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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내가 최고가 되든지, 최고를 내 편으로 만들든지”

‘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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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5월2일 한국농구대상 감독상을 받은 전창진 감독.

하지만 전 감독의 진짜 힘은 사람을 아끼는 ‘배려’와 ‘인화’라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 동부의 우승을 김주성 선수의 공으로만 돌리는 시선들에 대해 전 감독은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밤낮없이 훈련하고 고생한 다른 선수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합니다.”

그는 만년 후보에서 정상급 포인트 가드로 우뚝 선 표명일과 은퇴 위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강대협, 신인에서 당당히 주전을 꿰찬 이광재 등을 서슴없이 우승 주역으로 꼽았다.

선수는 들어주는 감독에게 감동

“감독은 선수들이 똑바로 나가도록 툭툭 쳐주는 노릇만 하면 됩니다. 다행히 이번 시즌에는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라붙어 제가 할 일도 별로 없었지만.”



그는 선수를 뽑을 때 열정을 제일 중요시한다. 팀에서 조금 처지지만 눈빛이 살아 있는 선수, 뛰고 싶은 욕망이 강한 선수, 한번 잡은 기회는 놓치지 않는 선수를 그는 선호한다. 기량은 그 다음이다. 그는 일례로 삼성과 KT·G를 들었다. 삼성은 스타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한 반면에 KT·G는 포기를 모르고 끝까지 덤비는 게 특징이라고 말한다.

“요는, 하려고 하는 선수가 제일 무섭다는 얘기지요. 잘하는 선수도 잠깐 방심하면 형편없이 무너지는 게 이 바닥입니다.”

그는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고민이 있는 선수는 따로 불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자필 카드를 자주 보내고,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날린다. 1년에 한 번은 선수뿐 아니라 코치, 트레이너, 프런트 직원, 밥 해주는 찬모까지 모두에게 스킨세트 등의 선물을 보낸다. 쉬운 것 같지만 아직 감독-선수 사이에서는 잘 안 되는 얘기들이다.

“잘 못하는 선수에게, ‘쟤 왜 저래? 바꿔’ 이러면 그 선수는 끝입니다. 대신에 ‘무슨 일 있어?’하고 대화를 해보면 반드시 문제가 나옵니다. 여자 문제, 가정 문제, 돈 문제….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선수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감독에게 감동하는 겁니다. 저는 벤치를 지키는 선수에게도 오늘 못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선수들이 마음을 열면, 특히 식스맨 선수들은 죽어라고 뜁니다.”

평범하면서도 신통한 이 방법을 그는 어디서 배웠을까.

“삼성 프런트 시절 느낀 점들이지요. 선수들이 참 잘한 날, 이런 날은 감독이 맥주 한잔 사주면 좋겠다, 또는 선수들이 엉망으로 뛴 날, 이런 날은 감독이 ‘혼꾸멍’을 내면 좋을 텐데 하면서 생각해둔 것들이지요.”

전 감독이 맡았던 주무 노릇은 선수관리부터 숙소 식당 예약, 감독 코치 수발 등 허드렛일부터 기자를 상대하는 홍보업무까지 다양했다. 지금은 농구단 직원들의 업무가 분담됐지만, 1980~90년대는 1인 다역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처음에 홍보와 마케팅을 맡았다. 두 가지 모두 생소한 분야였다.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기자들과 10분 만나기 위해 3시간 분량의 얘깃거리를 준비했다. 게임 홍보를 위해 밤새 만든 전단지를 새벽 4시 반부터 신문에 넣어 들고 아침 6시부터 수원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세계적인 주무’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선수관리를 맡은 이야기는 더 눈물겹다. 밤늦은 시각 어린 선수들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고참선수들에게는 소주 한 병과 갯장어 구이 한 접시를 방으로 넣어준다. 그래야 술 먹으러 나가지 않는다. 어떤 선수는 맥주를 좋아하고, 어떤 선수는 소주를 좋아하고, 어떤 선수는 고스톱을 좋아하는지 꿰뚫고 있었다. 울적해 하는 선수를 데리고 나가 탕수육 한 접시 시켜놓고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최고가 되거나, 아니면 최고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존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삼성에서 ‘세계적인 주무’라는 칭호를 듣던 그는 이인표 단장이 삼성을 떠날 때 따라 사표를 내고 원주 나래 코치로 옮겼다. 나래로 그를 끌어들인 사람은 용산고 선배인 최형길 사무국장과 2년 후배인 허재 선수 등이다. 그는 이 시절 최형길 현 KCC단장이 보여준 자세를 잊지 못한다. 초짜 감독을 믿고 기회를 준 것. 또 잘했을 때는 칭찬하지만, 잘못했을 때는 잊어버리고 소주 한잔 하자던 마음씨가 특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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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동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il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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