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경제국경 지킴이 관세청 조사감시요원 24시

구두 밑창에서 마약 찾아내고 지하 땅굴에서 양주 발견하고

  • 글: 신주현 자유기고가 asinamu7@hanmail.net

    입력2004-06-30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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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뛰어난 밀수범이라도 관세청 조사감시요원들의 눈길을 피하기는 힘들다. 마약, 밀수 등 각종 범죄를 단속하는 이들은 일주일 내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다.
    • ‘뛰는’ 밀수범을 족집게처럼 잡아내는 관세청 조사감시요원들의 놀라운 활약상.
    경제국경 지킴이 관세청 조사감시요원 24시
    지난 4월25일 오후 9시, 인천세관(세관장·최흥석) 조사3계 민병조 계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밀수품을 인수하기 위해 용의자들이 컨테이너 보관소로 찾아왔다”는 컨테이너 보관소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민 계장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세관 조사감시 업무 15년의 베테랑 요원이지만 다급한 제보전화에 온몸이 긴장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민 계장은 “절대 반출하지 말라”고 말한 뒤 세관 근처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조사3계 요원들을 긴급히 불러들였다. 벌써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간 채 비상 대기중인 동료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밀수 용의자가 눈 앞에 두고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 9시30분, A공단 컨테이너 보관소 앞 수위실에 잠복한 민 계장은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2인1조로 움직이는 한 조는 공단 사거리에서 컨테이너 방향 50m 지점에 있는 차량 안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고 나머지는 행인이나 공단 관계자로 위장해 길거리에서 밀수 용의자들을 밀착 감시하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제법 쌀쌀했다.

    순간, 컨테이너 보관소 옆 소공원에서 네 명의 밀수품 인수책들이 나타났다. 중국에서 밀수입한 건고추 6만여kg을 인수하기 위해 보관소로 찾아온 것이다. 보관소장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물건을 내주지 않자 용의자들은 보관소 주변을 배회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민 계장은 보관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반출하라”고 통보했다. 용의자들은 아직까지 세관 요원들의 잠복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민 계장은 밀수 용의자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 2대를 조회해 차주의 신원을 확보했다.

    주변을 배회하던 용의자들은 더 이상 인수작업을 시도하지 않았다. 밤 11시쯤. 용의자들은 모여 뭔가를 상의하더니 타고 온 차량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달 넘게 집에 못 들어가



    이렇게 해서 밀수품 인수현장을 확보하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용의자를 현장에서 검거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정보원의 제보로 밀수품을 확보하고 운반용 컨테이너 번호를 입수한 것만도 큰 성과였다. 전산망을 통해 화물 진행정보와 관련자료를 확인만 하면 밀수조직 소탕은 시간문제였다.

    현장에서 철수한 조사3계 요원들은 곧바로 세관 전산망을 통해 문제의 컨테이너가 부산항에서 밀반출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민 계장은 수사요원을 부산으로 급파해 컨테이너 화주(貨主)와 운송책임자를 붙잡아 서울로 압송했다.

    북한행 환적화물을 이용한 중국산 건고추 밀수입 사건의 전모는 이렇게 해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밀수단 주모자인 김모(42)씨가 중국산 건고추를 밀수하기 위해 중국사업자와 공모해 설탕, 콩기름을 실은 배가 중국 다롄(大連)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을 경유하여 북한 나진항으로 가는 것처럼 서류를 위장한 것이었다. 그런 후 밀수범들은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건고추를 부산항에서 빼돌려 인천으로 가져온 다음 국내 운반책을 통해 인수하려다 인천세관에 적발된 것이다.

    경제국경 지킴이 관세청 조사감시요원 24시

    북한행 환적화물을 이용해 밀수하려고 했던 중국산 건고추.

    인천세관에는 민 계장처럼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요원부터 휴대품 검사에서 선상화물 검사, 마약조사에 이르기까지 70여명의 조사감시요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10일째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민 계장은 “사명감이 없다면 조사감시 요원 일을 하기가 힘들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 특히 4월에는 국내 최대 가짜 비아그라 밀수입 사건, 국제 이사화물을 이용한 밀수 사건, 중국산 건고추 밀수입 사건 등이 연이어 터져 한 달 넘게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민 계장은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그는 현장 감시와 조사를 유기적으로 병행해 밀수단속에 나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인천세관 내부뿐 아니라 국내외 세관이나 정보기관과의 협조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4월 검거한 국내 최대의 가짜 비아그라(43만1000정, 정품 시가 65억원 상당) 밀수입 사건도 국가정보원의 제보를 바탕으로 끈질긴 수사 끝에 올린 개가였다.

