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중에서
1 내가 만약 ‘아담’이라면?

만약 우리가 저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 중 누가 최초의 인간이었다 하더라도 인류의 삶은 이러한 모습으로 진화해왔을까. ‘최초의 근대인’을 그려낸 다니엘 디포(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1719), 그리고 톨스토이와 간디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1854)은 이러한 원초적 질문에 대해 경이로운 해답을 제시해주는 작품들이다.
다니엘 디포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각종 사업을 벌이던 상인이자 작가이자 비밀 첩보원으로도 활약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정치·지리·범죄·종교·경제·결혼·심리학은 물론 미신까지 글쓰기의 소재로 삼은 전방위적 문필가였다.
그는 4년 반 동안 외딴 섬에 버려졌다 살아남은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1676~1721)의 실제 이야기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셀커크의 체험담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담을 창조해낸다. 셀커크는 무인도에서의 삶이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고 회상했고, 오히려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아무 걱정 없는 삶,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도 없는 ‘자연인’의 삶에서 다시 노동과 화폐와 인맥에 휘둘리는 ‘사회인’으로 돌아오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극기훈련’ 28년의 성과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는 ‘낭만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곤경을 불굴의 의지로 헤쳐나가며, 신의 섭리를 반쯤은 믿는 척하면서도 실은 인간세계의 우연을 더욱 신뢰하는, 전형적인 근대적 남성상을 보여준다. 모험을 꿈꾸던 철부지 청년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28년을 보내면서 경험한 엄청난 ‘극기훈련’을 통해 노련하고 용의주도한 근대적 CEO형 인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말하자면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의 극한체험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영리해졌고, 유능해졌으며, 성공신화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근대인’이 된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영국의 산업혁명 직후에 탄생한 ‘최초의 근대인’을 형상화하고 있다면, ‘월든’엔 초기 자본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미국 사회의 시스템에 염증을 느낀 한 지식인의 희미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무인도의 불시착이 전적으로 로빈슨 크루소가 전혀 원치 않았던 ‘재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월든 호수 근처에서 혼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던 소로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고립을 택한 것이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평범한 뱃사람이던 한 남자의 입지전적 성공신화를 그려낸다면, ‘월든’은 세상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인생의 정수를 체험하는 한 인간의 내밀한 고백을 담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