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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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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전쟁으로 인한 정신질환인 PTSD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하얀 전쟁.’

전쟁은 기본적으로 병사들에겐 스트레스다. 미 아칸소주립대에서 군사학을 가르치는 데이브 그로스먼의 책 ‘살해론’(On Killing, 1995년판)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중 50만4000명의 미군이 정신질환으로 군복을 벗었다. 이는 50개 사단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규모였다. 당시 미군 징병검사소는 징집대상자 가운데 80만명을 정신질환을 앓는 ‘부적격자’로 판정, 1차로 걸러냈다. 그런데도 50만명의 현역병이 그뒤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다. 그 대부분은 전투중 얻은 정신질환 탓이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벌인 뒤 미군 당국은 전투기간과 병사의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60일 동안 계속 전투를 벌인 미군 생존자의 98%가 정신적 상처로 괴로워했으며 나머지 2%의 병사들은 ‘병적일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2%의 병사 유형은 글 앞머리에서 살펴본 영화 ‘풀 메탈 재킷’속의 미군 헬기 기총사수를 떠올린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커’는 미군 기관지인 ‘성조지’ 기자로서 사진기자와 함께 헬기를 얻어타고 후에(Hue)지역 취재를 떠난다. 가는 길에 헬기의 기총사수는 논에서 일하고 있던 베트남 농민들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기관총을 내리쏜 뒤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내 사격을 피해) 뛰는 놈은 베트콩이고, 가만히 있는 놈은 잘 훈련된 베트콩이야, 핫하하. 나는 지금껏 157명의 베트콩과 들소 50마리를 죽였어. (멀리 취재 갈 것 없이) 바로 나를 취재해야 되는 거야. 핫하하.”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2000년 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 당시 만났던 반군(혁명연합전선, RUF) 병사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낄낄 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제2의 베트남전쟁 신드롬’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병사는 전투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지만, 무엇보다 살아남고 싶다는 강한 희망을 품는다. 아울러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얼씬거린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병사들은 훈련과정에서 익힌 임무(이를테면 사수는 방아쇠를 당겨야 하고, 탄약수는 부지런히 탄약을 대야 한다는 역할 분담)를 잊고 어디론가 구석진 곳을 찾아 숨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떤 병사들은 소리내 울거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진다. 따라서 전장에서 병사가 느끼는 공포를 이용하려는 전술인 심리전은 적군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독일영화 ‘특전 유보트’(Das Boot, 볼프강 페터젠 감독, 1981)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은 전투의 박진감보다는 좁은 U-보트에 갇힌 병사들의 불안심리를 잘 그려낸 데서 나온다. 구축함에서 던지는 수중폭탄의 충격, 바다 밑 280m 지점에 가라앉은 U-보트의 심도계(深度計)를 쳐다보는 병사들의 절망적인 눈길, 수압에 못 이겨 튀어나오는 나사들, 흘러들어오는 바닷물, 갈수록 옅어지는 산소…. 8회 출항 경험을 지닌 노련한 기관사 요한마저 자제력을 잃는다. 요한은 잠수함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본능에 잠수함 출구쪽을 쳐다본다. 잠수함에서 나가봤자 깊은 바닷속인 데도…. 강철 신경을 지닌 함장은 요한에게 “네 자리로 돌아가라(근무위치를 지켜라)”고 명령하지만 그 말은 요한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한은 공포에 짓눌려 신경이 마비된 병사의 전형이다. 영화 ‘플래툰’에서도 묘사됐지만,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미군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약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전쟁공포로부터의 일시적 도피다.

프로이트의 ‘이드’가 지배하는 순간

앞서 소개한 조안나 버크의 ‘살해의 친숙한 역사’에 따르면, 20세기 전반 미군의 훈련과정은 심리학의 ‘본능이론(instinct theory)’에 바탕을 두었다. 그 교본은 1908년 영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맥두걸이 쓴 ‘사회심리학 개론’이다. 이 책에서 맥두걸은 “사회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행동은 인간의 초보적인 감정에 연결된 본능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도망치는 것은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었다. 미군 훈련교관들은 맥두걸의 본능이론에 바탕을 두고 병사들이 전쟁에서 느끼는 본능적 공포를 극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어왔다. 그 뒤 보다 정교한 이론들이 나왔지만, 맥두걸의 본능이론은 지금도 미 군사훈련의 기본방향으로 남아 있다.

자의든 타의든 전쟁이란 살벌한 현장 속으로 뛰어들게 된 병사는 1차적으로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적군에게 총을 쏜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병사는 전투중의 끔찍한 기억들로 말미암아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정신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쟁터에 갓 배치된 젊은 병사는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제정신을 잃는다고 한다. 총알이 귓가를 스쳐가는 근접전에서 병사는 앞뇌(前腦, 이성적인 기능을 담당)의 활동이 멈춘 상태에서 가운데 뇌(中腦,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적 기능)의 지시에 따라 방아쇠를 당겨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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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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