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북한군 장교 출신 무역 일꾼 호혜일이 폭로한 ‘북한 요지경’

“외화 만지는 北 댄디족, 300달러 주고 평양 톱스타와 하룻밤”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6-08-08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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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5 남북정상회담 때 무기 소지 못한 남한 경호원들
    • 거친 격술훈련에 고환결핵 앓는 군인 많아
    • 1980년대 후반 김일성 지시로 ‘백도라지(아편)’ 심기 시작
    • 당 연락소에 마약 전시하고 외국 바이어와 흥정
    • 신의주 호텔에 알약, 흰 가루 찾는 사람 득실
    • 여배우 아들, 포르노 만들다 교수형
    • 한국 쌀 도착하면 군부대로 70%, 평양시민에게 30%
    • 대포동2호 미사일, 40초 딱 맞춰 추락한 점에 주목하라
    북한군 장교 출신 무역 일꾼 호혜일이 폭로한 ‘북한 요지경’
    요지경 / 들여다보면 볼수록 / 더욱더 신기해만 지는 / 그래서 너는 요지경 / 만세, 만세 / 김정일 장군 만세! / 무엇이 과연 그들로 하여금 / 이렇듯 굶어 쓰러지면서도 / 세계적인 최악의 열악 상황에서도 / 어떻게 북한정권은 유지되고 있을까 /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알 수 없는 요지경…

    최근 북한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 발간돼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북한 요지경’이라는 제목의 이 책의 저자는 북한군 장교 출신인 호혜일(가명·39)씨. 호씨는 북한에서 명문대학 두 곳을 졸업한 뒤 북한군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했다. 소좌(소령)로 제대한 뒤엔 특수단위에 소속돼 무역일꾼으로 외화벌이에 나섰다. ‘북한 요지경’ 속에는 북한이 그동안 외화벌이를 위해 자행했던 마약제조, 골동품 밀거래 등 불법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6월30일 호씨를 어렵사리 만났다. 그는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절대 언론에 얼굴을 내놓을 수 없다”면서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다행히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조용하게 인터뷰하는 건 허락했다. 만나보니 눈매가 아주 선해 뵈는 서글서글한 성품의 386세대 청년이었다. 탈북한 지 1년6개월째 접어든다고 했다.

    ▶ 복잡한 서울시내에서 약속장소를 잘 찾아오신 걸 보니 길눈이 무척 밝은가 봐요.

    “하하. 내비게이션 덕분이죠.”



    군에서 경호 임무를 맡았으니 지리감각이 뛰어날 것 같아요. 호위사령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대입니까.

    “수령을 중심으로 한 당과 정치기관을 호위하고 수뇌부를 보위해요. 쉽게 말해 경호부대입니다. 김일성·김정일 친위부대라고도 하고요.”

    ▶ 김일성과 김정일을 직접 경호했어요?

    “김일성은 권총 유효사정거리에서 근접경호를 했고, 김정일은 경호하는 부서에 들어가서 지원경호를 했어요.”

    격렬한 실전훈련

    현재 북한군은 인민무력부와 호위총국의 2원 체제로 구성돼 있다. 인민무력부는 우리로 치면 국방부와 비슷한 기관으로 북한군을 대표해 국가 방위를 맡고 있다. 호위사령부의 후신인 호위총국은 정부 호위와 수도 보위를 담당한다.

    “김일성 주석 생존 땐 인민무력부, 호위사령부, 수도방어사령부 3개 군으로 편성돼 있었어요. 호위사령부가 수도 내부를, 수도방어사령부가 수도 외부를 맡고 인민무력부는 휴전선을 중심으로 동부, 중부, 서부를 지켰어요. 만약 어느 한 쪽에서 반란을 일으키면 나머지 두 군데에서 반란군을 무력화할 수 있는 체제였죠.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김정일이 2개 군 체제로 바꾸었어요. 수도방어사령부를 인민무력부 예하에 배속한 겁니다. 김정일은 또 김일성 주석 사망의 책임을 호위사령부에 돌리고는 호위사령부의 일부 예하부대를 인민무력부에 편입시켰어요. 예컨대 평양시내로 들어가려면 10호 초소를 통과해야 해요. (10호 초소는) 호위총국 예하 수도경비국에서 지키고 있는데, 10m 옆에 인민무력부 경비초소를 또 만들어놓은 겁니다. 또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 내에 호위총국과 동일한 임무를 지닌 ‘최고사령부 친위대’라는 10처를 만들었어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 시찰할 때 호위총국이 경호를 할 수 없도록 막아놓은 거죠.”

    ▶ 호위총국의 권한을 줄인 건 무엇을 뜻하나요.

