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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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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대에서 잡아두고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급부대로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포로의 입에서 훈장을 상신하는 데 기여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중대장은 화가 났다. 포로 근처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엄명에 바람조차 얼씬하지 못했다. 물도 주지 말라고 했다. 생리적인 볼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기야 이틀이나 입에 넣은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을 터였다. 포로는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스콜이 내렸다. 아열대 몬순기후의 소나기였다. 포로가 눈을 떴다. 따라서 몸뚱이도 움직였다. 몸을 버둥거려 쏟아지는 빗줄기 쪽으로 기어갔다. 빗줄기를 만나자 겨우 입을 벌렸다.

“야! 보초! 저 새끼 빗물도 못 처먹게 해!”

중대장의 고함소리는 대나무를 쪼개듯 빗줄기를 갈랐다. 나는 얼른 걸치고 있던 판초 우의를 벗어 포로에게 덮어씌워버렸다. 후드득 빗소리가 났다. 그 위로 태권도 유단자인 중대장의 발길질이 몇 번이나 지나갔다.

나는 보초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잔뜩 긴장했다. 보초를 서다 보면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와 전우들은 소대장을 원망했다. 중대장의 비위를 맞추느라 자청하여 포로를 감시하는 보초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젠장 중대장 따까리는 말릴 수가 없어.”

우리 소대원들은 비탈길을 오르는 전차의 궤도 소리처럼 투덜거렸다.

‘이건 명백한 제네바협정 위반이야. 포로에 대한 협약 위반이라고.’

나는 파병 전에 포로를 다루는 교육을 받았었다.

베트남전쟁을 끝내고자 열린 파리평화협상은 겉치레로 맴돌고 있었다. 양쪽 진영은 서로의 욕심으로 그어놓은 북위 몇 도 선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전투가 더욱 격렬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전사자가 어느 때보다도 많이 발생한다는 기사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죽으면 효도를, 산다면 공부를

1971년 베트남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나의 군대 복무기간도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입대할 때부터 전쟁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원동기 사업이 실패해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중도에 그만둔 터였다. 제대를 하면 학비가 필요했다. 돈을 만들 다른 방법이라고는 없었다.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베트남전쟁에 지원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께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해 화천군 간동면의 오음리 파월교육대에는 눈이 자주 내렸다. 무릎이 눈 속에 푹푹 빠지는 것은 보통이었다. 사격장에서 엎드려 실탄을 장전하면 가늠자 너머 어머니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미군에 맞춰 만들어서인지 무거운 M-1소총 대신 가벼운 M-16소총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의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훈련장 곳곳의 벽면에는 파월 초기부터 지나간 선배들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마치 서로 다투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 보였다.

‘조국이여 영원하라’

‘부모님전상서’

‘그대여 사랑한다’

‘사랑하는 베트남’

‘굿바이 베트콩’

‘쳐부수자 공산당’

‘조지 워싱턴 고마워’

‘모두들 잘 있거라’

‘전우를 두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불현듯 한 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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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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