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호가호위의 虎, 누구냐 넌?

  • 입력2010-07-29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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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가호위(狐假虎威)라.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일 터인데, 문제는 ‘호랑이’가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이씨가 국무총리실의 공식 보고라인을 건너뛴 것은 확인됐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사찰 의혹이 드러난 뒤 간단한 보고를 받았을 뿐이고, 조중표 전 실장은 보고받은 적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혹의 줄거리는 이 지원관이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 출신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에게 직보했고, 그 윗선에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식 보고라인이 필요 없는 ‘별동대’라는 얘기다. 사표를 낸 이 비서관은 가타부타 말이 없고, 박 차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펄쩍 뛴다.

    대통령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밝히라”고 하고, 검찰이 본격수사에 나섰으니 그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그러나 국무총리실이 자체조사를 한다고 늑장을 부리는 사이에 이 지원관 등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없애거나 숨기려고 했다는 게 검찰의 말이고 보면 철저한 진상이 밝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상이 밝혀진다고 해도 대통령의 말처럼 “어설픈 사람들의 일탈행위”에 그친다면 다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지도 의문이다. 검찰이 ‘여우’들의 배후인 ‘호랑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파문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당장 특검과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고, 여론도 대체로 그에 호응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무분별한 정치공세라고 비난하겠지만, 그들이 야당이라면 이런 호재(好材)를 쉽게 놓으려 하겠는가.

    검찰의 처지는 고약하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김종익(56)씨를 불법내사한 사실을 이미 알고도 덮어주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9월 김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김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제보를 받고서라고 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두 달간 내사를 한 뒤 김씨를 명예훼손 및 횡령 혐의로 서울 동작경찰서에 수사의뢰했다. 동작경찰서의 담당 경찰관은 지난해 2월 ‘무혐의 내사종결’로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당시 동작경찰서장은 담당 경찰관을 교체하면서까지 재수사를 벌여 ‘명예훼손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때 검찰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월권을 미리 알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김선수 민변 회장은 “검찰은 이미 김종익씨 사건을 수사하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범법행위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만으로는 민간인 사찰의 실체를 규명할 수 없고 검찰의 수사를 신뢰할 수도 없다. 특검이나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이 ‘호랑이’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검찰이 쉽사리 ‘호랑이’를 찾아낼 수 있겠는가. 박영준 국무차장은 자신은 관계없다고 하고,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던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은 정치 2선으로 물러났다고 했다. 야당은 여전히 대통령의 형님이 ‘영포 라인의 핵심실세’라고 주장하지만 섣불리 ‘호랑이’로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사건은 ‘어설픈 사람들의 일탈행위’로 좁혀질 개연성이 크다. 다음 수순은 야당 및 비판세력의 반발이겠지만 그것은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무리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완장권력’의 배후가 누구냐는 것보다 비선(秘線)이 작동할 수 있는 권력시스템과 이번 사건을 보는 집권 측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7·28 재보선 은평을에서 누가 이기느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불법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씨는 “평범한 생활인인 나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려야 할 만큼 집요하게 조사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씨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서재에 ‘혁명의 연구’ ‘조선노동당 연구’ 같은 책들이 꽂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김씨가 “평범한 은행원 출신 사업가가 아니라 특정이념에 깊이 빠진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조 대변인은 “김씨는 노사모 출신으로 이광재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했고, 권력의 후광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고 광우병 시위를 부추기는 등 반정부 활동을 한 것으로 돼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김씨는 “이광재 의원과는 태어난 군(강원도 평창군)만 같을 뿐 학연도 일면식도 없다. 정치후원금 지원 여부를 캐물으며 회사 법인카드 사용 내역까지 털었지만 최종적으로 ‘혐의 없음’ 처리됐다”고 했다. 김씨는 또 “제가 노사모냐 아니냐는 사안의 본질이 아니다. 설사 노사모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불법으로 사찰을 해도 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한나라당 대변인의 말처럼 김씨가 (지난 정권 때) 권력의 후광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졸 은행원 출신의 중소 기업인이 무슨 권력의 후광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어느 개인이 진보성향의 사회과학도서를 읽었다고 해서 ‘특정이념에 깊이 빠진 사고의 소유자’로 단정하는 이분법적 인식은 놀라울 정도다. 색깔론으로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구태(舊態)일 뿐이다. 언제까지 좌파 타령인가.

