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인천공항검역소가 지난해 11월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조류인플루엔자 인체 감염 모의환자를 임시격리실로 이송하고 있다.
주도권은 바이러스가 쥐고 있다
바이러스는 생명의학 분야에서도 곤혹스러운 존재다. 인류에게 크고 작은 수많은 질병을 안겨주고 있음에도 퇴치할 수가 없다. 수도권에까지 상륙하는 등 전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AI(Avian Influenza·조류인플루엔자)가 보여주듯이, 주도권을 쥔 쪽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 같다.
바이러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류에게 대재앙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몇 차례나 보여줬다. 1918~1919년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각각 100만명과 70만명의 희생자를 낸 1957년과 1968년의 독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또다시 대재앙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2003년에 다시 등장한 조류인플루엔자는 닭, 오리, 칠면조 등 수많은 가금류를 떼죽음으로 몰고가면서 이제 인간까지 넘보고 있다. 2003년에 4명이던 감염자 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치사율은 60%에 달한다. 지금까지 감염자들은 조류와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었고, 사람 대 사람 감염은 아직 없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사람 간에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길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대재앙이 찾아올지 모른다.
문제는 바이러스들이 대개 그렇듯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변화무쌍하기에 대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독감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꼽힌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책을 세우려면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바이러스는 파고들면 들수록 더 모호해진다.
1999년 토벤버거 연구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한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미군 산하 병리학 연구소에서 1918년 독감에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서류와 함께 그들의 폐 조직이 든 현미경 슬라이드들을 발견했다. 당시 희생자들을 부검해 만든 슬라이드였다. 독감 바이러스의 잔해가 든 슬라이드가 두 개였다. 연구진은 1918년 알래스카에서 독감에 희생되어 영구동토층에 묻혔던 시신의 폐에서도 독감 바이러스의 잔해를 찾아냈다.
조류독감이 사람독감 된 사례들
독감 바이러스는 RNA로 이뤄져 있다. 그들은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을 이루는 RNA 조각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 중 하나인 헤마글루티닌의 유전자를 온전히 복원해냈다. HA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달라붙어 침투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이다.
연구진은 찾아낸 유전자 서열을 사람, 돼지, 조류의 독감바이러스 서열들과 비교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추정했다. 조사 결과 그 바이러스는 인간과 돼지의 독감 바이러스에 더 가까웠다. 연구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서 직접 유래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했다. 그렇다고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사람의 독감 균주의 근원이 조류 균주이므로 돼지 같은 중간 숙주에서 어느 정도 변형을 거친 뒤에 사람에게 옮겨갔을 수 있다.
그와 달리 1957년과 1968년 사람들을 감염시킨 독감 바이러스는 조류 균주에서 온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다아제(N) 두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구분한다. 현재 N은 16가지, H는 9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둘을 조합하면 144가지가 된다. 예전에는 H1, H2, H3, N1, N2를 조합한 H1N1, H1N2, H2N1, H2N2, H3N1, H3N2의 6가지만 사람에게 감염된다고 보았다. 1918년 스페인독감바이러스의 균주는 H1N1이었다. 1957년 것은 H2N2, 1968년 것은 H3N2였다. 조류에게 고병원성을 띠는 것은 H5와 H7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