    “인민무력부가 ‘수도 방어’라는 명목 아래 평양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거죠. 호위총국이 인민무력부에 완전 포위되어 있는 꼴입니다. 혹시 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 인민무력부가 평양에 집결하는 건 시간문제 아니겠어요? 본래 호위총국은 경호업무 외에 군사정변이나 반(反)정부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단번에 진압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젠 어려워졌어요.”

    호씨는 호위사령부와 인민무력부의 공방전 훈련 일화를 들려줬다. 김일성 주석이 생존했을 때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호위사령관 이을설이 논쟁을 벌였다. 인민무력부 예하 특수훈련부대의 공격침투 능력과 호위사령부 예하 부대의 경호능력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지를 놓고서였다.

    논쟁 끝에 공방전 훈련을 실전처럼 펼쳐 우위를 가리기로 했다. 김일성 주석 근접경호를 맡은 호위사령부 예하 1호위부가 인민무력부 특수훈련부대원들에게 그물에 걸린 것처럼 포위된 상태로 30일 동안 경호를 펼쳤다. 결국 호위사령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당시 침투 시도 과정에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등 무려 50여 명의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격렬한 훈련이었다.

    ▶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경호를 직접 수행했다면서요.

    “(김정일 근접경호는) 중앙당 서기실의 지시를 받는 호위처(6처)의 몫이에요. 저는 호위군관으로 김대중 대통령 숙소를 경호했어요. 남북정상회담 전부터 경호업무를 놓고 남측과 북측의 의견이 분분했어요. 한국측 경호원들은 평양에 맨몸으로 들어오는 게 불안했는지 무기를 소지하겠다고 했고, 북측 호위사령부는 김정일 경호에 위협을 준다며 반대했어요. 결국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북한 경호원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는 호상성의 원칙으로 겨우 합의했어요. 그런데 남측 경호원들이 하룻밤 자고 나더니 안심하더라고요. 북측의 체계적인 경호 실력에 놀란 거죠.”

    배구공 내려치듯 사람 쳐 갈기는 기술

    ▶ 북한의 경호방식은 어떤가요.

    “‘성동격서(聲東擊西)’예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는 식이지요. 김정일 위원장의 목적지는 극비입니다. 아주 엉뚱한 곳에 호위진을 쳐서 외부의 눈길을 유인합니다. 예전에는 호위병이 많았는데 요즘은 적게 데리고 다녀요. 외부인 눈길을 끌지 않으려고 차량도 보통 승용차를 이용하고요. 경호원들은 또 도청을 우려해 무선통신은 절대 이용하지 않습니다.”

    ▶ 북한군의 무술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요. 호위사령부는 경호업무를 맡고 있으니 사격실력뿐 아니라 무술에 뛰어난 군관도 많겠군요.

    “그렇죠. 북한에선 격술이라고 해요. 호위사령부 격술반은 ‘배구단’이라고도 해요. 배구선수들이 배구공을 내려치듯이 사람을 쉽게 쳐 갈긴다는 뜻입니다. 격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군인치고 고환결핵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훈련이 무지막지하거든요. 해마다 9월이면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동에 있는 조선인민국 정찰국 예하 훈련소에서 대회를 열어요. 인민무력부 예하 모든 부대가 참가해요. 참가자가 2000여 명 되는데, 10등 안에 들면 조선인민군 15호 격술연구소 연구생으로 갈 수 있어요. 졸업하면 격술 전담 부대의 훈련참모로 배치되죠.”

    북한군 장교 출신 무역 일꾼 호혜일이 폭로한 ‘북한 요지경’

    호혜일씨는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절대 언론에 얼굴을 내놓을 수 없다”며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아래는 호씨가 최근 펴낸 ‘북한 요지경’의 표지.

    북한의 유능한 격술교관들은 쿠바와 아프리카 등에 군사교관으로 초청되거나 그 나라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격술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캄보디아의 경우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 재임 중 경호를 전담한 인연으로 현재 수도 프놈펜에 많은 교관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 남파공작원에게 격술을 꼼꼼히 가르친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북한 격술의 본거지는 중앙당 작전부 예하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입니다. 일명 ‘130연락소’라고 해요. 간첩양성소인 셈이지요. 여기엔 공작원반과 전투반이 있어요. 130연락소 수련생들은 하나가 백과 맞서 이긴다는 일당백(一當百)의 정신으로 훈련받고 있어요. 거의 대부분 남한이나 제3국에 공작원으로 파견돼요. 그들은 기합과 기공술이 탁월해요. 치아로 로프를 물고 10t 화물차를 끈다던가, 서로 이마를 마주하고 서서 철근을 양미간 사이에 마주 대고 순간적인 기합으로 철근을 휘게 만드는 훈련을 받습니다.”

