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중국 고등교육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학술보고회에서 산업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해 화제가 됐다. 양 교수는 창조와 혁신의 4가지 유형으로 아인슈타인, 두보(杜甫), 빌 게이츠, 닌텐도를 꼽으며 이 가운데 중국에 필요한 것은 아인슈타인이나 두보가 아니라 빌 게이츠나 닌텐도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처럼 뛰어난 기초과학자나 두보처럼 문학적 창조력을 지닌 시인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일본 게임업체인 닌텐도처럼 아이디어를 기업화, 상품화해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인재와 기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한두 분야의 노벨상을 받는 것이 중국인들을 기쁘게 할 수는 있겠지만, 빈곤 탈출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초이론식 혁신이 아니라 초고속 생산효과를 거두는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양 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한 면도 있지만, 세계적 물리학자로서 기초과학 못지않게 산업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탁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월 하순 한국공학한림원에서 정책총서로 내놓은 ‘창조적 혁신으로 새 성장판을 열자’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특히 12월 대통령선거에 나설 각 정당의 후보들을 위해 과학기술 정책을 입안하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 책은 먼저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 정체의 늪에 빠질 잠재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과학기술의 수많은 아이디어와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 창조’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글로벌 경쟁에 요구되는 높은 자유도를 지닌 시장 친화적 마인드와 행동 양식을 바탕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창조형 기술혁신체제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기술혁신정책에서의 관제탑 역할을 충분히 하고 민간부문과의 상생에 주력해야 한다. 최근 과학기술 투자의 양적 확대에 따라 자원 배분을 관료가 주도하고 있다. 이런 세태에서 벗어나 전문가 그룹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노력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한다.
기술혁신 주체들의 변화도 촉구한다. ‘기업과 대학이 전면에 나서고 정부가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말 그대로 시장주도, 민간주도 혁신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계를 향해 능동적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해달라고 당부하는 마지막 대목은 자못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흔히 예산 당국은 예산을 잡아먹는 3대 하마로 농민, 군대, 그리고 과학기술을 꼽는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과학기술은 이제 여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무엇을 해달라는 과학기술계가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는 과학기술계가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며 경제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 문제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학기술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정책총서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창의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창의적 실용지식 창출’이 아닌가 싶다. 양전닝 교수가 제시한 혁신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임에 틀림없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창조 한국을 향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는 지적이다. 말하자면 공학문화가 결코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셈이다.
공학문화는 여러 측면에서 과학문화와 다르다. 먼저 관심의 대상이 다르다. 과학문화는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기초이론을 다루는 반면에 공학문화는 실생활과 산업현장에서 곧잘 접하는 정보기술, 생명공학기술, 환경기술 등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두 문화의 기본 특성이 구별된다. 과학문화는 기초과학 이론을 소개하기 때문에 지식 위주이며 아무래도 과거 지향적이지만 공학문화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을 확산시켜야 하므로 정보 중심이며 미래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