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리뷰 조작 혐의, 1400억 원 과징금 철퇴
쿠팡 “자사 제품 우선 추천 당연한 일”
영업이익 반토막 + 순이익 적자, 투자 규모 축소 전망
실제 포기 가능성 높지 않을 것
[Gettyimage, 쿠팡]
공정위는 6월 13일 쿠팡과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납품하는 자회사 CPLB가 공정거래법 제45조 제1항 제4호를 위반했다고 판단,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400억 원을 잠정 부과했다. 또 쿠팡과 CPLB를 각각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이번 쿠팡 제재와 관련해 총 44페이지의 자료를 준비했다. 자료엔 주요 질의응답(Q&A)까지 포함됐다. 공정위가 이번 제재를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작” vs “당연한 일”
공정위는 쿠팡이 2019년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세 가지 알고리즘을 이용해 중개 상품을 배제하고 최소 6만4250개의 자사 상품(직매입 상품 5만8658개·PB상품 5592개)을 검색 순위 상위에 고정 노출했다고 봤다.
세 가지 알고리즘은 △프로덕트 프로모션(1·2·3위 고정 노출) △SGP(기본 검색 순위 점수 1.5배 가중) △콜드스타트 프레임워크(검색어 1개당 최대 15개까지 검색 순위 10위부터 5위 간격으로 고정 노출)다.
공정위는 상위에 고정 노출된 쿠팡의 상품이 검색 결과에서 다른 상품들과 구분되지 않아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는 해당 상품이 인위적으로 상위에 고정 노출됐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판매량 등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상위에 배치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공정위는 쿠팡이 임직원들을 동원해 PB상품 구매 후기를 달고 높은 별점을 주도록 해 리뷰를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공정위는 쿠팡이 구매 후기 수와 평균 별점이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검색 순위에 미치는 효과를 잘 알고 있는 지위를 악용해 인지도가 낮거나 판매량이 적은 PB상품의 구매 후기 수, 평균 별점을 인위적으로 높였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쿠팡이 이미 리뷰 평점을 개선하기 위해 임직원을 이용해 리뷰나 평점을 조직적으로 관리한 행위가 위계에 의한 부당 고객유인행위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음에도 행위를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쿠팡은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공정위의 발표 자료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고, 직원 리뷰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다섯 가지 ‘핵심 증거’까지 제시했다. 상품에 낮은 별점을 주고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한 체험단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공정위가 쿠팡이 의도적으로 높은 별점만을 주게끔 했다며 조작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6월 쿠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뷰 조작’ 지적에 대해 “공정위가 문제 삼은 기간 가운데 직원 리뷰는 전체 PB상품 리뷰 수 2500만 개 대비 0.3%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쿠팡]
공정위와 쿠팡의 싸움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알고리즘이 ‘조작’인지 ‘단순 진열’인지다. 공정위는 쿠팡이 온라인 플랫폼이자 상품 판매자인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봤고, 이에 이중 지위를 가진 사업자가 자사 상품을 중개 상품보다 검색 순위에서 우선 노출한 행위를 제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검색 순위에서 상품 정렬의 위치와 의미는 판매량이나 소비자 만족도 등 상품의 우수성을 순위로 나타낸다고 판단했다.
소비자의 쇼핑 행태에도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소비자가 등록된 모든 상품을 탐색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검색에서 우선 노출 상품 위주로 탐색·구매가 이뤄진다. 반면 오프라인에서는 소비자가 매장 전체를 돌며 모든 상품을 둘러본 후 구매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이유들로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의 검색 순위와 오프라인 매장의 진열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쿠팡은 이에 대해 PB상품은 유통업체의 주요 차별화 전략으로, 모든 유통사가 우선 진열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방어에 나섰다. 입장문을 통해 “우리나라 모든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더 가성비 높은 PB상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이는 고물가 시대 유통업체의 가장 중요한 차별화 전략이다. 소비자들이 ‘커클랜드 없는 코스트코’나 ‘노브랜드 없는 이마트’를 상상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PB상품을 고객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골든 존’에 우선 진열하고 온라인 유통업체도 PB상품을 우선적으로 추천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쿠팡은 공정위 전원회의에서도 이와 같은 논리로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쿠팡은 행정소송을 통해 맞불을 놨다. 쿠팡은 “전 세계 유례없이 ‘상품 진열’을 문제 삼아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과징금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 과도한 과징금과 형사고발까지 결정한 형평 잃은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中 이커머스 공세까지… “로켓배송 불가능해질 수도”
쿠팡으로선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이한 셈이 됐다. 최근 쿠팡은 중국 이커머스 공세로 실적 성장세가 한풀 꺾인 상황이다. 쿠팡Inc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1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1분기 4000만 달러(약 531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1%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손실은 2400만 달러(약 318억 원)를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2022년 2분기 900억 원대 순손실 이후 7분기 만의 첫 적자다.