    북한에서 격술로 이름난 곳으론 인민무력부 ‘15호 격술연구소’, 호위사령부 ‘배구단’, 중앙당 작전부 ‘130연락소’, 국가안전보위부 격술연구반, 인민보안성 ‘59호 격술연구소’ 등을 들 수 있다.

    ▶ 격술교관으로 해외에 파견되면 외화벌이에 도움이 되나요.

    “아프리카는 괜찮은데 쿠바엔 안 가려고 해요. 돈벌이가 시원찮아서죠. 북한에도 태권도 사범이 있는데 해외에 나가 마피아 등 범죄조직과 손잡고 돈을 벌기도 해요. 해외에 나가 있는 사범은 북한에 연 1만달러를 바쳐야 하는데, 태권도 수입만으로는 어림없거든요.”

    외교관이 범죄조직과 마약거래

    외화벌이 수단으로 마약을 제조해 판다고 들었는데, 마약판매 때문에 해당 주재국에서 추방당한 외교관이 부지기수라면서요.

    “판매가 아니라 운반하다가 들킨 경우입니다. 북한 외교관이 가지고 다니는 마약은 북한에서 제조한 게 아닙니다. 각 국가의 범죄조직들에 마약을 운반해줬던 거죠. 대부분 외교관 활동 자금 마련 차원에서 그런 일을 했지요.”

    ▶ 북한의 마약제조는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198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하루는 김일성 주석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함경북도로 향했어요. 거기서 ‘외화를 벌게 마약생산 원료 기지를 꾸미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사회주의 나라들이 무너질 경우 자본주의 시장을 뚫을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자는 논리였습니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을 친선방문하고 나서 붕괴 조짐을 느낀 거죠. 그때부터 ‘백도라지(아편)’를 대대적으로 심기 시작했어요.”

    북한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대개 히로뽕 계열로 하얀 알갱이로 되어 있다고 해서 ‘얼음’ 혹은 ‘아이스’로 불린다. 중국에서 히로뽕의 원료인 암페타민 계열 각성제를 주로 들여와 정제해 히로뽕을 제조해 역수출하고 있다. 네덜란드산 ‘엑스터시’는 ‘도리도리’, 중국산은 ‘덴다’라는 별명으로 유통된다.

    ▶ 마약사업은 어느 기관에서 전담했나요.

    “처음에는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맡았어요. 보위사령부 예하 수정무역회사와 518군상관리소(군인상점)에서 전문적으로 담당한 거죠. 하지만 수정무역회사의 마약이 당 간부들에게 공급되자 518군상관리소에서만 취급하게 됐죠. 주로 일본의 야쿠자 조직들과 연계했어요. 마약거래는 대부분 해상에서 이뤄지는데 ‘아이스’ 계열의 마약이 많습니다. 대금은 주로 중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 현찰로 받았고요. 현금 인수의 경우 해당국 주재 북한 외교공관의 도움을 받는데, 북한으로 반입할 땐 주재국의 고려항공대표부가 협조하는 식이었어요.”

    ▶ 마약 거래 수입은 얼마나 됩니까.

    “한번에 500만∼700만달러라고 해요. 순안비행장으로 운송돼 오면 곧바로 보위사령관에게 건네지고 보위사령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하죠.”

    북한은 이라크전쟁 이후 갖가지 불법행위로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불량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자 마약 관련 사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마약 사업에 손댄 적이 있는 사람은 해외출장을 통제하고 있다. 대북 압력 국가들로부터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 북한에서 마약을 제조했다면 내부에 중독자도 많을 텐데요.

    “많아요. 상층부 간부들 중에도 중독자가 있어요. 가령 518군상관리소 소장 O성운은 지독한 마약중독자입니다. 약 기운으로 한 번 회의를 하면 50시간 이상 진행해 아랫사람들이 죽으려 해요. 평양, 원산, 신의주, 평성 등지에서 눈 벌겋게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마약중독자라고 보면 맞습니다. 침 바르고 담배 피우는 놈도 마약중독자입니다. 신의주에 있는 호텔만 해도 알약이나 흰 가루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북한의 당 기관과 연락소에서도 마약을 판매하고 있어요. 심지어 당 대외연락부 예하 어느 한 연락소에서는 북한에서 생산된 마약 종류를 전시하고는 외국 바이어를 초대소에 초청해 마약거래를 흥정하기도 해요.”

