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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한국은 ‘대륙 국가’보다 ‘태평양 국가’ 편에 서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한국은 ‘대륙 국가’보다 ‘태평양 국가’ 편에 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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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이번 호부터 ‘박권상의 21세기 일본인 탐험’을 연재한다.
  •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집중 인터뷰, 새 시대를 향해 가는 ‘일본號’의 저력을 파헤친다. 첫 번째 주인공은 1947년 정계 입문 이래 중의원 20선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지난해 은퇴를 선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 동서냉전 막바지 6년간 총리로 재임하며 여러 업적을 남긴 그는 일본 총리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그에게 새로운 동북아시아 질서와 한일관계, 북핵 해법, 일본 헌법 개정논란 등에 대해 고견을 청했다. 필자인 박권상 경원대 석좌교수는 동아일보 고문, KBS 사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으로 ‘자유언론의 명제’ ‘영국을 생각한다’ ‘미국을 생각한다’ 등의 저서를 펴냈다. <편집자>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한국은 ‘대륙 국가’보다 ‘태평양 국가’ 편에 서야”
지난 5월27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 자리한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지하 1층 ‘오색 신록의 방’에선 ‘나카소네 야스히로님의 탄생일을 축하는 모임’이 열렸다. 행사 시작 10분 전인 5시50분에 식장으로 들어서자 100평이 넘어 보이는 대형 식장은 이미 술잔을 들고 오가기 어려울 만큼 손님들로 들어차 있었다. 500명이 넘는 하객들이 일찌감치 모여든 것이다. 대개 일본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일류 명사들이었다.

6시가 좀 넘자 행사가 시작됐다. 주최측의 꽤 긴 인사말과 꽃다발 증정 등에 이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86) 전 총리가 연단에 올랐다. 그의 답사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 우레 같은 박수갈채 속에 등단한 주인공은 장장 35분간 연설을 했다. 그건 형식적인 답례인사가 아니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목청을 드높이는 사자후도 아니었다. 고명한 노학자가 잔잔히 흘러가는 냇물 같은 명강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1980년대 중반, 동서냉전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일본을 일류국가로 만든 지도자,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총리직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륜가다웠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일본이 선택해야 할 대안을 일러줬다. 예컨대 총론격으로 “일본 외교는 세계의 큰 흐름을 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의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외교의 기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자기 힘 이상의 일을 벌여서는 안 되니 실력대로 할 것 ▲도박심리로 외교를 해서 안 되니 모험주의를 경계할 것 ▲내정과 외교를 혼동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 ▲세계의 정통적 조류를 탈 것.

이 4원칙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제국주의 시대에 겁없이 전쟁의 길을 택했다가 처참하게 망한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는 것일까. 전후 어려운 여건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경험과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 동서냉전 막바지 6년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이른바 ‘론-야스관계’를 맺어 일본의 국위를 높이 세운 스스로의 영광을 되뇌이는 것일까.

그는 이렇듯 원론적인 얘기를 마친 후 각론에 들어가 화급한 몇 가지 현안을 열거했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대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외교에서는 서두르는 측이 손해를 보게 돼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게 고이즈미 총리에게 보내는 그의 충고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랬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중요하지만 반드시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해서 진행한다 ▲한국과 맺은 수준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결한다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은 협상의 마지막 순서로 미룬다 ▲일·미·한 3국간 협조체제를 확고히 다지고 지속한다.



‘The Grand Old Man’

그가 연설을 마치자 축사가 이어졌다.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츠네오 회장은 “나카소네씨가 57년간의 긴긴 정치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보다 자유로운 평론가, 언론인으로 입문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1918년생이니 올해로 만 86세인데, 80이 넘은 나이에 직업을 바꿨다고 하니 재미있다. 여전히 건강하고 당당한 풍채다. 그는 명문 도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해군 중위로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내무부에 근무하다 1947년 정치에 입문, 57년간 20회에 걸쳐 중의원을 역임하다 지난해 11월 총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현역정치에서 손을 뗀 백전노장이다.

생일 모임에서 그는 ‘인생극장 의원편’이 끝나고 ‘자유인·평론가편’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를 보면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한 맥아더 장군이 생각난다.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만큼 많은 이가 이념과 입장을 떠나 따르고 존경하는 인물이 있을까.

오래 전 영국에 있을 때 그곳 친구로부터 ‘The Grand Old Man’이란 말을 배운 것이 생각난다. 줄여서 그냥 ‘GOM’이라고도 한다. 처음엔 그저 ‘나이가 든 위대한 인물’ 정도의 뜻으로 알았는데, ‘GOM’에는 고유명사에 가까운 뜻이 있다고 했다.

‘GOM’은 19세기 말 자유당 당수로 4차례나 수상을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별명이다. 글래드스턴은 대영제국의 절정기에 개혁적 보수주의자였던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호적수였다. 영국 민주주의에 획기적 이정표를 세운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했고, 특히 선거부패를 뿌리뽑는 계기가 된 1883년의 선거반부패법을 제정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당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후대에도 존경을 받았으며, 심지어 정적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변천기 영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위대한 지도자로서 그에게 붙여진 준(準)고유명사가 바로 ‘GOM’이다. 한참 후배이지만 윈스턴 처칠도 ‘GOM’ 대열에 끼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밤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을 나오면서 현대 일본에서 ‘GOM’ 호칭을 받을 만한 큰 정치 지도자가 있는지, 만일 있다면 나카소네 전 총리야말로 제1후보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원로’라는 호칭이 붙은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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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권상 언론인·경원대 석좌교수 정리: 이홍천/일본 게이오대 정책미디어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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