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카미유 클로델’
제인 오스틴의 사랑과 실패를 영화화한 작품 ‘비커밍 제인’은 이런 지문으로 끝난다. “제인 오스틴과 그녀의 언니 카산드라 오스틴은 평생토록 미혼으로 살았다.” 이 짤막한 구절은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잘 알다시피 제인 오스틴은 결혼으로 성사되는 수많은 연애담을 써냈다. 선량하고 성실한 남자에게 다정한 청혼을 받는 여인. 게다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마치 제인 오스틴처럼 가난하지만 지혜로우며 총명하다. 가난한 집안의 딸과 명망 있는 상속남의 만남, 여기까지는 소설이나 생애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결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늘 청혼과 결혼으로 끝났지만 실제 제인 오스틴은 단 한 번도 결혼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말 그대로 평생 혼자 살다가 죽었다.
영화 ‘비커밍 제인’은 오스틴가의 막내딸이자 파과기(破瓜期)의 결혼 적령기 여성인 ‘제인’이 어떻게 대문호 제인 오스틴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상상력으로 구축된 작품이다. 처녀로 죽은 제인 오스틴, 그녀에게는 과연 자신의 작품 속 로맨스 같은 것이 없었을까, 라는 상상 말이다.
그리워하고 의심하다 결국 고백하는…
뛰어난 로맨스 소설가이자 심리 묘사가인 제인 오스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첫 연애담에서 시작된다. 도회지에서 온 세련된 청년이 시골 마을의 한 처녀와 만나게 된다. 남자는 친구를 데리고 온다. 한 남자는 부유하지만 어딘가 고지식하며 지나치게 순진하고 다른 한 남자는 야성적이며 지적이지만 불행히도 가난해 보인다.
자랑할 것이라고는 알량한 가문밖에 없는 남자와 가난한 시골 처녀의 만남. 눈치 챘다시피 제인 오스틴의 삶을 다룬 영화 ‘비커밍 제인’의 설정은 그녀의 소설 ‘오만과 편견’과 닮아 있다.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나 ‘센스 앤 센서빌러티’에서 본 익숙한 구도가 영화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러티’는 낭만적 연애결혼의 꿈을 말랑말랑하게 직조해낸 격조 있는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이안 감독이 연출한 ‘센스 앤 센서빌러티’는 오스틴의 작품이 지닌 섬세한 매력을 싱그러운 사랑의 두근거림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격정적 사랑을 꿈꾸는 여동생과 봄날 오후의 때늦은 비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언니의 사랑, 대조적 인물들의 연애담은 섬세한 뉘앙스와 오묘한 표현으로 넘실댄다. 사랑하는 연인을 부르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외치는 여동생의 모습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한편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인 워킹 타이틀사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리워하고, 의심하다, 결국 고백하고 마는 난해한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엘리자베스의 손을 스친 다아시의 떨림은 클로즈업된 다아시의 손가락으로 묘사되고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그리움은 엘리자베스의 흔들리는 동공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여자의 집안을 모욕하는 ‘오만’과 남자의 주변에 떠도는 험담을 무조건 믿어버린 ‘편견’ 때문에 우회로를 거쳐야 했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형편없는 재산과 단정치 못한 동생을 지닌 엘리자베스이지만 그녀의 교양과 재치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환상을 가능케 한다.
소설 속에서는 해피엔딩이지만…
‘비커밍 제인’의 스토리는 ‘오만과 편견’이나 ‘센스 앤 센서빌러티’의 서사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이지적 여성 제인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있고 제인 오스틴은 그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할 준비까지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결혼은 남자의 후견인이 허락하지 않는 잘못된 만남이다. 제인 오스틴은 사랑을 포기하고 포기한 사랑을 소설로 써내는 데 열중한다. 그러니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모두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인 데 반해 ‘비커밍 제인’이 선택한 결말은 좀 다르다.
영화 속 제인 오스틴이 맞는 결말은 실제 제인의 삶과 닮아 있다. 제인은 연인과 모든 것을 버리고 도피하려고 하지만 결국 현실 앞에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소설 속에서야 도피가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만만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상은 소설의 엔딩으로 적합하지만 현실은 환상에 관대하지 않다. 소설과는 달리 제인 오스틴은 낭만적 사랑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녀의 소설은 사실 그녀가 영원히 이루지 못했던, 실패한 삶에 대한 복구에 가까웠던 셈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 낭만적 연애 끝에 결혼에 도달하지만, 당대 현실은 정반대였다. 결혼하지 못한 여자들은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었기에 고스란히 부모의 짐이 되거나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가정교사로 일생을 마쳐야 했다. 결혼은 낭만보다 조건, 사랑보다 금전에 따라 결정되었고 연애는 이후의 문제였다. 낭만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19세기 영국의 결혼!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타난 낭만적 연애 서사들은 현실이라기보다 환상이자 꿈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영화 속에서 제인은 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설의 시작은 그래.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남자. 그리고 상속받게 될 남자. 그리고 가난한 여자가 등장해. 상황은 나빠. 그리고 더 나빠져. 하지만 결론은 해피엔딩이야. 성대한 결혼으로 끝나지.” 이 대사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갖는 구조를 압축해준다.
사람들은 행복한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제인의 소설을 좋아한다. 재산과 명망을 따지며 결혼이라는 사업을 추진하는 오스틴 시대의 사람들, 결혼을 하지 못하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던 여자들. 바로크풍의 의상과 경쾌한 무도회가 펼쳐짐에도 ‘비커밍 제인’은 ‘오만과 편견’처럼 가볍지만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가 그려낸 것이 현실을 위장할 환상이 아니라 당대에 두 발을 딛고 살아야 했던 실제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현실이 아니라 그녀의 생애에 결여되어 있던 욕망이자 바람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결핍된 환상의 무대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환상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웃음을 띠며 다가오는 잔혹한 인생의 진실처럼, 그렇게 현실은 소설보다 지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