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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에서 막내린 ‘양빈 신화’ 내막

신의주특구 미스테리

클라이맥스에서 막내린 ‘양빈 신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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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북한은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고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 부호 양빈(楊斌)을 특구장관으로 임명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발표 직후 양빈이 중국 공안당국에 전격 연행돼 재판에 회부됨으로써 신의주 개방이라는 북한의 야심만만한 시도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과연 북한은 어떤 의도에서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했으며, 양빈이란 수수께끼의 인물은 누구인가. 북한과 양빈은 어떤 협상과정을 통해 신의주특구를 탄생시켰으며, 양빈이 체포된 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의혹과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양빈의 부탁으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해온 중국의 전기작가 관산(關山)이 최근 홍콩의 명보출판사를 통해 ‘불을 훔친 불행한 사람(不幸的盜火者)’을 출판했다. 이 책은 6월 하순경 두우성출판사에 의해 국내에서도 ‘김정일과 양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두우성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주요내용을 발췌 소개한다.(편집자)》

클라이맥스에서 막내린 ‘양빈 신화’ 내막
2001년 1월15일부터 20일까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방문 기간 김정일은 상하이(上海)를 4일간 시찰했다.

김정일은 상하이 방문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베이징(北京)에서 가진 장쩌민(江澤民)과의 회견에서 “중국, 특히 상하이가 개혁개방 이후 이룬 경천동지의 거대한 변화는 중국공산당이 실행하고 있는 개혁개방 노선이 정확했음을 증명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김정일은 상하이 손교현대농업개발구를 참관하면서 유리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각종 채소류와 천태만상의 화훼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농업문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경제의 걸림돌이자 돌파구라는 모순을 안고 있다. 김일성은 생전에 북한이 언젠가는 농업현대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정일도 북한농업의 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던 중에 상하이 손교현대농업개발구를 참관하게 된 김정일은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는 유리온실 설비가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는지에 대해 물었으며 1ha 경영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도 물었다. 또 1ha의 유리온실에서 채소가 1년에 얼마나 생산될 수 있는지, 어떤 야채와 화훼류를 재배하는지도 물었다.



김정일은 귀국 즉시 중국주재 북한대사관에 중국의 유리온실에 관해 자세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보고자료가 신속하게 그의 책상에 도착했다. 그 중 한 보고서에 유리온실 설비와 기술의 최대 공급자는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양빈(楊斌)이라는 것이 나와 있었다. 게다가 그 인물이 현재 자금과 인력을 집중 동원해 선양에 네덜란드촌이라는 현대농업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김정일은 관련 부문과 중국주재 북한대사관, 선양영사관에 지시해 양빈과의 정식 대면을 추진시켰다.

국빈급 예우 받으며 평양 방문

북한의 외국주재 한 무역회사의 사장이 먼저 네덜란드촌을 방문해 양빈을 예방했다. 그는 갓 완공된 면적 4ha의 유리온실을 참관한 뒤 양빈과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후 그 사장은 선양주재 북한영사관 수석영사를 대동하고 다시 양빈을 찾아왔다. 그들은 북한 무역성과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농업성, 원예총사를 대표해 양빈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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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양빈은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 양빈은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그는 평양 모란봉호텔에 묵었다. 이 호텔은 북한정부가 각국 국빈을 대접하는 곳이다.

양빈은 바쁜 일정 속에 북한의 주요 관리들과 몇 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다. 네덜란드유라시아그룹의 명의로 북한 원예총사와 합작하기로 하고 두 회사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평양-유라시아 합영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합영회사는 김일성기념당에서 멀지 않은 평양시 용성구 화성동에 북한 최초의 현대농업시범구를 건설해 김일성이 생전에 못다 이룬 북한 농업현대화 구상과 유지를 기리기로 했다.

2001년 6월30일, 쌍방은 공동으로 평양-유라시아 합영회사의 규정을 완성하고 조직을 구성했다. 총자산은 2200만달러. 양빈이 자금과 설비, 기술을 투자하고 70%의 지분을 차지하기로 했다. 북한은 땅과 인력을 제공하고 30%의 지분을 갖기로 했다.

2001년 7월20일, 쌍방은 평양에서 조인식을 가졌다. 마침내 양빈이 북한 농업현대화 계획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빈, 평양에 농업시범구 건립

2001년 7월21일 양빈 일행은 선양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 바로 유라시아그룹(歐亞集團)의 부총재인 리강(李剛)을 주축으로 평양에 농업시범구 건설을 추진할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MBA학위와 관리경험을 가진 거셴민(葛憲民)을 평양-유라시아 합영회사의 사장, 왕위민(王玉民)을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평양 농업시범구의 기술 총책임자는 구젠핑(谷建平) 교수 및 네덜란드인 전문가로 정했다.

필자는 2002년 4월 평양을 방문해 처음으로 화성동 농업시범구를 참관했다. 이미 유리온실 구조물 설치가 끝나고 온실내부의 파이프 공사를 비롯한 관개(灌漑) 계통을 설치하고 있었다. 태양광선이 쏟아져 들어오는 유리온실 안에 토마토, 피망, 가지, 참외, 오이 등 각종 야채가 자라고 있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이 보는 사람을 기쁘게 했다. 북한 직원들은 채소를 따서 상자에 넣는 포장작업과 함께 이것들을 시내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온실들은 언제 완공됐을까? 물론 지난해 겨울에 시공할 수는 없었겠지? 엄동설한에 750무(畝, 1무는 6.6a)에 이르는 온실을 가득채운 모종을모두 어디서 가지고 왔을까? 의문이 줄을 이었다. 나는 참관을 마치고 간이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왕위민 부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왕위민이 설명했다.

“여기는 조선의 첫 현대농업시범구입니다. 보신 것은 제1기 공정 50ha뿐입니다. 유리온실은 6ha, 즉 6만㎡입니다. 양광온실(陽光溫室)은 76동, 동당 1무에 이릅니다. 이것은 산둥의 수광온실(水光溫室)을 모델로 삼아 개조한 것입니다. 양광온실 뒷벽의 토층은 수광온실보다 훨씬 두텁습니다. 온실 대문 바로 앞에 통일된 규격의 작은 집을 지어 정결하고도 아름다우며 따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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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정리: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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