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불타오르는 맥주판, 숙적의 ‘카스테라’ 전쟁

“테라 호기심에 마신 것” VS “카스가 대세? 바뀔 것”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0-06-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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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비 ‘청량감’, 하이트 ‘깨끗한 물’ 마케팅

    • ‘카스처럼’ 맞선 ‘테슬라’·‘태진아’, 영업사원의 작명?

    • ‘테라’ 덕에 코로나에도 흑자전환 하이트진로

    • 닐슨코리아 집계로는 ‘카스’ 점유율 압도적 1위

    • 쳐진 3위 롯데칠성, ‘클라우드 드래프트’ 벼랑 끝 승부

    ‘천연암반수 하이트’ ‘소맥은 카스처럼’ 

    국산 맥주를 좋아하는 애주가라면 두 문장이 익숙하게 느껴질 터다. 앞의 문장은 20여 년 전 방송 광고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왔던 문구, 뒤의 문장은 십년 전 쯤 애주가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오가던 말이다. 

    두 문장은 술자리에서 애주가끼리 가볍게 주고받는 말이긴 했지만, 국산 맥주업체들에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뼈아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흐뭇한 문구였다. 두 문장이 국내 맥주 시장의 판도를 갈랐다는 점에서 그랬다. 

    1990년대 이후 맥주 시장에서 ‘왕좌’의 자리를 놓고 다툰 제품은 세 브랜드 정도다. OB맥주, 하이트, 카스. 이중 OB맥주와 카스는 현재 ‘오비맥주’의 브랜드다. 하이트는 ‘하이트진로’가 만든 맥주다. 즉 두 업체가 그간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경쟁해온 셈이다. 국산 맥주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두 업체는 오랜 기간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소비자들의 입맛 역시 때에 따라 변했기에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천연 암반수’냐 ‘톡 쏘는 청량감’이냐

    천연암반수를 홍보하던 하이트 맥주. [하이트 진로 제공]

    천연암반수를 홍보하던 하이트 맥주. [하이트 진로 제공]

    경쟁이 다시 뜨겁게 불붙고 있다. 최근 10여 년 간 국내 맥주 시장을 안정적으로 평정해왔던 ‘카스’가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테라’에 추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오랫동안 벌여온 두 업체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려면 두 업체 간 경쟁사(史)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를 알면 앞으로 벌어질 ‘전쟁’의 결과를 예측해볼 수도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맥주 하면 으레 OB를 떠올리곤 했다. 이 제품은 당시 동양맥주(이하 오비맥주)가 내놨는데,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1위 자리를 지키며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던 제품은 하이트진로의 전신인 조선맥주(이하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크라운맥주’였다. 

    OB의 위상이 흔들린 건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하이트진로가 대표 맥주 브랜드인 크라운을 과감히 버리고 1993년 새로 내놓은 하이트가 서서히 인기를 끌면서다. 하이트는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100% 천연암반수’로 만들었다는 광고 문구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당시 오비맥주는 모기업인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받고 있었다. 하이트의 ‘물 마케팅’이 통할만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결국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인 1996년, 40년 만에 맥주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하이트의 전성기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1994년 출시된 카스가 ‘톡 쏘는 청량감’을 장점으로 내세워 서서히 젊은 층을 공략하면서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갔기 때문이다. 카스는 애초 진로쿠어스라는 업체가 만든 제품인데, 1999년 이 기업이 매각되면서 오비맥주의 브랜드가 됐다. 


    ‘소맥’ 열풍이 불기 시작한 초기, 카스와 처음
처럼을 섞어 마시는 ‘카스처럼’이 유행했다. [오비맥주 제공]

    ‘소맥’ 열풍이 불기 시작한 초기, 카스와 처음 처럼을 섞어 마시는 ‘카스처럼’이 유행했다. [오비맥주 제공]

    2010년 전후로 술 시장에서 이른바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열풍이 불면서 카스의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당시 술자리에서는 카스와 처음처럼을 섞어 마시는 ‘카스처럼’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두 제품을 섞는 게 가장 맛있다는 믿음이 소비자 사이에서 생긴 것이다. 처음처럼은 롯데주류의 소주 브랜드다. 결국 카스가 소맥 시장에서 승리하면서 2012년 왕좌의 자리를 빼앗는다. 

    요약하면 하이트는 ‘깨끗한 물’ 마케팅을 통해 왕좌의 자리를 차지했고, 카스는 ‘청량함’을 앞세워 소맥 시장을 평정하면서 1위 자리에 올랐다.

    하이트진로 영업사원의 신조어 작명설

    테라와 참이슬을 덧붙인 ‘테슬라’
라는 단어도 회자된다. [오비맥주 제공 하이트 진로 제공]

    테라와 참이슬을 덧붙인 ‘테슬라’ 라는 단어도 회자된다. [오비맥주 제공 하이트 진로 제공]

    201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카스는 안정적으로 1위를 지켜왔다. 하이트는 2위 자리를 지켰지만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2015년 8000억 원가량이던 매출은 2018년 7100억 원 수준까지 줄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내놓은 제품이 바로 테라다. 

