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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인 산 돋우고 끊어진 물길 잇겠다”

용산공원 설계 공모 당선 승효상 ‘이로재’ 대표

“깎인 산 돋우고 끊어진 물길 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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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공원이 될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작이 발표됐다.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Healing-The Future Park)’. 승효상 대표의 건축사무소 ‘이로재’와 네덜란드의 ‘웨스트8’이 함께 만든 컨소시엄의 작품이다. 조선 말 일본인 거주지로 사용되기 시작해 일제강점기 일본군 병영으로, 광복 후에는 미군 기지로 사용됐던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짓게 된 ‘이로재’ 승효상 대표를 만났다.
“깎인 산 돋우고 끊어진 물길 잇겠다”
승효상(60) 이로재 대표를 만나기로 한 때는 목요일 오전 8시였다. 그 주 월요일 밤, 열흘간의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승 대표는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지방 출장을 간다고 했다. 목요일 오후 다시 중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고도 했다. 간신히 찾아낸 틈이 출국일 아침이었다. 그는 이 약속에 30분쯤 늦었다. 하지만 타박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와 충혈된 눈, 가라앉은 목소리만 봐도 얼마나 서둘러 나왔을지 짐작이 갔다. 한국, 중국에서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는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 당선된 기쁨을 마음껏 즐길 여유도 없어보였다. 연거푸 사과하는 그에게 외려 미안해 “건물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서울 동숭동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이로재는 자택과 사무실을 겸한 공간이다. 4·5층은 승 대표의 집, 2·3층은 건축사무소 사무실, 1층은 개인 작업실이다. 지하에는 승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월·수·금요일 아침마다 검도를 수련하는 체육관이 있다. 2002년 완공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내후성 강판(코르텐 스틸)을 외장재로 사용해 화제가 된 곳이다.

건물은 묵직하고 단단해보였다. 내후성 강판은 승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조성하면서도 사용한 재료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게 특징으로, 처음에는 검은색이다가 표면이 부식되면서 차츰 붉은색으로 변하고, 마지막엔 암적색이 된다. 승 대표는 “기억을 담기에 이만한 재료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택에 썼고,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도 둘러 세웠다. 이로재 외벽은 이미 검붉었다. 흘러간 세월이, 쌓인 역사가 함께 읽혔다.

승 대표는 그동안 많은 것을 이뤘다. 2002년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 건축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 건축 분야의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파주 출판도시의 마스터플랜을 세웠고, 최근엔 세계적인 조경회사 ‘WEST 8’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공원 ‘용산공원’ 설계 공모전에 당선됐다. 그가 내놓은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 아이디어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의 찬사를 받았다. 승 대표를 만나고 싶었다. 바쁜 스케줄을 비집고 들어가는 욕심을 부려서라도.

이슬을 밟는 집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그와 마주 앉았다. 1만여 권의 책과 1000여 장의 음반이 꽂혀 있는 작업실 안에는 라디오 클래식 채널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다행히 그는 곧 생기를 찾았다. 검고 동그란 안경테 너머 눈동자가 반짝였고, 이내 대화가 시작됐다.

▼ 책상 바로 옆에 검을 두셨네요. 검도를 꾸준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건물 지을 때부터요. 10년 전이죠.”

▼ 그럼 검도장부터 만들고, 뒤에 검도를 시작하신 건가요.

“검도가 좋은 운동이라는 건 고등학교 때 알았어요. 대학 가자마자 검도반에 들었는데, 하루 하고 다음 날 휴교가 됐죠. 우리 때는 학교가 수시로 문을 닫았어요. 뒤에라도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나이 들면서 방법을 찾은 거죠.”

승 대표는 서울대 건축학과 71학번이다. 졸업도 하기 전 ‘공간연구소’ 김수근 선생 문하에 들어갔다. 스스로 “며칠, 몇 주일, 몇 달 계속 밤낮없이 제도판을 붙들고 살았다”고 할 만큼 치열한 시절이었다. 5·18 광주항쟁을 겪은 뒤 ‘숨 쉴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어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돌아온 뒤 다시 몸담은 곳도 ‘공간연구소’였다. 밤낮없는 삶이 또 이어졌다.

승 대표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작업을 시작한 건 김수근 선생 별세 후 개인사무소를 내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자택 ‘수졸당’을 지으면서부터다. 1992년이니 아직 유 전 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명성을 얻기 전이다. 가난한 학자였던 그는 승 대표에게 설계비 대신 현판을 하나 건넸다. 전북 부안의 고택에 걸려 있다가 유 전 청장의 애장품이 된 그 널판 위엔 세 글자, 밟을 이(履), 이슬 로(露), 집 재(齋), 곧 ‘이로재’가 적혀 있었다. ‘이슬을 밟는 집’이라니, 꽤 낭만적이다. 속뜻도 깊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고사 한 토막, 효심 지극한 가난한 선비가 매일 아침 이슬을 밟으며 부모 문안을 다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풀이하니 ‘가난한 선비가 사는 집’이 됐다. 승 대표는 이 단어에 반했다. 바로 자신의 건축사무소 이름으로 삼았다.

1992년 자기 건축을 시작하면서 승 대표가 밝힌 철학이 ‘빈자의 미학’이다.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집, 절제와 검박을 갖춘 집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1996년 그가 펴낸 책 ‘빈자의 미학’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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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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