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가 인정하는 ‘혁신가’ 정의선
혁신 경영으로 기아차 세계 1위 만들어
자동차, 모빌리티 넘어 스마트시티까지
자동차 外 인간 이동 전반을 혁신하는 회사로
로봇산업도 도전 새 먹거리, 신기술 동시에 잡는다
수소전지차 등 차세대 자동차 개발도 적극
미래세대 위해 더 좋은 세상 만들겠다는 신념
코로나發 글로벌 침체기에도 좋은 성과
2019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Mobility Innovators Forum)에서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모빌리티 개발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은 이처럼 명멸하는 유명 브랜드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2019년부터는 글로벌 판매 순위 4~5위를 오르내리며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성공 비결을 ‘과감한 혁신’이라고 짚는다. 다른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지 못한 부분까지 연구·개발해 가며 역량을 키워왔다.
10월 14일 취임 1년을 맞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이미 자동차업계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Automotive News)의 K.C.크래인 발행인은 지난 7월 정몽구 명예회장의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 아래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그룹의 미래 방향성은 고객, 인류, 미래, 그리고 사회적 공헌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포브스(Forbes)의 ‘모빌리티 어워드 2020’에서 ‘올해의 기업(Outstanding Firm)’에도 선정됐다. 포브스는 “현대차그룹은 2020년 내내 첨단 모빌리티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면서 “정의선 신임 회장 취임 이후 순수 전기차, 수소전지차, 자율주행 기술, 에어택시 개발사 등에 대대적으로 투자했고, 심지어 유명 로봇 제조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까지 인수했다”며 현대차그룹을 설명했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공격적 행보가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낸 것이다.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한 정 회장은 2005년 기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달라진 ‘정의선식 경영’을 본격적으로 보여줬다. 정 회장은 2006년 파리모터쇼에서 “기아에 ‘디자인 경영’을 도입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는 또 “기아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차량 라인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고 감각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세계 무대에서 기아의 경쟁력을 향상할 것”이라 밝혔다.
뒤이어 정 회장은 아우디·폴크스바겐의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던 피터 슈라이어를 데려와 부사장에 앉혔다. 슈라이어는 당시 크리스 뱅글(BMW), 발터 드 실바(아우디)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정 회장은 그런 슈라이어 부사장에게 디자인의 전권(최고디자인책임자)을 맡겼고, 이때부터 기아는 독자 디자인 개발에 착수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 고문은 2008년 정의선 회장이 기아 사장 시절 영입한 인재다. [동아DB]
정의선 회장, 기아 디자인 혁신으로 이미 성공 경험
기아의 디자인 경영은 2008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기아의 ‘쏘울’이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상 자동차 분야에서 장려상(Honorable Mention)을 받았다. 2014년에는 2세대 쏘울이 레드닷뿐만 아니라 iF, IDEA 디자인상까지 모두 석권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후로도 기아는 3대 디자인상 자동차 분야에서 매년 하나씩 상을 수상했다.동시에 품질도 세계시장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 JD파워 신차 품질조사에서 전체 33개 완성차 브랜드 가운데 기아는 1위에 올랐다. 모기업인 현대차(3위)를 상회하는 성적이었다. 이후에도 2017년(1위), 2018년(2위), 2019년(1위)로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아를 성공가도에 올린 뒤, 정 회장은 2009년 9월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인 고위 경영진도 일부 퇴진하며 정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정 회장이 그룹 전면에 나선 것은 9년 뒤인 2018년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에 오르면서부터다. 정몽구 명예회장(당시 현대차그룹 회장)을 보좌하는 직위였지만, 사실 이때부터 정 회장이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의 자리에 앉게 된 이유에 대해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발 빠르게 현대차그룹의 새 먹거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사업 영역의 확장이었다. 정 회장은 2019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Mobility Innovators Forum, 이하 MIF) 2019’에서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개발 철학은 ‘인간 중심’”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줄 이동 수단과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취지였다.
