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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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을 사먹고 길을 걷는다

오늘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에게 숨기지 못하고

네가 내 오른뺨을 칠 때마다 왼뺨마저 내어주지 못하고

또 배는 고파 허겁지겁 자장면을 사먹고 밤의 길을 걷는다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어 밤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다

이제 막 솟기 시작한 푸른 별들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감히 별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들길을 걷는다

새들이 내 머리 위에 똥을 누고 멀리 사라지고

들녘엔 흰 기차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내 그림자가 기어이 나를 버리고 기차를 타고가 돌아오지 않는다

어젯밤 쥐들이 갉아먹은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

신발도 누더기가 되어야만 인간의 길이 될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한 길과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 누더기가 되어

아침이슬에 빛날 때까지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늙은 신발 하나뿐

다시 자장면을 사먹고 길을 걷는다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鄭浩承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現 현대문학북스 대표

저서 :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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