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휴가 군인은 여전히 얻어맞는 ‘을’ 신세… 잊혀진 朴상병 사망사건

[사바나] 신고 어떻게 해요…군인이 죄인인 거죠

  • 김범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lennon1412@naver.com

    입력2020-07-06 10: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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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관 상병 사망 1년 6개월

    • 여전히 “시비에도 참거나 피하라”는 軍

    • 군인 신분 알고 악용하는 사례도

    • 보복 운전에 억지 합의까지

    • 징계 받을 수 있단 걱정 커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6월 17일 연평도 해안에서 군인들이 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6월 17일 연평도 해안에서 군인들이 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제가 군복을 입은 걸 보더니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하더라고요. ‘군바리가 운전을 이따위로 하느냐’면서 민원을 넣겠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요.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앞으로 끼어들어 브레이크도 밟고…. 분하기도 하고, 너무 무서웠죠.” 

    지난해 6월 군 복무 중이던 이규표(22) 씨는 군용차를 몰다 보복 운전을 당했다. 끼어들기를 허용하지 않아서였다. 상대는 이씨가 군인임을 알고 욕설과 난폭한 운전으로 위협했다. “군인이었는데 신고나 대응을 어떻게 해요. 대민 마찰 일으키면 안 된다고 항상 강조하잖아요. 그때 차에 헌병(현재 군사경찰) 간부도 타고 있었어요. 그 간부도 ‘절대 대응하지 말고 운전만 하라’고 했어요. 군인이 죄인인 거죠. 운전병들은 대부분 공감할 거예요.” 

    2019년 1월 경남 김해에서 휴가 중이던 박용관 상병이 민간인에게 폭행당해 뇌사 판정을 받고 숨졌다. 가해자는 “죄송하다”고 말한 박 상병을 일방적으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유가족은 사건 이후 “(박 상병이) 사망해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이라며 “군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했지만, 아직도 답변은 없다.

    “싸움 발생 시 현장 회피”

    육군본부가 제작해 휴가 장병이 의무적으로 소지하도록 한 ‘출타장병 심득사항’. ‘유형별 사고예방’ 부분에서 싸움 발생 시 현장을 회피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김범석 제공]

    육군본부가 제작해 휴가 장병이 의무적으로 소지하도록 한 ‘출타장병 심득사항’. ‘유형별 사고예방’ 부분에서 싸움 발생 시 현장을 회피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김범석 제공]

    박 상병 사망 이후 1년 6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모든 장병은 “민간인과 시비가 붙더라도 무조건 참거나 그 자리를 피하라”고 교육받는다. 실제로 육군본부가 제작한 ‘출타장병 심득사항’에는 “싸움 발생 시 신체접촉을 하지 말고 현장을 회피”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해군과 공군 역시 군사경찰이 제작하는 ‘사고예방 교육자료’로 같은 내용을 전파한다. 시비와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무조건 참도록 지시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지침은 대민 마찰을 극도로 꺼리는 군의 특성 때문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군인이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대민 마찰을 일으킨 군인은 군사재판에 따른 형사처벌에 더해 군 내부 징계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사건이 언론에 노출될 경우 피해는 개인에 그치지 않고 부대 전체로 퍼진다. 군의 사고예방 활동 중에서도 대민 마찰 방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다. 

    이처럼 참거나 피하기만을 장려하는 군의 태도는 일종의 ‘면피’라는 주장이 나온다. 군인이 처한 위협은 방관하면서도, 사건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오롯이 교육 내용을 따르지 않은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현재 일선 부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는 A(23) 씨는 “군인은 당연히 손해를 봐도 되는 존재, 조롱을 당해도 참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군이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모임을 가져도 혹여 나 때문에 시비가 걸려 친구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휴가를 나갈 때마다 군인이라는 자긍심보다 이상한 사람에게 잘못 걸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커 최대한 군인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것이 지금 군인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간인이 상대가 군인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박용관 상병의 사례처럼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군인을 상대로 다툼을 유도해 금전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B(22) 씨는 자신이 군인 신분임을 알게 된 상대방이 합의를 종용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B씨는 “술을 마시던 사람과 시비가 붙어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신체 접촉도 없어서 당연히 원만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상대가 내가 군인임을 안 이후로 경찰에 신고하고 내 연락은 받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중재로 연락이 닿자 갑자기 합의하려면 돈을 달라고 했다. 군으로 넘어가면 사건이 커지니 결국 합의금을 줬지만, 군인이란 이유만으로 ‘을’이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이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군 생활에 지장이 갈까 봐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비역 신동준(26) 씨는 군 복무 중이던 2018년 7월 신체적 위협을 느꼈지만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었다. 신씨는 “휴가 때 영화를 보고 나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는데 ‘군인이 왜 사과하지 않느냐’며 ‘아니꼬우면 싸우자’고 시비를 걸며 계속 따라왔다”며 “지금이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당시 군인 신분으로 신고하게 되면 결국 나도 대민 마찰로 조사 받고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무시하고 택시를 잡아 겨우 상황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 손해를 강요당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이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을 폭행하면 군형법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군형법 일부개정 법률안(일명 박용관법)이 발의됐지만, 민간인에 대한 군사재판 범위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반대의견 등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제도 도입에 앞서 군인에 대한 인식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동생이 군에서 복무 중인 예비역 김재현(25) 씨는 “‘나 때도 그랬으니 너도 조금만 참아라’가 아니라 ‘이제는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며 “군인도 시민이고 누군가의 가족인 만큼, 특혜나 편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당한 대우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창수(법무법인 보인) 변호사는 “군인은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면서 국민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군복 입은 시민’”이라며 “군사정권을 경험한 우리 국민은 많은 사람이 군대를 갔다 왔으면서도 군을 비하하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전제가 돼야 관련 제도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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