    보수고 진보고, 우파고 좌파고 간에 상식과 양식을 벗어나면 나쁜 보수 나쁜 진보, 추한 우파, 추한 좌파다. 하물며 법치를 내세우는 보수정권의 권력엘리트들이 출신지역을 연고로 ‘별동대’를 만들어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하고 불법 탈법을 자행했다면 그들은 이미 보수도, 우파도 아니다. 더구나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은 채 발령도 받지 않은 노동부 공무원 신분으로 버젓이 민간인 사찰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두 달씩 불법사찰을 하고도 피해자가 민간인인 줄 몰랐다는 거짓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윤리’가 민망하지 않은가.

    선진국민연대의 ‘선진’도 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선진국민연대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 외곽조직이었다. 박영준 국무차장과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2007년 10월 전국 2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를 모아 선진국민연대를 출범시켰다. 출범 1개월 만에 등록회원 수가 43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이 단체 출신 인사가 정·관계 요직을 장악했다. 이른바 ‘개국공신’의 대우를 받은 것이다. 물론 어느 정권이든 정권 창출에 공이 있는 인물이나 세력에게 일정한 지분이 돌아가는 것이 상례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만들고, 경륜 있는 인사들이 요직을 맡아 정책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탓할 게 아니다. 문제는 권력을 공익(公益)보다는 사익(私益)을 실현하는 도구로 악용하려는 데 있다. 지난해 2월 이 단체 간부 250여 명이 모인 청와대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소개하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끼리끼리 전리품(戰利品)을 배분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것이 ‘선진’인가.

    선진국민연대의 산파역이었던 박씨는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들어갔다. 선진국민연대 출신 10여 명이 그와 함께 청와대로 입성했다. 이들은 곧 ‘권력 내 권력’을 형성했다고 한다. 2008년 6월, 친이계 소장파로 분류되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며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비서관 등을 겨냥했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 비서관이 ‘형님 권력’을 등에 업고 인사를 전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여파로 박 비서관은 청와대를 떠나야 했지만 이듬해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재기했다.

    ‘왕(王) 비서관’이 ‘왕 차장’으로 귀환한 것이다.

    정두언 의원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혹이 불거지자 “처음 그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으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2년 전 박 당시 청와대 비서관 등의 권력사유화 위험을 경고했는데도, 권력 핵심부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아 ‘영포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박 차장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장제원 의원은 “정 의원이 야당의 의혹 부풀리기가 사실인 것을 전제로 자신의 선명성을 보이려 하고 누군가(박영준 차장)를 권력을 전횡하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친이(親李)- 친박(親朴) 갈등에 이어 친이계 내부까지 반목하는 상황으로 번지자 급기야 대통령이 양측에 내분이나 권력투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취지의 경고를 전달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와 정부 내 비선조직의 불법행위이자 측근의 부당한 인사개입인데 이를 권력투쟁으로 모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권력투쟁의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정 의원의 말이 옳다고 본다. 영포회든 선진국민연대든, 혹은 그들이 결합되었든 국가의 공적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비선조직이 존재한다면 그것부터 발본색원해야 한다.

    호가호위의 虎, 누구냐 넌?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박 차장은 지난해 포스코 회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말 KB금융지주 회장 인선파동 때도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의 개입 의혹이 일었다.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인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사퇴)은 매달 시중 은행장과 공기업 사장 등을 시내 호텔에서 만나 모종의 영향력를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거래소 이사장 교체에도 개입했다는 등 선진연대 및 영포회와 연관된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이 대통령은 산더미 같은 의혹부터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가호위의 호(虎)’를 향한 화살은 결국 대통령에게 향할 것이다.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 야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 등으로 물타기해서 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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