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한국 땅에서 커피 재배가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긴 세월 수많은 사람이 타이르고 설득했다. 그러나 박씨는 뜻을 꺾지 않았다. 챙 있는 모자에 카키색 작업복, 농부 혹은 탐험가 같은 차림의 그는 “우리 땅에서 난 커피를 마시고 싶다. 춥고 비가 덜 오는 환경에서도 커피 열매가 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실험중”이라고 했다.
“에티오피아, 브라질, 미국 커피보다 우리나라 커피가 더 맛있을 것 같지 않아요?”
이유가 참 담백하다. 내가 마시고 싶어 기른다는데 어찌 말리겠는가. 문제는 커피 재배가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커피는 아무 데서나 나지 않는다. 북위 25℃부터 남위 25℃사이, 무덥고 습기 많은 아열대 기후권이 커피의 주산지다. 기온 분포로 보면 영상 11℃에서 26.5℃사이. 겨울 기온이 영하 10℃아래로 떨어지기 일쑤인 우리나라에서는 언감생심 꿈꿀 일이 아닌 셈이다.
굳이 커피를 얻고 싶다면 온실을 만들어야 한다. 강원도 강릉의 한 농부는 지난 봄 이 방법으로 커피 40㎏을 수확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관령 기슭에 대형 온실을 짓고 평균 기온 15℃, 습도 60% 이상의 환경을 유지했다. 그런데 박씨는 이 길을 따라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리 기후, 우리 토양에서 자생적으로 싹트고 열매 맺는 커피나무라야 진짜 우리 것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도 거스르는 막무가내 고집이다.
영상 6℃에서 자라는 커피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득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지 않나, 그걸 이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프리카에 있는 커피나무를 우리나라에 옮겨 심으면 얼마 못 가 죽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땅에 원산지와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조금씩 온도, 습도를 낮춰가며 적응 훈련을 시키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한국 환경에 적응한 커피나무가 탄생하지 않을까, 사계절 변화에 익숙해지고, 추운 겨울과 낮은 습도를 받아들이는 완전히 다른 품종의 한국형 커피나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지금 박씨가 남양주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이 실험이다.
그는 1995년 온실을 짓고, 세계 15개국에서 커피종자를 들여다가 묘목으로 키웠다. 커피 재배 기술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하와이 코나 지방의 커피 농장에 취업해 1년간 잡부로 일하고, 뒤늦게 강원대 원예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 지식도 쌓았다. 곧이어 커피나무가 한국 계절과 온도, 습도에 적응하도록 하는 이른바 ‘내한성(耐寒性)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실험을 시작하던 날 ‘종자 개량에 성공하면 우리 땅 지천에서 커피가 열리겠구나’생각하니 가슴이 뛰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