 28일 미국 해군 머스틴함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파라셀제도를 통과하고 있다. 남중국해는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 해군 트위터]

    5월 28일 미국 해군 머스틴함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파라셀제도를 통과하고 있다. 남중국해는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 해군 트위터]

    또한 신냉전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또 궁극적인 승자가 누가 될지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단기적 전망에서는 국력과 체제 내구성에서 우위에 있는 미국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경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우위를 장담하기 쉽지 않다. 당장 국력에서 열세인 중국의 전략은 정면대응과 회피전술을 혼용하면서 긴 시간 지구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2017년 열린 19차 전당대회에서 2035년 강대국의 기초를 형성하고(基本實現), 2050년 글로벌 리더로서의 강국 완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중국공산당의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나오는 싸움의 기술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시기에 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투쟁으로 승리를 얻었고, 건국 이후 1960년대 소련과의 갈등, 1980년대 말 공산권 도미노 붕괴의 위기에서도 특유의 생명력을 발휘한 경험이 있다. 즉 외적 위기와 힘의 열세 상황에서 상대와의 싸움을 장기적 생존경쟁으로 끌고 가면서 궁극적으로 승리를 얻어내는 데 매우 능숙한 정치집단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내력과 지구력은 중국 민족의 최대 특성이기도 하다. 한중관계사 연구 권위자 쉬완민(徐萬民) 베이징대 교수는 한국과 중국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비교하면서, 한국은 명분과 정의에 충직한 ‘강(剛)’의 민족인 반면, 중국은 유연하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인(靭)’의 민족이라고 평했다. 

    미·중 간 신냉전 구조가 심화할수록 그 어떤 나라보다도 강력한 ‘선택 압력’에 시달릴 나라가 한국이다. 과거 구냉전 시기처럼 일방적 편승이 가능하다면야 쉽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한미동맹 유지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경제 교역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을 적으로 만들고서 대한민국의 발전전략이 가능할까. 또한 북한이 다시 고립주의와 대남 강경노선으로 선회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협력국이기도 하다. 절체절명의 안보위기에 직면하면, 일방적 ‘미국 편승’을 선택해야겠지만, 시기상조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미·중 양국으로부터 밀려올 ‘선택 압력’의 충격은 최소화하면서 ‘선택 기회’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지혜와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충실한 예방외교와 자조자강(自助自强)의 원칙, 국내 정치에서 편협한 좌우 진영논리를 넘어선 대승적 통합이 절실하다.

    이문기
    ● 1966년 출생
    ●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 베이징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현대중국학회 기획위원회 위원장
    ● 한국국제정치학회 중국분과 위원장
    ●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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