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일본 J리그의 평범한 선수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조총련계 재일동포들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지난해 6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 북한대표로 출전해 3경기에서 혼자 무려 8점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그때 정 선수 스스로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 ‘인간 불도저’였다. 공격수로서 상대팀을 향해 저돌적으로 밀고 나아간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적이지만 잘한다”
그러나 J리그에서는 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국내외 축구천재들이 득실득실한 그곳에선 그저 전도유망한 신인에 불과할 뿐이었다. 게다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까지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 탓에 웬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주목을 받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일본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한순간에 반전시킨 것은 지난 2월17일 동아시아선수권대회 북한-일본전과 사흘 후 벌어진 한국-북한전이었다. 두 경기에서 정대세는 각각 한 골씩 넣었다. 일본인에게 북-일전은 경악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경기내용 면에서 굴욕적인 시합이었다.
정대세는 전반 6분 일본 문전을 향해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그것도 가와사키 프론타레 소속의 동료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를 향해 카운터펀치를 날리듯 말이다. 게다가 선제골을 넣은 그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라는 것, 그리고 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프로선수라는 사실이 일본인들의 가슴을 찔렀다. 일본인들이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고, 그런 애증만큼이나 그에 대한 일본 언론과 국민의 관심도 폭발적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어느 정도 쇼크를 받았는지, 한 축구담당 기자의 기사를 인용해본다.
“…우리 편 볼을 빼앗을 때의 기동성, 볼이 (정 선수에게) 넘어왔을 때의 판단력과 처리 능력. 정 선수는 톱클래스 선수의 플레이를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 퍼포먼스에 ‘적이지만 잘한다’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대세가 일본대표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 일본에 그처럼 저돌적인 스트라이커가 없는 것은 왜일까. 올해 FC도쿄에 복귀한 곤도 유스케가 비슷한 타입이지만 스피드와 순발력, 집중력과 정확성에서는 정 선수 쪽이 더 우수하다. 앞으로 일본대표팀이 북한과 경기할 때는 대단히 위협적인 정 선수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특히 북한 축구는 일본 축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준차가 난다고 생각했던 일본 축구계는 정대세에게 선제골을 내준 후 간신히 한 골을 만회한 상황을 놓고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에 대한 책임과 비난은 고스란히 일본대표팀 오카다 감독에게 돌아갔고, 그 비난만큼의 찬사를 정대세가 받았다.
인터뷰 3가지 조건
일본 언론은 정대세의 플레이를 경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몸을 사리지 않고 적진을 향해 파고드는 그의 빠른 돌파력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많이 아쉬워했다. 더욱이 일본인들이 가장 거부감이 심한 조총련계라는 사실에. 일부 축구담당 기자들은 “어떤 조건을 내세워서라도 그를 귀화시켜 일본대표팀 선수로 뛰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