쿠팡은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중국 이커머스의 한국 진출을 꼽았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실적 콘퍼러스콜에서 “중국 이커머스의 진출을 보면 한국 유통시장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으며 소비자들이 몇 초 만에 다른 쇼핑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최고의 상품군과 가격,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쿠팡이 공개한 투자계획. 2026년까지 물류 인프라 확충에 3조 원 이상 대규모 신규 투자를 진행, 2027년엔 모든 지역에 로켓배송이 가능하게끔 하겠다고 밝혔다. [쿠팡]
김 의장은 “향후 몇 년간 수십억 달러의 자본투자를 지속해 풀필먼트 및 물류 인프라를 강화, 배송 속도를 높이면서 도서 산간 지역 등 오지까지 무료 배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위로부터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받으며 투자 계획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쿠팡은 공정위 제재가 발표되자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로켓배송 상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없다면 모든 재고를 부담하는 쿠팡이 지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 이유다, 또 “전 국민 100% 무료 배송을 위한 3조 원 물류 투자, 로켓배송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 원 투자 역시 중단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쿠팡은 부산 첨단물류센터 기공식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켓배송 중단, 실현되긴 어려워
그럼에도 쿠팡이 로켓배송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사실 로켓배송은 쿠팡의 정체성이나 진배없다. 쿠팡이 국내 유통 대기업과 벌이는 ‘이커머스 경쟁’에서 우위에 선 비결이기도 하다.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도입하면서 배송서비스에 주력했다. 일찌감치 ‘초단기 배송’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크다는 점을 파악했고, 배송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규모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등 설비투자도 공격적으로 단행했다.
이때 쿠팡엔 ‘비전펀드’라는 든든한 자금줄도 있었다. 비전펀드는 2015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약 30억 달러(한화 3조3000억 원)를 투자했다. 쿠팡은 이를 등에 업고 배송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이후에도 투자는 이어졌다. 쿠팡 창립 이후 로켓배송 물류망 구축에 들인 비용만 해도 6조 원이 넘는다.
후발 주자들도 새벽배송, 당일배송, 익일배송 등을 선보였지만 소비자는 이미 쿠팡에 너무 익숙해진 이후였다. 여전히 소비자는 쿠팡의 배송이 가장 빠르다고 느끼고, 이는 쿠팡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쿠팡 록인(Lock-in) 효과의 핵심인 ‘와우 멤버십’ 회원을 모은 기반도 로켓배송이다.
또 쿠팡은 멤버십 가격 인상을 앞둔 상황이다. 쿠팡은 8월부터 와우 멤버십 가격을 종전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쿠팡이 거둬들일 수익은 어림잡아 연 4800억 원 수준이다. 공정위는 쿠팡이 요금 인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다크패턴’(소비자의 실수 등을 유도하는 눈속임 상술) 등 위법 행위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멤버십 가격 인상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소비자 이탈도 예고되는 시점에서 쿠팡이 로켓배송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일각에선 쿠팡이 실제로 부산 물류센터 기공식을 취소하기도 한 만큼 향후 투자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쿠팡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6174억 원)의 23%에 해당한다. 유통업체 기준 역대 최고액이다. 쿠팡은 가뜩이나 올해 1분기 순손실을 냈는데, 재무관리에 더욱 집중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쿠팡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예고한 만큼 이후 법적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관심사다. 앞서 공정위는 2021년 8월 쿠팡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억9700만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쿠팡이 2017부터 2020년 9월까지 ‘최저가 보상’ 정책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LG생활건강 등 총 101개 납품업자에게 동일 제품의 타사 온라인몰 판매 가격 인상과 광고 구매 요구, 할인 비용 전가 등 이른바 ‘갑질’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쿠팡은 2022년 2월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 재판부는 올해 2월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과 시정명령 전부를 취소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불복한 공정위가 상고하며 사건은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다만 대법원 상고심은 원칙적으로 항소심 판결 선고를 기준으로 법률적 오류 여부만을 판단하는 법률심으로 대법원에서 판단이 변경되는 사건은 드물다. 법원은 이미 한 차례 쿠팡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이번에 새롭게 진행될 행정소송에서도 쿠팡이 승소한다면 공정위 제재의 정당성에도 물음표가 찍힐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