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팜스프링 초입 도로 양쪽 언덕에 2000여 개의 풍력발전기가 해풍을 받아 날갯짓을 하는 광경이 마치 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드디어 사막의 에메랄드빛 하늘을 향해 힘차게 티샷을 날렸다. 공기가 맑고 공해가 없는 탓에 쭉 뻗어 날아가는 공이 봄날 보리밭 위를 나는 종달새처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무려 250야드에 이르는 비거리에 놀란 기색을 하자 동반한 미국 친구가 “여기는 건조하고 밀도가 낮아 다른 곳보다 평균 20∼30m는 더 나아간다”고 귀띔해준다.
8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향해 세컨드 샷을 하니 공은 낙하와 동시에 스핀이 걸려 뒤로 조금 구르다 정지한다. 발밑을 보니 골프채에 패어 떨어져나간 잔디가 한 삽 정도는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얼른 모래통을 꺼내 보토(補土)를 했다. 그린은 관리가 잘돼 있어 공이 워낙 잘 구르는 탓에 스리 퍼트, 포 퍼트는 보통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라운드를 즐기는데 미국인 친구가 갑자기 “우리들은 지금 인생의 몇 홀쯤에 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글쎄, 나야 13번 홀쯤 온 거 아닐까” 하고 대답하며 친구의 얼굴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더 뚜렷해져 주름도 많아 보였고 눈꼬리도 많이 처져 있었다.
의사인 친구는 “일주일에 세 번씩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느라 신경도 많이 쓰고, 법적 소송도 자주 생기고, 가정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어 심신이 피로하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기는 16번 홀쯤 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골프장 인근에 집을 사서 죽을 때까지 원 없이 골프나 치면 좋겠다”는 행복한 푸념(?)을 하기도 했다. 인간은 흐르는 세월을 어찌할 수 없고, 그 어떤 직업을 가져도 고통과 애환이 없을 수는 없나 보다.
팜스프링 사막 골프장 라운드를 통해 버뮤다 잔디의 페어웨이와 러프 속에서 어프로치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고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했다. 우리나라 코스에서처럼 공이 떠 있지 않고 페어웨이에 붙어 있을 때는 반드시 찍어 쳐야 한다는 것, 40∼60야드 거리의 어프로치는 샌드웨지보다는 피칭으로 치는 것이 실수할 확률이 낮다는 것, 그리고 페어웨이 우드는 라이가 여간 좋지 않고는 3번 우드를 잡지 말고 5번이나 7번 우드로 쳐야 실수가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막 지역에도 그린의 브레이크가 있으니 이를 잘 관찰하지 않고는 퍼트의 범실이 잦다는 것, 심한 러프 속에 공이 박혀 있을 때에는 샌드웨지나 피칭웨지를 써서 우선 공을 밖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린 주변에서 공을 굴릴 수 있다면 웨지 대신 퍼터를 써야 안전하다는 것 등 평소에 간과하기 쉬운 기술을 다시 한 번 숙지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또 하나 주의할 사항으로는 라운드 도중에 OB나 슬라이스가 나서 공이 숲 속이나 자갈밭으로 들어가도 절대로 찾으러 가지 말라는 것이다. 언제 무시무시한 방울뱀이나 전갈이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긴장의 연속 18번 홀
이 코스에서 특히 유명한 홀은 18번 홀(543야드 파5)이다. 티잉 그라운드로부터 그린에 이르기까지 왼쪽으로 물을 끼고 도는 코스인데, 경치에 매료될 여유가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왼쪽 워터 해저드를 의식해 오른쪽으로 겨냥하다 경사진 언덕에 공이 멈추면 세컨드 샷을 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따라서 워터 해저드에 공이 빠져도 좋다는 각오로 왼쪽을 향해 치는 것이 요령 아닌 요령이다.
서드 샷의 경우 그린이 길고 좁아 그린 위에 공을 올려놓기가 만만치 않다. 그린 앞에는 워터 해저드, 옆쪽으로는 벙커가 있어 차라리 한 클럽 길게 치는 것이 요령이다. 어렵게 스리온이 되어도 투 퍼트로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