    지난해 8월 주민들 사이에 마약중독자가 급속하게 확산되자 내각 지시로 ‘마약소탕 그루빠’가 조직됐다. 그야말로 ‘마약과의 전쟁’에 돌입한 것. ‘그루빠’는 ‘그룹(group)’의 러시아어 표현이다.

    2005년 2월 신의주에서 탈북한 A씨는 “(마약중독자들이) 신의주만 해도 1000∼2000명에 이른다”면서 “고위층과 부유층 중독자가 천지(많다)”라고 전했다.

    달러 위조 기술 뛰어나

    ▶ 미국이 북한의 돈세탁과 위조지폐를 문제 삼아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수준은 어떻습니까.

    “인쇄판과 복사판이 있어요. 인쇄판은 A, B, C급으로 나눕니다. A급은 최상급 슈퍼노트(미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입니다. 종이도 달러 만드는 종이와 똑같아요. A급은 북한 내부에서도 달러원화와의 교환비율이 최고 80%에 이릅니다. B급은 중국산입니다. 인쇄정밀도는 A급과 같지만 돈 종이의 질이 낮아요. 시중에서 교환비율이 최고 40%밖에 안 됩니다. C급은 일반인이 음성적으로 제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의 지폐생산용 종이는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 위조지폐는 어디에 쓰입니까.

    “인쇄판 A급 위조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극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어요. 주로 해외 재래시장에서 교환하거나 밀수 대금, 혹은 대남 공작자금으로 사용되죠.”

    ▶ 위조지폐를 만드는 공장이 따로 있다면서요.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어요. 인민보안성 예하 926공장인데 북한 화폐를 찍어내는 돈 공장입니다. 돈 이외에도 여권, 당 신분증, 시민증 등을 찍어요. 여기서 극비리에 위조달러를 제조하는 거죠. 직원들도 모르게 위조달러를 제작하는 특수작업반이 있어요. 중앙당 특수단위들이 비밀리에 위조달러 생산을 의뢰하면 만들어주는 거죠. 926공장을 관리하는 926회사가 있어요. 무역회사인데 이 회사는 인민보안성 무역관리국장 직속입니다. (926회사는) 지폐생산에 필요한 각종 생산원료를 수입해 926공장으로 보내줍니다. 926공장 기술자를 실습 차원에서 1년에 한두 차례 중국 상하이에 있는 중국 지폐공장으로 보내기도 하고요.”

    ▶ 지난 4월 국회 본회의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대(對)정부 질문 때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사실이 논란이 됐어요. 위조지폐가 평양시 중구역 동흥동에 위치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방공급소에서 제조된다고 하던데요.

    “틀렸어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방공급소는) 중앙당 재정경리부 소속으로 중앙당 식구들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곳입니다. 그곳엔 전기가 들어오지만 동력선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화폐를 제조할 수 없어요. 제가 지난해 미국 재무성팀과 10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는데, 미국은 정확하게 알고 있더군요. 인민보안성 예하 926공장에서 돈 찍는다는 걸.”

    ▶ 위조지폐를 버젓이 만들고 있으면서도 미국측이 증인을 제시하면 북한은 국가특수기밀누설죄로 처형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잖습니까.

    “그러니 ‘불량배 국가’ 소리를 듣는 거죠. 국가가 불법행위를 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개인이 저지른 일로 외면해버리는 식입니다.”

    밀수 수입으로 국가기관 예산 충당

    호씨는 “북한의 불법행위는 마약과 위조지폐 외에 또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100호 사업’. 북한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부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해외에서 제작된 각국의 영화를 불법 복사해 북한으로 들여오는 사업을 일컫는다.

    “김정일은 영화광(狂)입니다. ‘100호 사업’은 중앙당 선전부의 7호실에서 전담하고 있어요. 현재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나와 있는 2명 중 한 사람이 중앙당 7호실 사람입니다. 대사관 지하가 불법 복사를 하는 곳이거든요. 조선필름현상소에서 나온 기술자가 필름을 복사하는 거죠. 중앙당 7호실을 통해 불법 복사되어 밀반입된 외국영화는 대부분 미국 영화입니다. 중앙당 15호실에서 조선말로 번역한 대사를 성우가 녹음해요. 김 위원장은 일절 자막처리를 하지 않은 번역 녹음 영화만 봐요.”

    호씨는 “북한이 위폐 제조 등 불법행위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체 외화 수입의 40%에 이른다”고 했다. 외화벌이의 영웅은 중앙당 3호 청산단위,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성·최고검찰소·인민무력부 단위와 같은 특수단위에 소속된 국가공무원들이라고 한다.

    ▶ 북한의 인민보안성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찰청인데 어떻게 외화를 벌 수 있나요.