    현재 관세청 산하 30개 세관에는 560여명의 조사감시요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영장 신청 및 고발 권한을 가진 사법경찰관이기도 한 이들이 적발하는 관세, 외환, 밀수 관련 금액만도 한 달에 8000억원이 넘는다. 국경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공항과 항만이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 연간 17만회 운항하는 항공기를 통해 2700만명의 여객과 170만t의 화물이 오가는 인천공항에는 아예 인천공항세관을 따로 두고 있다.

    지난 5월6일 오후 1시40분, 중국 톈진(天津)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객들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순간 세관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휴대품 5검사관실 순회감시요원(일명 로버) 김태봉씨의 눈과 발은 밀수 우범자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세관정보분석시스템(APIS)을 통해 이미 밀수 우범자 신상을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우범자로 분류된 40대 중국동포가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자 김 요원과 또 다른 로버 한 명이 그 뒤를 추적했다. 그가 수하물을 들고 마셜라인(세관 심사 라인)을 통과할 무렵 김씨는 마셜라인 요원에게 ‘노란색 양복 입은 40대 남자 검색 바람’이라는 무전을 보냈다. 마셜 요원은 검색라인을 통과하려던 해당 여행객의 입국을 정지시키고 세관검사 협조를 요청했다.

    대형 여행자용 가방을 조사하던 직원이 가방 안쪽에서 약품으로 보이는 다량의 캡슐과 우황청심환, 정체 불명의 약재를 적발했다. 당황한 40대 중국동포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의약품을 가져왔다”고 변명했다. 최근 복방감초탕처럼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약품이나 중국의 독한 불법 약물을 복용하려는 중국동포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물 밀수입이 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세관에서는 중국산 약품에 날을 세우고 있는 상태다.

    김태봉 로버 요원은 “최근에는 면세범위(400달러 이하)를 초과하는 고가 물품을 몰래 들여오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며 “앞으로는 마약류나 총기류 같은 안보유해물품과 지적재산권에 관한 집중단속을 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검색기 자처하는 로버 요원

    인천공항세관 조사감시요원들은 매일같이 수만 명의 입국자를 대상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심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활약하는 곳은 입국심사대부터 세관검사대 통과라인까지. 마지막 통과라인을 마셜라인이라고 부르는데 밀수품 및 마약, 총기류와 같은 안보유해물품의 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 바로 이곳이다.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 여행자의 4% 정도가 세관원의 검사를 받고 이들 중 15∼20%가 밀수행위로 적발된다. 여행객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선별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 밀수 우범자를 사전에 분류해 밀착 추적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인천공항세관 순회감시요원, 이른바 ‘인간 검색기’를 자처하는 로버 요원들이다.

    로버 요원들은 격무에 시달린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기본이고, 오전 9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8시까지 23시간 근무하기도 한다. 이런 장시간 근무에도 이들은 동물적 감각으로 수많은 공항이용객 중 범법자를 파악해낸다. 현장경험만 20년 이상인 베테랑 여성 로버 요원 이경숙씨는 여행객들의 발걸음만 봐도 그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가을 홍콩을 여행하고 돌아온 한 여성이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더니 바로 화장실로 가더군요. 이미 세관정보분석시스템에 뜬 여행객이라 밀착 추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 여행객이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는 거예요. 추적당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거죠. 2시간이 지나도 나오자 않아 제가 ‘여기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관세만 납부하면 별 문제 없으니 걱정 말라’고 설득했죠. 잠시 후 그 여성은 자수했고 가방을 조사해보니 고가의 카메라 10대가 들어 있었어요. 이처럼 여성의 밀수행위 추적에는 여성 로버 요원이 유리할 때가 많아요.”

    한편 여행자 편의를 위한 선별검사를 악용하는 밀수꾼들도 있다. 그래서 밀수 위험이 있는 특정 노선의 비행기에 대해서는 수시로 일제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인천공항세관(세관장·최대욱) 조사감시국에는 150여명의 전문 조사감시요원이 근무하고 있다. 외국 여행객 대다수가 인천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마약류 및 총기류의 밀수를 담당하는 조사감시국의 임무는 그만큼 막중하다. 세관이 국내 유입을 막아야 할 경계대상 1호는 바로 마약. 인천공항세관의 마약조사과는 국내 마약류 단속의 최일선 첨병 역할을 자부한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마약 청정국가로 인정되는 데에는 이들의 활약도 적지 않다. 국내로 유입되는 마약뿐 아니라 국내를 경유해 제3국으로 나가는 마약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마약수사에 대한 국제공조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화물 분석해 2시간 만에 피의자 파악

