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 아티스트 핸드북에 실린 릴리언슈바르츠의 ‘모나-레오’
우선 예술 교과의 수업 시간을 늘리고, 국어 시간에 연극을 하는 등 일반 교과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수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리고 2012년까지 1000개의 학교를 예술교육 선도 학교로 지정한다고 한다. 이곳엔 예술실, 강사 등이 지원된다. 예술영재교육원도 현재 1곳에서 20곳으로 늘린다고 한다.
정부의 예술교육 활성화 발표
아울러 과학과 예술의 통합을 원하는 학교를 골라 과학영재학교나 과학예술고등학교를 만들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이를 통해 창의성과 인성의 함양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했다. 사실 현대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활발히 논의되는 시대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입시 위주 교육 환경을 감안할 때 예술교육 확대를 학교 자율에 맡기기로 함으로써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많은 학생과 학부모는 여전히 ‘예술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은 옛사람이라면 마법이라고 여길 놀라운 방법과 수단으로 우리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휴대전화, 인터넷, 텔레비전 등 과학기술의 산물을 의식하지 못한 채 쓰다가 막상 그것이 사라지면 금세 금단 증상을 느낄 정도다.
과학은 나날이 의외의 것을 내놓음으로써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스마트폰, 화성 표면을 기어 다니는 탐사 로봇, 허블 망원경이 찍은 우주의 장관, 구글 어스, 심해에 사는 별난 동물, 오지에서 발견되는 신기한 생물 등이 우리 곁으로 온다. 니콘 현미경 사진 경연 대회(Nikon MicroscopyU)의 사진들을 보면 현미경에 비친 신기하고 아름다운 미시 세계에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예술이 주는 감동은 솔직히 예전만 못하다. 예술의 현실 재현 능력은 이미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웬만하면 쓸 줄 아는 포토샵에 밀리고 있다. 적어도 물량 면에서는 말이다. 게다가 현대 예술은 ‘전통 파괴’와 ‘낯설게 하기’에 골몰하는 경향이다. 즉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동보다는 의외성과 새로움에 더 기댐으로써 일반 대중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다. 영화 같은 대중예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일종의 컴퓨터 그래픽과 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은 예술이다.
이러한 경향성에 따르면 과학의 창의성이 예술의 창의성을 뛰어넘은 듯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 탓도 있을 것이다. 과학이 홀대를 받고 있다고 아우성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교육에서 과학은 적어도 예술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이란 아직도 붓을 들어 물감을 칠하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는 전통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예술, 영상예술 등 온갖 새로운 것이 가득한데도 말이다.
사는 데 예술이 꼭 필요한가
예술을 다른 과목과 연계시키고 과학과의 융합을 도모함으로써,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 이해 능력을 함양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다만 이런 주장을 펼치려면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예술 없이 생존할 수 있는데 예술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많은 사람은 예술이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이 어떤 형식을 취하는지,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 어떤 식으로 향유되는지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서양의 바이올린, 동양의 가야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부젤라는 각기 다른 문화의 산물이며 그것이 발산하는 소리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음악 자체는 어느 문화에든 존재한다. 어떤 문화에서든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 문화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