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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다방의 추억

클래식 다방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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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다방의 추억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중반,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는 클래식 다방이 네 곳 있었다. 나는 그중 ‘이삭’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다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클래식 다방이라고는 하지만 이삭의 실내 분위기는 그다지 ‘클래식’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클래식 다방이라면 으레 벽에 걸려 있던 베토벤의 초상화나 은발을 휘날리며 지휘하는 카라얀의 멋진 옆모습을 담은 사진도 없었다. 탁자에는 이리저리 흠이 나 있었고, 의자 커버는 벗겨져서 속이 다 들여다보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 다방을 좋아했던 것은, 우선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도장을 찍듯이 다방에 들러 50원짜리 홍차 한 잔을 마시고 하루종일 들락날락해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아예 책가방을 다방에 두고 수업에 들어갔다가 수업이 비는 시간에 다방으로 돌아와 음악을 듣고, 그러다 또 다시 수업에 들어가는 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말하자면 이삭은 내 대학생활의 거점이었던 셈이다.

내가 그 다방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손님의 취향에 ‘야합’하지 않는, 우직할 정도로 초라한 실내 분위기 때문이었다. 주인 입장에서야 내부를 장식할 돈이 없어 실내를 방치해두었는지 몰라도, 여하튼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삭의 초라한 분위기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당시 ‘문화의 산실’이라 일컬어지던 ‘학림다방’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유명하다는 서울대 문리대 앞 학림다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고교시절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실내 분위기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여고 시절 내내 그려온 학림다방은 지극히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를 갖춘 곳이었다. 벽에는 유명 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한 가득 걸려 있고, 음악이 흐를 때면 연주자만큼이나 멋지게 생긴 DJ가 음악의 제목과 작품번호, 연주자의 이름을 칠판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다음 바람같이 유리상자 안으로 사라지는 곳…. 대학에 가면 학림다방에 꼭 한번 가보겠노라며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 이런! 어둠침침하고 초라하며 다소 허무주의적인 냄새마저 풍기는 학림다방은 그토록 오랜 나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했다. 그때 그 기분이란….



하지만 나는 실망을 곧 자부심으로 바꾸어버렸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의 산실이란 모름지기 얄팍한 상업주의를 거부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야무지게 합리화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학림다방이나 이삭 같은 곳이 진정 ‘클래시컬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벼락부자의 깔끔한 살롱보다는 고뇌하는 예술가의 초라한 공간이 내 취향에 훨씬 맞는다고 자부하면서 나는 마음껏 그 시절의 철없는 허영을 즐겼다.

아침 일찍 이삭의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를 때, 다방 안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차 나르는 아가씨에게 ‘음대생이 이 곡의 제목도 모르냐’며 핀잔을 들었던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누군가가 탁자 위에 가사를 적어놓았던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 나는 이러한 음악들과 더불어 꿈 같은 대학생활의 전반부를 보냈다.

당시 이삭에 출근하는 대학생은 나말고도 여럿 있었다. 대부분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클래식 애호가들이었는데,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예술과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되면 근처 선술집으로 달려가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어쩌면 그때 우리가 나누던 대화는 삼류철학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젊은이답게 지향하는 이상이 있었고, 대단히 진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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