    지난해 12월4일 오후 8시경 공항세관 마약조사과 배경탁 조사3반장은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환승화물(국내를 경유해 제3국으로 가는 화물) 중에서 마약류로 보이는 시커멓고 딱딱한 물건이 나왔다는 것이다. 신고전화를 접수한 배 반장은 1km 이상 떨어져 있는 화물 분류장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환승화물일 경우 조기에 수사에 착수하면 화물 주인이 3국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체포가 가능하다.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배 반장은 문제의 화물이 9.6kg 상당의 생아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가방 아래를 천으로 재봉해 이중으로 만든 후 그 위에 비디오테이프와 의류 등을 덮었고 마약탐지견이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나프탈렌까지 넣어 위장한 상태였다.

    마약이 든 가방을 들고 조사실로 이동하는 배 반장의 머릿속에는 이들이 공항을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천공항에 짐이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8시30분 사이. 가방에는 터미널 운영센터에서 분류한 ‘IN-HOUSE(002311)’라는 임시번호만 찍혀 있었다. 가방에는 태국영화 CD와 태국 신문이 들어 있고 보안검색 씰은 방콕으로 확인되었다. 배 반장은 즉시 그 시간대에 들어온 태국발 비행기 4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8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경제국경 지킴이 관세청 조사감시요원 24시

    지난 4월 인천세관에서는 국가정보원의 제보를 받아 정품 시가 65억원 상당의 가짜 비아그라 43만1000정을 밀수하려는 조직을 검거했다.

    배 반장은 비행기 승객 중 화물 환승을 시도한 사람의 명단을 뽑아 이름을 기준으로 총 15명의 태국인을 분류해냈다. 이들을 대상으로 화물 임시번호와 화물 누락상태를 분류한 결과 한 태국인 일가의 화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한국을 경유해 미국 애틀랜타로 향하고 있었다. 마약 우범국가 화물에 대한 미국 세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한국에서 국적 세탁을 시도한 것이었다. 오후 10시경 마약운반책으로 밝혀진 이 태국인 일가 여성 여행자 3명이 두 시간 후인 12시, 미국 애틀랜타에 도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임시화물번호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승화물에 대한 지식과 마약조사 업무 7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2시간만에 피의자의 도착지까지 확인한 것이다.

    배 반장은 지체 없이 미국 마약단속청(DEA)에 이 사실을 통보했고 미 마약단속청은 애틀랜타 공항에서부터 이들을 추적해 마약 인수를 위해 접선한 감시책까지 밀수단 전원을 검거할 수 있었다. 신속한 수사와 국제공조가 빛을 발한 사건이었다.

    배 반장은 지난해 5월에도 마약 밀수 혐의자를 집요하게 추적해 검거한 바 있다. 당시 용의자는 장기간 중국 체류 끝에 돌아온 우범인물로 엑스레이 검사와 휴대품 검사를 완벽하게 실시했는데도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혐의자가 입국장으로 막 나가려던 순간, 배 반장은 혐의자의 걸음걸이가 이상한 것을 눈여겨보다가 그가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키가 큰 사람이 키높이 구두를 신은 것을 수상히 여긴 배 반장은 입국장 바로 앞에서 용의자를 통관 사무실로 데려갔다. 사무실에서 구두를 벗어보라고 하자 용의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구둣바닥을 칼로 벗겨내는 순간 용의자가 배 반장의 손을 잡았다. 조용히 해결하자는 것. 그러나 배 반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메스암페타민(필로폰) 77g이 발견되었다. 배 반장의 집요함이 결국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마약은 필로폰입니다. 그동안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마약 단속을 벌이고 우리 세관에서 집중적으로 루트를 봉쇄하자 필리핀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마약조직이 반입 루트를 찾기 위해 여러 국가를 이동하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약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직은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구역에 속한다지만 위험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래서 세관의 임무는 더욱 막중하다.

    관세청 마약조사국 차두삼 과장은 “세관이 벌이는 마약수사의 특징은 국경선을 직접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소비된 후 단속하면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뒤인 데다 비용도 몇 배나 더 소요되기 때문에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 세관일수록 마약수사에 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조수표 적발의 명수

    인천공항세관 조사총괄과 조사4계 박관승 반장은 불법 외환거래 및 위조 수표 적발의 명수로 불린다. 박 반장은 지난 4월8일 여행자수표를 소지하고 태국에서 들어온 네덜란드 국적의 K씨를 적발했다. 세관검사대 직원이 가방을 조사하던 중 여행자수표 번호 일부가 중복되어 있는 것을 수상히 여기고 조사4계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장에 출동한 박 반장은 위조 여행자수표와 K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가 쉬울 리 없었다. 시시때때로 신병을 호소하고 병원 치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수사기간보다 치료기간이 더 길 정도였다.