현대차그룹은 이동 수단을 만드는 회사를 넘어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를 구상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MIF에서 “전기차, 마이크로 스쿠터 등 혁신적인 이동 수단 역시 땅 위를 다니는 또 다른 모빌리티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정된 도로 상황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새로운 모빌리티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계획이 함께 실현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차그룹에서 현대모빌리티그룹으로 성장 중
자동차 및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했다. 자율주행 기기 개발업체 관계자는 “다양한 차세대 자동차 기술 중 자율주행만 시행하려 해도 스마트시티가 필요하다”며 “도시 내 교통 혼잡도 등을 자동으로 파악해야 자율주행 차량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 여기에 전동 스쿠터, 킥보드 등 다른 교통수단이 끼어들 것을 생각하면 도시 전체의 교통 현황을 분석·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현대차그룹은 이미 스마트시티 개발에 착수했다. 2019년 11월부터 도시와 모빌리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스마트시티 자문단’을 구성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혁신적인 도전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자문단은 ▲포용적(Care)이고 ▲자아실현적(Enable)이며 ▲역동적(Vitalize) 도시 구현이라는 인간 중심의 미래 도시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술 도입에도 힘쓰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9월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과 공동 개발한 ‘로보택시’를 독일 뮌헨 IAA 모빌리티(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 Mobility)에서 공개했다. 모셔널은 글로벌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와 협력해 2023년 아이오닉5 로보택시를 활용한 완전 무인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작한다.
사람 돕는 로봇 기술 개발에도 나서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회장은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 분야로 로봇공학(로보틱스)을 선택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로보틱스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하고, 올해 6월 M&A를 완료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해 출시한 4족 보행로봇 스폿(Spot), 연구용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개발하는 등 로봇 개발 및 운용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술을 이용해 현대차는 인간이 타는 기계를 넘어, 인간을 돕는 기계의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이는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현재 연구 중인 제품만 봐도 알 수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내년 중 최대 23kg의 박스를 시간당 800개 싣고 내리는 작업이 가능한 물류로봇 스트레치(Strech)를 상용화하고, 제조·물류·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택배 상하차나 건설현장 자재 운반을 로봇이 맡는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아직은 생소하지만 로봇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2017년 245억 달러 수준의 세계 로봇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CAGR) 22%를 기록, 2021년에는 그 규모가 444억 달러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이후 매해 32%의 높은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해 2025년에는 1772억 달러 규모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는 “현대차그룹과 함께 모빌리티 산업이 직면한 변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물류·재난 구호·건설 공사 등 다양한 산업을 자동화할 계획”이라며 “‘사람을 돕는 기술’이라는 로보틱스의 도전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협력할 것”이라 밝혔다.
한편 현대차그룹 내 조직인 ‘로보틱스랩’도 사람을 돕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하반신 마비 환자의 보행을 돕기 위한 의료용 착용 로봇 ‘멕스(MEX)’와 산업 현장에서 고개를 들고 장시간 근무하는 작업자를 보조하는 착용로봇 ‘벡스(VEX)’가 유명하다. 이외에도 로보틱스랩은 올해 5월 AI서비스 로봇 ‘달이(DAL-e)’, 로보틱 모빌리티 ‘아이오닉 스쿠터’ 등을 공개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하반신 마비 환자의 보행을 돕기 위한 의료용 착용 로봇 ‘멕스(MEX)’ 개발자들에게 “우리 중 누구에게도 이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류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니 최선을 다해 개발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남들이 땅만 쳐다볼 때 하늘에도 도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서울 스마트 모빌리티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현대차그룹의 UAM(Urban Air Mobility) S-A1을 살펴보고 있다. [동아DB]
2020년 1월 현대차그룹은 승차 공유 기업 우버(Uber)와 UAM 사업 분야를 대상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우버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정립한 항공 택시의 개발 프로세스를 외부에 개방, 글로벌 PAV제작 기업들의 개발 방향성 확보에 도움을 주고 있다. 파트너십 체결로 현대차는 PAV를 개발하고, 우버는 항공 승차 공유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에게 도심 항공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그해 CES(소비자가전전시회)에서 현대차그룹은 실물 크기의 PAV 시제품 ‘S-A1’을 최초 공개했다. S-A1은 날개 15m, 전장 10.7m의 크기로 활주로 없이도 전기 추진 수직이착륙(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and Landing)을 통해 어디든 뜨고 내릴 수 있다. 탑승 가능 인원은 조종사 포함 총 5명이며 최장 100km를 비행할 수 있다. 최고 속력은 290km/h에 달하고, 이착륙 장소에서 승객이 타고 내리는 5분여 동안 재비행을 위한 고속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말 구체적인 UAM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2028년에는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 2030년대에는 인접한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지역 항공 모빌리티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해 독보적인 효율성과 주행거리를 갖춘 항공용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 개발도 추진한다.