    하이트진로는 말 그대로 사활을 걸고 테라를 출시한 만큼 마케팅 활동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과거 국내 맥주 시장의 흐름 역시 면밀히 분석했을 터다. 그래서인지 하이트진로는 테라를 홍보하면서 깨끗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소맥 시장까지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테라의 슬로건인 ‘청정라거’는 하이트의 ‘천연암반수’를 떠오르게 하는 문구다. 깨끗함을 강조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병 색깔 자체를 초록색으로 만들면서 깨끗함을 더욱 강조하고, 카스나 하이트 등 기존 제품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연출했다. 

    테라 출시 초반 소비자들의 입에 착 달라붙는 소맥 네이밍도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바로 ‘테슬라’다. 하이트진로의 대표적인 소주 브랜드인 참이슬과 테라를 더한 신조어다. 이후에는 ‘태진아’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하이트진로가 새로 내놓은 ‘진로이즈백’에 테라를 더한 말이다. 

    맥주업계에서는 테슬라나 태진아가 소비자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단어는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하이트진로 영업사원들이 소맥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어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기원이야 어쨌든 실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 단어가 그 나름 화제가 되면서 테라는 소맥 시장 공략에도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라는 출시 39일 만에 100만 상자를 판매하면서 국내 맥주 브랜드 중 출시 초기 가장 빠른 판매량 증가 속도를 기록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이 지난해 9월 강남과 여의도, 홍대 등 주요 지역 식당의 맥주 점유율을 설문 조사한 결과 테라가 61%로 카스(39%)를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상권이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이 흐름이 서울 외곽과 수도권, 지방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카스의 성적은 주춤하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소매시장에서 오비맥주의 판매량은 전년보다 6.9% 감소한 4억1925만ℓ를 기록했다. 하이트진로의 판매량의 경우 전년보다 8% 증가한 2억6412만ℓ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561억 원, 무서운 테라 효과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주류 업계가 타격을 받는 와중에도 하이트진로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보다 26% 증가한 5338억 원을 기록했다. 1분기 영업이익 561억 원으로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테라의 흥행이 실적으로 이어지자 신용평가 업체들은 최근 하이트진로의 신용등급 전망치를 높였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부문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지난해 6월 신용등급 전망을 낮췄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테라가 출시 초반 시장에 어느 정도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일 뿐 벌써 왕좌의 자리를 꿰찼다는 뜻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아직 카스의 지위가 굳건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비맥주는 올해 초 카스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국내 맥주 소매시장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오비맥주는 점유율 49.6%를 기록했고, 하이트진로는 25.3%로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소매시장 브랜드 점유율 역시 카스가 36%를 기록해 6.3%인 테라를 크게 앞서 있다. 

    카스는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기업 칸타가 내놓은 ‘2019년 국내 유통 맥주 브랜드파워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42.3%의 선택을 받아 브랜드파워 1위를 차지했다. 테라의 기세가 위협적이긴 하지만 당장 순위가 뒤바뀔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올해 두 브랜드의 성패가 결정되리라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맥주 성수기로 꼽히는 여름 시장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한 테라가 올 여름에도 기세를 이어갈 경우 조만간 왕좌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카스가 방어에 성공한다면 카스 시대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두 업체는 성수기를 앞두고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5월 테라의 새로운 광고를 공개하면서 여름 마케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오비맥주 역시 최근 카스의 새로운 모델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발탁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말 내놨던 ‘오비라거’에도 공을 들이겠다는 방침이다. 오비라거는 지난해 10월 한정판 가정용 캔맥주로 출시했다가 소비자 호응에 따라 11월부터 정식 판매를 시작한 제품이다. 

    두 업체 관계자들은 속내야 어쨌든 공히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1·2위 업체 간 묘한 신경전마저 엿보이는 형국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테라가 신제품이다 보니 호기심에 몇 번 마셨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다시 카스로 돌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테라의 상승세가 올해까지 쭉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곧 대세가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점유율 하락 롯데칠성의 승부수

    롯데칠성이 출시한 클라우드 드래프트. [롯데칠성음료 제공]

    롯데칠성이 출시한 클라우드 드래프트. [롯데칠성음료 제공]

    아울러 이번 여름에는 두 업체의 경쟁뿐만 아니라 3위 롯데칠성음료의 행보에도 관심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자사의 대표 맥주 브랜드인 핏츠의 부진 등으로 국내 맥주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롯데칠성음료의 시장 점유율은 7%에 육박했지만, 지난해에는 5%대 아래로 떨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롯데칠성음료는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인 ‘클라우드’의 신제품을 내놨다. 클라우드의 알코올 도수는 5도인데, 이보다 0.5도 낮춘 ‘클라우드 드래프트’를 선보인 것이다. 신제품으로 성수기 시장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심산이다. 승부수가 통할 경우 국내 3위 업체로서 명맥을 이어가며 미래를 기약해볼 수 있겠지만,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벼랑 끝에 내몰리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맥주 시장에서 여름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왔으나 올해는 향후 카스와 테라, 클라우드의 명운이 결정될 수도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경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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