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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춘

현대와 공감하는 새로운 한국화 개척한 ‘이단자’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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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춘

검은 풍경 175X130 한지.

아내의 동행

그는 전통적인 방법과 재료에 머물지 않고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었음에도 늘 새로운 형태, 또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한국적 화단 현실에서 본다면 겉멋만 좇는 ‘철없는 젊은이’로 보였지만 선배와 은사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는 다른 면모로 자신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에게 전통이란 지키고 감내해야 할 가치지만,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정신도 그에 버금가는 가치라고 믿었다. 그의 자연관과 산수화적 태도는 단순히 바라보고 즐기는 와유(臥遊)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생한 날것으로서의 자연을 포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동양의 산수화는 원래 현실기피적인 문인이나 지식인들이 청담사상을 근저로 한 운둔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전통은 조선후기 진경(眞景)의 시대,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실경(實景)산수로 이어지면서도 여전히 산수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뼈대였다.

하지만 박병춘의 산수는 ‘채집된’ 동시에 ‘흐르기’도 하고,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의 새로운 산수는 우리에게 자연을 보고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게 하는 한편, 자연이 우리의 삶의 공간을 확정짓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부족한 문자향 서권기를 땀내 나는 셔츠와 수북한 사생화첩의 양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땅 방방곡곡을 발로 딛고 손으로 그려 마침내 그 위업을 달성했던 것처럼, 발로 구석구석을 더듬고 나다니면서 사생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의 자연을 재구성한다. 이것은 삶과 사람과 유리된 풍경, 자연이 아니라 사람의 살 냄새나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다.

그의 고난과 희열이 교차하는 사생현장에는 언제나 아내가 동행했다. “나에게 있어 화첩은 삶이다. (중략) 새벽안개가 내린 강가에서 작업(사생)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아침밥을 짓는 아내의 호흡이 함께했다. 산과 들, 계곡에서 나와 아내의 사랑은 끈끈하게 묶이고 내 붓은 나만의 개성을 찾아갔다”는 그의 술회처럼 그의 그림에 대한, 사생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부창부수라고나 할까. 그뿐 아니라 전공을 같이한 손위의 아내까지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었다.

모필을 들고 사생하는 남편과 그 옆에서 새벽바람을 맞으며 밥을 짓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는 자연을 바라보며 사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남편과 그 남편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에게 자연과 산수화는 더 이상 호연지기를 기르는, 또는 인격도야를 위한 유한한 자리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처절하게 자연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의 삶의 장이자 실천의 장인 동시에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었다.

가족과 함께 사생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름다운 일이고 즐거운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변한 시간강사 자리 하나에 목을 매고 있는 그에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사생이란 여행이 아니라 장돌뱅이가 오일장을 떠도는 것처럼 삶 줄이 걸린 일이었다. 그의 산수화가 현실도피적인 속성을 지닌 은둔자들을 위한 산수화가 아니라 현실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 것은 바로 자연이 화가인 그에게는 직장이자 살판 아니면 죽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라면 필법

그의 산수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전통회화의 맥을 이은 회화들은 개인적인, 극도(極度)로 격을 따지는 그림들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말기 재주 많던 오원 장승업(1843~1920)의 등장과 그에 대한 평가는 박병춘의 작업이 왜 독특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가 된다. 뛰어난 기량을 지녔던 장승업은 인물산수, 기명 등 다양한 화제를 능란하게 다루어 화명을 떨치고 후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기이한 형태와 강렬한 필묵법과 설채법을 특징으로 하는 장승업의 화풍은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에 의해 계승되었지만 그들의 그림에는 격조가 없다 하여 크게 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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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미술비평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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