    “무역회사 지도원으로 활동하게 하는 거죠. 인민보안성뿐만 아니라 인민무력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경찰청은 100% 국가예산으로 살림이 꾸려지지만 인민보안성은 50%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거든요. 인민보안성 직속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회사가 있어요. 주로 밀수를 해요. 골동품 밀매, 마약 거래, 위조지폐 제조 등이죠.”

    호씨는 “북한에선 외화 없이 살아갈 수 없다”면서 “외화벌이는 교화(敎化)벌이”라고 했다. 외화벌이는 교도소행이라는 뜻으로 외화벌이에 함부로 나섰다가는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다.

    북한에는 ‘돈 주머니’가 4개 있다는 말이 있다. 당에서 관리하는 돈 주머니, 군대 돈 주머니, 군수산업경제가 관리하는 돈 주머니, 그리고 내각에서 총리가 관리하는 돈 주머니다. 내각 총리가 하루에 결제하는 외화현금 액수는 1만달러가 안 된다고 한다. 국가공무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외화벌이 사업을 진행해야 북한의 경제가 굴러간다는 얘기다.

    호씨는 무역회사 지도원으로 러시아와의 밀거래에 가담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일반 동물성 약제인 사향, 웅담, 뿔 등을 러시아로부터 밀수했어요. 모두 자연보호법에 걸리는 것이죠. 러시아 마피아 조직과 연계해 밀수한 후 중국에 팔아넘겼습니다. 정력제, 강장제라 100% 한국 사람에게 팔린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앓지 않나”

    ▶ 최근엔 골동품 밀매사업이 성행한다면서요?

    “한국 사람들이 매겨놓은 가격 때문이죠. 한국의 골동품 밀수업자들이 중국을 통해 북한의 골동품을 구매하거든요. 북한 사람들은 골동품을 찾기 위해 무덤 도굴도 서슴지 않아요. 조선민속박물관에도 도둑이 들 정도입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시와 황해남도 일대에서 고려청자가 종종 나오는데 진품은 드물어요. 국가안전보위부는 단속으로 회수한 골동품을 재밀매해 거기서 생긴 이윤을 국가에 바치기도 해요.”

    ▶ 북한에서도 외화를 가진 사람은 부자로 살 수 있겠네요.

    “자기가 번 돈으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요. 예전에 부유층은 일본에서 들어온 귀국동포 2, 3세이거나 중국 화교, 해외에 친척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외화를 쥐고 있는 사람이 사치와 유흥을 즐겨요. 일명 댄디족이 생긴 거죠. 힘있는 특수단위 직원들은 쉽게 번 돈이라 팍팍 써요. 포켓당구, 골프, 고스톱을 하며 거액의 도박을 하는 이도 있고…. 차도 다 외제차죠. 주로 벤츠, 도요타, 닛산 사파리 계열의 차입니다.”

    ▶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젊은이도 있다던데요.

    “북한에선 자가용을 마음놓고 탈 수 없어요. 오렌지색 번호판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평양시내를 누비는 데는 눈치가 보여요. 시내를 벗어나서도 안 되고요. 또 가족 외에 그 누구도 태워서는 안 됩니다. 저녁 9시부터 새벽 6시까진 다니지도 못하고요.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기름을 외화로 사야 하는 할당량 제도가 있어요. 차를 사면 국가단위 차량으로 등록해놓고 타고 다닙니다.”

    ▶ 차 번호판을 보면 소속을 알 수 있다면서요.

    “‘216’으로 시작하면 중앙본부 대기차이고, ‘12’로 시작하면 인민위원회 산하, ‘15, 16, 17’은 인민보안성 계열입니다. 교통안전원은 흰색 헬멧을 썼다고 해서 ‘백대가리’로 불립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데 인민보안성에서 기름을 안 넣어줍니다. 노상에서 해결하라는 거죠. 오렌지색 번호판을 단 자가용차가 이들의 주 표적입니다.”

    ▶ 외화를 가진 댄디족이 여자 연예인과 관계를 가진다고 들었습니다.

    “댄디족은 어떤 연예인과 관계했는지를 장신구 삼아 얘기해요. 남한에선 연예인이 스타지만 북한에선 봉급쟁이에 불과해요. 직업성분 규정상 노동자예요. 댄디족은 신의주, 원산, 평양, 남포 같은 큰 도시에 은신처를 갖고 있어요. 하룻밤 자는 데 유명 연예인은 200∼300달러, 보통 연예인은 100달러 미만입니다. 일반여성은 상중하로 나뉘는데 최하선이 0.2∼1달러입니다. 북한 돈 100원은 0.03달러에 해당합니다.”