    인내심을 갖고 수사한 끝에 박 반장은 국내에 또 다른 위조 여행자수표를 사용하는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출국 날짜를 기다려 공항에서 불가리아 국적의 P씨를 검거했다. 현재 이들은 구속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다.

    24시간 근무하고 그 다음날 쉬는 격일제 근무에다 사건이라도 터지면 1주일씩 집에 못 들어가는 등 격무에 시달리지만 박 반장의 위조수표 근절에 대한 의지는 대단하다.

    “위조수표가 국내에서 돌아다니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높고,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가 위조화폐나 채권, 수표에 취약한 국가라고 인식되면 무역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거든요. 세관에서만 잘 막아내면 위조수표가 초래하는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세청 조사감시요원이 공항이나 항만에서만 활동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해 6월 서울세관(세관장·이종인) 조사3계 이학철 계장은 용산 미군 부대 주거단지에서 비밀첩보를 접수했다. 미군부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에 수상한 봉고차가 무슨 물건인가를 싣고 자주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제보를 입수하고 며칠 동안 내사를 벌여 미군부대 내 영내매점(PX)에서 카페로 위장한 창고로 미국 면세주류를 밀반입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군 본부에서 주한미군 부대로 들여온 면세 맥주를 밀반입하는 것은 명백한 밀수행위였다.

    서울세관 조사3계는 전담반을 편성하고 현장 잠복을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주모자격인 카페 주인 이모(34)씨가 카페 밖으로 나와 동정을 살핀 뒤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공모자들이 운반용 봉고차를 이용해 카페에서 면세 주류를 실어 나르는 식이었다. 이들은 아주 미세한 이상 징후만 발견돼도 즉시 현장에서 철수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내륙의 밀수행위도 철저히 단속

    현장을 덮치기로 한 날 자정이 가까워지자 흰색 봉고차가 카페로 들어갔다 물건을 싣고 나오는 걸 보고 이 계장이 출동명령을 내렸다. 잠복하고 있던 9명의 전담반은 쏜살같이 현장을 덮쳐 신속하게 봉고차를 포위해 용의자 두 명을 체포하고 운반중인 맥주 박스를 확보했다. 하지만 주모자격인 카페 주인 이씨는 순식간에 도주해버렸다. 카페에 들어가 냉장고로 위장된 지하통로 덮개를 걷어내자 카페의 지하 점포와 미군 부대 영내매점을 잇는 가로 70cm, 세로 80cm로 된 20m 길이의 땅굴이 드러났다. 밀수범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하 땅굴을 이용해 간 큰 밀수행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밀수 루트로 이용된 위장 카페를 확보했지만 이 사건의 주모자격인 이씨가 도주하자 사건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천세관에서 근무하던 김종무 반장이 서울세관으로 급파돼 수사팀을 재정비했다. 자료조사와 현장 탐문을 통해 밀수입 맥주가 흘러들어가는 경로를 파악하고 밀수 사건과 관련된 주류업자 체포에 나섰다. 수사 결과 서울시에서 무자료 주류를 취급하던 거물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었다. 김 반장은 28명의 주류업자와 공범들을 검거하고 2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주모자 이씨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주모자 이씨가 수상스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파악한 후 청평댐에서 탐문을 하고 있는데, 이씨와 알고 지내는 청년들이 몰려와 위협하는 바람에 강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습니다. 이씨가 강남의 한 점집에서 나와 자동차를 타고 도주하는 것을 검거하기 위해 급하게 차의 사이드 미러를 잡았다가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기도 했죠. 고생은 했지만 면세 주류 밀수범들과 관련 주류업자들을 일망타진해서 보람이 컸습니다.” 김종무 반장의 이야기다.

    김 반장과 동료들의 치밀한 수사 끝에 미군 영내매점 면세맥주 밀수단은 일망타진됐다. 세관 조사감시요원들이 국경뿐 아니라 내륙의 밀수행위도 절대 좌시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치열한 경제전쟁시대, 관세 국경을 지키고 있는 세관 조사감시요원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천세관 조사3계 민병조 계장은 눈가의 주름만큼 쌓인 세관 경력 20년의 애환을 나직이 털어놓았다.

    “관세청 조사감시요원은 한번 맡게 되면 다른 일을 못해요. 이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거든요. 진급 기회도 많지 않고 집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이 자리를 뜨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야말로 경제 국경을 지키는 대한민국 국경수비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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