UAM 이착륙장 관련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와의 업무협약을 비롯해 LA 등 미국 주요 도시, 싱가포르 등과 신규 시장을 열기 위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UAM 법인 설립, 항공우주 기술 개발 전문가 영입 등 조직도 확대하고 있다.
‘수소차 세계 1위’ 타이틀 놓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의 핵심 분야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이하 수소차) 중심의 전동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넥소’ 양산에 성공하는 등 수소차 분야의 선두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수소차 업계 시장점유율은 51.7%를 차지했다.현대차가 수소차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던 이유는 뚝심이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수소차 손절에 나섰다. 수소차보다 단가가 싸고 충전소가 많은 전기차로 방향을 바꾼 것. 2020년 4월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GM, 혼다, 아우디 등의 기업이 수소차 개발을 보류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수소차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포기해도 수소차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던 현대차에 최근 호재가 생겼다. 다시 수소차로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수소연료전지가 차세대 탄소중립 발전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기술개발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소차는 승용차가 아닌 상용차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존하는 전기차의 최대 주행거리는 500km 남짓. 하지만 수소차는 수소 충전량에 따라 최대 1000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장거리 운행이 필요한 물류·대중교통 분야에서는 전기차보다 수소차에 거는 기대가 크다.
게다가 각국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디젤 트럭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자, 완성차 업체들이 뒤늦게 수소트럭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 13일 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는 볼보와의 합작회사 ‘셀센트릭(Cellcentric)’을 통해 2025년부터 수소연료전지 양산과 수소트럭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수소트럭 ‘엑시언트’ 개발에 착수했다. 2019년 11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국제 상용차 박람회인 ‘솔루트랜스(Solutrans)’에서 현대차그룹의 수소연료전지 대형트럭(이하 수소트럭) 프로젝트가 ‘올해의 트럭 혁신상(Truck Innovation Award)’을 수상했다. 2020년 7월에는 엑시언트 양산에 성공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7월 6일 전남 광양시 광양항에서 세계 최초로 양산한 수소트럭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XCIENT Fuel Cell)’ 10대를 선적하고 스위스로 수출했다고 밝혔다. 수소트럭의 경우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상용화를 위한 실증 사업에 투입되는 프로토타입과 전시용 콘셉트카를 선보인 적은 있지만 일반 고객 판매를 위한 양산 체제를 갖춘 것은 현대차그룹이 최초다.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 7대가 고객 인도 전달식을 위해 스위스 루체른 교통박물관 앞에 서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2040년 수소에너지 대중화 원년”
수소차 외에도 현대차그룹은 수소연료전지를 다양한 분야에 도입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9월 7일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 글로벌 온라인 행사를 열고 2040년을 수소에너지 대중화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이날 기조 발표자로 나선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꿈꾸는 미래 수소사회 비전은 수소에너지를 ‘누구나, 모든 것에, 어디에나(Everyone, Everything, Everywhere)’ 쓰도록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런 수소사회를 2040년까지 달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또 “수소사회 실현을 앞당길 수 있도록 앞으로 내놓을 새로운 상용 차량은 모두 수소전기차 또는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28년까지 모든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적용하겠다”며 “이를 위해 가격과 부피는 낮추고 내구성과 출력을 크게 올린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상용차의 전면적인 친환경 전환 계획 발표는 세계 자동차 회사 중 처음이다.