    ▶ 북한에서도 성매매 행위는 불법 아닌가요?

    “총살감이지요. 성(性)을 사고파는 건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간부라도 걸리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2003년에 평안남도 평성시에서는 매춘 행위를 한 여성들이 처형된 사건도 있었어요. 관계를 갖고 난 후 ‘어머니가 앓지 않나?’ 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면서 약값 명목으로 돈을 줘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하는 거죠.”

    성인영상물로 외화벌이

    ▶ 북한에선 섹스 영상물을 다루지 못하게 한다면서요.

    “자본주의 진입의 1단계가 섹스 영상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북한의 유명한 원로배우 중에 유경애라고 있어요. 그 여자의 아들이 1990년대 중반에 외화벌이 목적으로 불법 성인영상물을 제작했어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여배우를 동원해 여러 형태의 섹스 장면을 촬영했는데 전국 각지에 유포됐어요. 당국에 적발돼 여배우와 함께 교수형으로 공개처형당했어요. 유경애가 김정일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편지를 썼는데 거절당했어요. 그 편지에 ‘당신의 운명은 내가 책임지겠소, 하던 말을 어디다 저버리고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을 그렇게 죽였소? 그게 그렇게도 죽을죄였소? 허무하오. 당신 일가를 따라 걸어온 내 한 생이 허무하오’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호씨는 호위군관 생활을 떠올리면서 “김정일은 감정의 춘하추동이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변덕스러운 리더”라고 설명했다.

    “(김정일은) 말을 더듬어요. 예를 들어 ‘이… 새…새…끼들아’ 라고 해요. 또 다혈질 조폭 스타일이라 ‘북한을 담을 그릇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죠. 말투는 직선적으로 찌르는 스타일이에요.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이 세계 언론에 처음 공개됐잖아요. 회담 이전에 얼마나 말하는 연습을 한지 아세요? 중앙당 6처(근접경호) 근무자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원래의 스타일대로라면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바이! 당신, 말이 대통령이지, 사회적 잡음을 그렇게도 제거 못해? 정치라는 것이 뭐겠어. 힘들면 나랑 한번 바꿔합시다’라고 했을 거예요. 김정일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하는 말은 교시편찬국에서 풀고 다듬어 내보내는 겁니다.”

    ▶ 굶어죽을 정도의 인민이 얼마나 됩니까.

    “10% 정도라고 봐요. 밥을 굶는다기보다 산나물 등 대용식품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남한에선 그런 걸 ‘웰빙 차원’으로 먹는데 북한에선 끼니로 먹는 거죠. 1995년부터 1998년 사이에 300만명 이상이 굶어죽었어요. 북한에선 ‘죽을 사람은 다 죽었다’고 하죠. 배고픔을 어느 정도 견뎌낸 인민만 살아남은 거죠.”

    ▶ 세계식량기구와 한국에서 지원하는 쌀이 굶는 인민에게 전달되나요.

    “천만에요. 70%는 군부대로, 30%는 평양시민에게 분배됩니다.”

    ▶ 언론보도를 보니 군부대 차로 싣고 가지 않던데요.

    “군인들이 사복을 입고 와서 받아가요. 주로 남포항이나 원산항으로 들어오는데, 배에서 내리는 즉시 배급을 해주거든요. 군부대 화물차가 줄을 잇고 서 있는데 번호판이 하얀색(군용 차량 번호판은 까만색)이라 일반 공무트럭처럼 보이는 겁니다.”

    ▶ 군부대 차량 번호판이 어떻게 하얗게 변할 수 있나요.

    “‘지원식량이 온다’ 하면 중년 여성이 많이 동원돼 줄지어 늘어선 군부대 차의 새까만 번호판을 하얗게 칠해요. 저는 남포항 후문 쪽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걸 여러 차례 봤어요. 유엔에서 감시를 하니 (군부대 차가) 번호판을 흰색으로 바꾸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거든요.”

    ▶ 우리가 북한 군대를 먹여 살리는 셈이군요.

    “(웃음) 그렇다고 봐야죠.”

    ▶ 최전방에 있는 군인들에게 쌀을 보냅니까.

    “그렇진 않아요. 지원쌀은 절대로 1제대 군인(최전방 군인)에게 안 먹입니다. 혹시 약이 들어가 있어 전투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의심에 반드시 북한쌀을 먹여요. (지원쌀은) 2, 3제대 군인(후방부대)에게 돌아가요.”

    평양시민에게 남한 쌀 팔아

    ▶ 굶주린 인민에게 주라고 보낸 쌀을 평양시민에게 준다니 놀랍네요.

