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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전야에 타오르는 도발적 섹스, 그리고 금기에 대한 욕망

혁명 전야에 타오르는 도발적 섹스, 그리고 금기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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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이라는 핏빛 기억에 남겨진 일탈의 증거들. 혁명은 청춘이고 모반이고 성적 욕망의 폭발이다. 섹스 혹은 사랑에 대한 열정은 곧 혁명에 대한 열정이다.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욕망, 그것이 곧 사랑이고 혁명이다. 혁명이란, 결국 사랑이다.
… 혁명과 사랑, 혹은 관능 …

혁명 전야에  타오르는 도발적 섹스, 그리고 금기에 대한 욕망

‘몽상가들’

때로, 어떤 영화는 머리가 아닌 심장에 먼저 들어와 박힌다. 그래서 생각이나 관념이 바뀌는 게 아니라 영혼이 살짝 어디론가 이동해버린다. 심장이 들은 언어이기에 이유를 설명하자면, 힘들다. 그래서 그 이유들은 길어진다. 세상 어떤 언어도 심장과 영혼을 움직인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게다가 불충분하다. 마치 언어화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듯 완전한 이성의 알리바이로 그런 작품들은 오롯이 존재한다.

혁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난 후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기술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역사적으로 분기점을 이룰 때, 우리는 그 사건을 가리켜 ‘혁명’ 혹은 ‘사태’라고 이름 붙인다. 프랑스의 68혁명, 일본의 전공투, 그리고 1980년대 대한민국의 대학가, 그리고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이라면 실패한 혁명이자 미완의 혁명이라는 사실이다. 예술가들은 이 변혁의 과정을 뜨거운 욕망의 시선과 곧잘 병치했다. 섹스를 통한 세기말적 자기 소멸을 그려낸 무라카미 류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공투 세대의 상실감을 반영했다고 평가되곤 한다.

그런데 왜일까. 실패한 혁명, 혹은 미완의 사태들은 왜 관능의 언어와 함께 환기되곤 하는 것일까. 미칠 듯이 거리로 달려 나갔던 청춘의 에너지가 최초의 성적 경험에 대한 무한한 일탈과 경도로 표현되곤 한다. 혁명이라는 핏빛 기억에 남겨진 이 일탈의 증거들. 한편 혁명은 젊은이의 열정과 치기, 무모한 투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어떻게 20대를 관통했던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의 소용돌이들, 이를테면 법과 질서라고 불리는 완강한 것들에 대한 불만을 무엇으로 토로했던가. 돌이켜 보면 그 토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둔중한 웅얼거림과 닮지 않았던가. 그 뜨거운 열망은 사랑하는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열정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 밤을 하얗게 새울지언정 잊을 수 없는 그 이름들, 자유 그리고 너. 혁명은 청춘과 너무도 닮아 있고 그 열정은 또 모반을 꿈꾸는 젊은 성적 욕망과 유사하다. 여기 놓인 두 작품은 다시 한 번 섹스와 혁명을 생각게 한다. 사랑에 대한 그 열정과 혁명에 대한 열망을 나란히 두고 바라본 작품, ‘몽상가들’과 ‘여름궁전’이다.



유모의 빈 젖을 빠는 황제

‘몽상가들’을 연출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감독이다. 대중적으로는 ‘마지막 황제’로 알려졌지만 실상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이 각인된 것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통해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말론 블랜도의 강인한 연기와 이해하기 힘든 변태적 섹스로 환기되곤 한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 황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영화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카데미상을 여러 개 수상한 훌륭한 작품이라는 말에 보러 갔는데, 꽤 야한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의 다른 어떤 내용보다 독특한 성적 비유가 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예컨대 이런 장면들. 푸이 황제가 첫날밤 초례를 치르는데 황후, 조안 챈이라는 배우가 황제의 이마와 얼굴에 수많은 입술 자국을 남긴다. 야릇했다. 또 이런 장면도 있었다. 제법 청년티가 나는 황제가 유모의 풍만한 젖가슴에 매달려 빈 젖을 빤다. 이상했다. 그리고 이런 장면도 있었다. 자신에게 무심한 황제에게 지친 황후가 눈물을 흘리는데, 궁녀인지 후궁인지가 그녀의 발가락을 빨아준다. 위험했다. 이상하고도 기묘했지만 기묘한 만큼 슬픈 장면들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해력이 생긴 이후 다시 돌이키니, 이 장면들은 노쇠한 나머지 퇴폐로 추락한 중국의 황실을 비유한 것이었다. 넓디넓은 자금성의 유일한 남자였던 푸이, 그의 고독. 그리고 누구와도 소통할 길 없이 거대한 궁 안에 갇힌 왕족들의 퇴폐는 수천년의 역사가 몰락한 순간의 고독이자 영원한 것은 없다는 허무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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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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