정 회장은 전기차 개발에도 열성적이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는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내연기관차의 엔진과 미션 역할)인 ‘E-GMP’를 바탕으로 ‘아이오닉5’ ‘EV6’ ‘GV60’을 차례로 출시했다. E-GMP는 한국공학한림원 선정 ‘2021년도 산업기술성과’로 선정되기도 했다. E-GMP를 바탕으로 만든 전기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주행거리, 상품성, 안전성을 확보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차는 글로벌 판매 차량 중 전동화(전기차·수소차) 모델 비중을 2040년까지 8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동화 모델로 출시하고, 2030년까지 총 8개 차종으로 구성된 수소 및 전기차 라인업을 완성할 예정이다. 기아는 2035년까지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와 수소차의 판매 비중을 9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외에도 새로운 전기차 연구·개발도 진행한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11월 “미국의 전기차 전문 기업 ‘카누(Canoo)’와 협력해 카누의 설계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공동 개발한다”고 밝혔다. 미국 LA에 본사를 두고 있는 카누는 모터, 배터리 등 전기차의 핵심 부품을 표준화된 모듈 형태로 장착하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분야에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구조를 차체 상부에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플랫폼 길이도 자유자재로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카누와의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 및 대량 양산에 최적화되고 가격경쟁력을 갖춘 전기차 플랫폼 콘셉트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해법 찾는 것은 현세대 의무”
현대차그룹이 수소 및 전기차 개발에 힘쓰는 이유에는 정 회장의 남다른 신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 회장은 사내 포럼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전 지구적 기후변화 해법을 찾는 것은 우리 세대의 책임과 의무”라고 밝힌 바 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서는 멋진 말과 연구가 아닌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실제로 정 회장 취임 후 현대차그룹은 친환경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의 해양 생태계 보전 프로젝트, 중국의 내몽골 사막화 방지 3기 사업, 국내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조성 지원사업 등을 올해 시작했고, 유엔(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을 위해 유엔개발계획(UNDP)과 파트너십도 맺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차 정몽구재단은 지난 7월 친환경 소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론칭했으며, 이르면 연말 친환경 소셜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팅 거점이자 허브인 ‘온드림 소사이어티’(가칭)를 선보일 계획이다. 정 회장은 5월 폐페트병에서 추출한 재생섬유 업사이클링 티셔츠를 착용하고 친환경 SNS 릴레이 캠페인 ‘고고챌린지’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함께 제로원 1·2호 펀드를 출범시켜 모빌리티, 친환경차, AI, 커넥티드카와 같은 미래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협력 생태계를 스타트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총 87개 협력사와 412개 스타트업(사내 스타트업 포함)이 전동화 시스템과 스마트팩토리,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관련 사업, IT·소프트웨어 등에서 상호 협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나부터 바뀌겠다”는 리더 정의선
한편 현대차그룹 측은 “정의선 회장이 격의 없는 소통에 발 벗고 나서는 등 조직문화 혁신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사내 워크숍에서 “과감하게 시작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빠르게 시도하는 조직문화를 기대하고 있다”며 “기업 역할의 창의적 변화는 내부 구성원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사내 기업가 마인드와 개척자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하지만 정 회장이 말하는 ‘변화’와 ‘혁신’의 출발점은 구성원이 아닌 회장 본인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리더’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변화에 ‘구성원과 함께하는 리더’가 되겠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수석부회장 재임 시절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사내 포럼에서 “저부터 바뀔 수 있도록 하겠다.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먼저 바뀌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정 회장의 귀는 임직원들의 목소리에 항상 열려 있다. 올 3월 그는 직접 임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열고 현대차그룹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기존에 했던 보상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전체 직원의 눈높이를 쫓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성과급과 인사를 더 정확하고 철저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뤄진 혁신과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성과로 나타났다. 현대차와 기아는 두 회사를 합쳐 올 9월까지 505만여 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13.1% 늘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 시장에서 산업 수요 증가율을 웃도는 판매율을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 전체 차량 판매량이 13.3% 증가하는 동안, 현대차·기아는 117만5000여 대를 판매해 33.1%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 시장점유율은 전년 대비 1.5%포인트 늘어난 10%를 기록했다. 유럽에서는 지난 8월까지 66만3000여 대를 판매했다. 작년보다 28.3% 늘어난 수치다. 현대차와 기아를 합친 유럽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7.1%에서 올해 8.1%로 1%포인트 상승했다.
현대차그룹은 고급차, 고성능차 등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비중도 크게 늘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올 9월까지 전 세계에서(국내 포함) 전년 동기(9만1000여 대)보다 57% 많은 14만4000여 대를 판매했다. 제네시스는 올해 유럽과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본격 공략에 나섰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원자재 가격 상승,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정 회장이 그룹의 역량을 결집해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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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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