    “그냥 주는 게 아니라 팝니다. 그것도 평양 중심부 인민에게만 팝니다. 평양시민은 배급에 의존하거든요. 50%는 배급이고 나머지 50%는 자체충당을 해야 해요. 평양 인민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쌀을 돈 주고 사 먹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지원쌀에 대해 고마운 생각이 전혀 없죠.”

    호씨는 “(지원쌀이) 김정일 생일을 기준으로 일주일분씩 지방으로 보내지기도 한다”면서 지원쌀을 인민에게 무상 공급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주민이 아는 것을 원치 않는 거죠. 북한 사람들은 하루분 식량만 공짜로 주어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해요. 자식에게 대를 두고 은혜를 갚으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만약 남한에서 올라온 지원식량을 무상 공급한다면 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이 크게 바뀔 걸요. 남한에서 보내준 제주감귤, 나주 배, 김 등도 평양시 중심구역 식료품 상점들에서만 판매하고 있어요.”

    ▶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실상을 전혀 알지 못하나요.

    “정확하게 알지 못할 뿐 느끼고는 있어요. (북한 정부는) 자본주의적 황색바람에 북한 주민이 감염되지 않게 모기장을 쳐서 사회주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합니다만, 해외에서 매스컴을 통해 한국을 접하고 귀국한 외교일꾼들의 영향으로 완벽한 차단이 안 되는 거죠. 이들은 북한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섣불리 표현하지 않아요. 삶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죠.”

    ▶ 북한에서 현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김정일의 버팀목은 북한의 엘리트층이에요. 당원, 보위부, 안전원, 군 지휘간부, 검찰소, 재판소, 행정기관 등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전체 주민의 40%에 해당합니다. 전국 각 지역의 말단 기관에까지 중앙당 당원이 파견돼 있어요.”

    ▶ 그 사람들이 모두 체제유지를 원하는 강경파라는 얘기입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다 극좌는 아닙니다. 강경파는 절반 정도예요. 이른바 성골, 진골 출신이죠. 이들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반면 머리가 좋아 기득권세력에 편입된 다른 절반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죠. 엘리트이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듣는 얘기가 있는 겁니다. 황장엽 보세요. 남한이 고향이지만 북측에서 머리만으로 신임을 얻었잖습니까. 그런데도 한순간 신변에 위기가 닥치니 남한을 선택했잖아요.”

    ▶ 호혜일씨도 그런 경우인가요.

    “호위사령부에 근무할 때 한국 기업체 대표를 많이 만났어요. 또 제가 북한의 특수단위에 소속돼 외화벌이 일꾼으로 외국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매스컴을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한국의 발전상을) 이야기해준 것이 화근이 돼 남한을 선택한 겁니다.”

    호씨에 따르면 북한에서 과학자, 기술자, 대학교수, 의사 등은 중간계층에 속하는데, 전체 주민의 약 30%라고 한다. 생활수준은 하층민과 비슷하지만 체제에 대한 반발심은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 또 6·25전쟁 때 치안대 활동을 한 사람과 자산가(적대계급)의 후손이 20%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전쟁이라도 일어나서 싹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출신성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6·25 때 월북한 사람은 크게 두 부류입니다. 자진월북한 사람과 의용군으로 넘어온 경우죠. 남측에서 치안대 활동을 하다가 자진 월북한 사람의 자식은 당 보위안전기관이나 호위사령부에 못 들어가요. 입대를 해도 기술병 외엔 안 돼요. 한마디로 못 믿는다는 거죠.”

    ‘사상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호씨는 “북한군에서는 원자력 부대에 배치되는 것을 최악으로 여긴다”면서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실태를 소개했다.

    “북한에선 131지도국 부대출신이라면 사위 삼지 않으려고 해요. 원자력 부대거든요. 그 부대원들은 핵 방사능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모른 채 복무하고 있어요. 이들은 영변지구에 있는 핵발전소 흑연감속로의 핵 연료봉 교체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작업이 끝난 후 주사 맞는 게 고작이라 탈모, 성욕감퇴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요. 결혼해서는 기형아를 낳고요. 131지도국 부대원들은 거기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무덤까지 비밀을 유지한다는 서약을 해요.”

    ▶ 북한이 7월5일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사정거리가 최고 1만2000km로 미국 본토까지 날아간다는데 40여 초 만에 동해상에 추락했습니다.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겠죠.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언제든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으로 봐야 해요. 40초 만에 추락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40초에 맞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40초는 미사일 성능을 감지하기에 애매한 시간입니다. 북한이 지하발사장이 없어서 (미사일을) 지상에 내놓은 게 아닙니다. 북미간 직접 대화를 원하는 거죠. 한국의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에 미사일 사태가 벌어진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겁니다. 김정일의 머리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중앙당의 책략으로 봐야죠.”

    호씨는 “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자부심은 가히 병적”이라고 했다.

    “미사일을 쏘면 상대방의 요격미사일이 올라오잖아요. 그런데 ‘미사일이 요격 미사일을 자력으로 끌고 가서 맞춘다’고 자신하고 있어요. 상식적으로 그런 미사일은 없어요. 군사적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세뇌교육을 하는 거죠. 북한은 조국의 흥망성쇠가 청소년 사상교육에 달려 있다고 보고 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사상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면서.”

    ▶ 한국처럼 교육열의가 대단하다면서요.

    “남한과 똑같아요. (북측 부모들은)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자식을 공부시켜요.”

    호씨는 “북한에도 뇌물수수가 만연해 있는데 교육 분야가 제일 심하다”고 했다. 2004년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나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하는 데는 3000달러가량, 그밖의 학부는 2000달러 미만의 로비자금이 들었다. 평양외국어대학 영어학부 입학에는 3000∼5000달러가 통용됐다.

    “성적이 바닥을 쳐도 입학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인민무력부에서 원유나 석탄을 쥐고 있다거나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 등 힘있는 기관에 근무하면 그 ‘빽’ 으로 입학이 가능합니다. 학부모는 시험문제를 미리 알아내기 위해 발버둥쳐요. 오죽하면 대학시험 채점관들이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채점을 하겠습니까. 채점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극성부모가 있다는 얘기죠.”

    호씨는 대학입학 때 뇌물이 오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에서는 해당 교육기관장의 추천으로 대학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김일성종합대학 등 일류대학에 한해서는 지원할 수 있는 학생 수가 학교마다 정해져 있어요. 예컨대 어떤 학교는 졸업생 3000명 중에 딱 3명만 김일성종합대학에 지원할 수 있어요. 부모로서는 뇌물을 주고라도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고 싶죠. 다행히 3명에 뽑히더라도 시험에 합격해야 입학할 수 있으니 대학측에도 돈을 씁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나쁘지 않죠. 학교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 북한에서도 과외가 성행합니까.

    “예. 지역의 1중학교에 들어가야 대학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거든요. 대도시에 사는 부모는 음대 출신에게 돈을 주고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칩니다. 저도 피아노 전공 선생에게 한 달에 20달러씩 주고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북한 처녀도 배우자로 장남 기피

    호씨에 따르면 북한 사회의 결혼 풍속도는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에서는 ‘군당대화실’이라는 말이 있어요. 결혼상대자에 대한 요구입니다. ‘군’은 군사복무를 마친 남자인가, ‘당’은 조선노동당원인가, ‘대’는 대학졸업생인가, ‘화’는 화폐가 있는가, ‘실’은 집이 있는가입니다. 북한 처녀도 남한 처녀와 마찬가지로 장남보다는 차남을,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조건을 선호해요. 남북한 젊은이가 마주앉으면 정치 분야를 빼곤 웬만한 얘기가 다 통할 겁니다.”

    사회주의체제의 인민과 자본주의체제의 시민의 가치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열성은 말썽’, ‘무식은 씩씩’, ‘인정은 함정’, ‘후불(後拂)은 행불(행방불명)’, ‘젊어서 편안, 늙어서 보약’이라고 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 ‘열심히 하겠다’ ‘열심히 살겠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작은 나눔, 큰 실천’ ‘이웃사랑’ 등 인정이 담긴 시대적 성어(成語)를 들으면 가슴이 훈훈해져요.”

    현재 호씨는 한국의 군부대 정훈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틈이 나면 서울 석촌호수 근처에 가서 주민들과 내기 장기를 두기도 하는데, 북한에서 장기왕이었던 실력을 한껏 발휘해 대체로 돈을 딴다고 한다. 잃은 사람에게 돈을 되돌려주고는 그들에게 세상 얘기를 듣는 게 낙이라고 한다.

    “김정일은 슬로건의 제왕입니다. 연료가 없어 비행훈련도 하지 못하고 있고, 1999년 연평해전 때 전투함정들이 지원 나갔다가 연료가 없어 교전을 벌이지도 못했지만 북한군은 세계 제일의 군대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는 몹시 곤궁하죠. 돈이 필요해 군용 기름을 팔고, 쌀을 팔고 피복을 팔아먹어요.”

    호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북한 장교들은 국경경비대에 배치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요. 국경경비대에서 10년 근무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번다는 겁니다. 주민들 탈북을 도와주는 대가로 돈을 받거든요. (돈 주면) 업어서 탈출시켜줍니다. 북한 사회는 자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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