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불완전하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상처는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이 있지만, 루이스 부르주아를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야말로 ‘힘’이다.
더욱이 그녀는 늦깎이 대기만성의 전형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아웃사이더이자 비주류의 삶이던 시절, 나이 마흔에 예술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가 박물관과 미술관 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예술계에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조와 유행을 뚫고 아흔을 훌쩍 넘는 나이까지 홀로 살아남았다. 그녀는 인간 정신의 한계가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현대미술계의 ‘철녀’다.
‘2022년까지 기억될 작가’
13년 전인 1997년 12월 미국의 미술전문월간지 ‘아트뉴스’는 창간 95주년을 맞아 미국의 비평가, 큐레이터, 미술관 디렉터 등 미술계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현재 활동하는 세계 미술가 중 25년 후인 2022년까지 기억될 작가를 꼽으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선정된 41명의 예술가 중 1위는 다름 아닌 루이스 부르주아.
모두들 ‘25년 후’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빠른 광속의 시대에 비디오나 컴퓨터 등 첨단 멀티미디어를 사용하는 작가가 추천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것이 빗나간 것이다. 게다가 선정 당시 부르주아는 86세 고령이었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에선 폭력, 공포, 에로티시즘이 동시에 표출된다”며 “동시대의 어떤 남자 작가 중에도 그녀처럼 스스로에 대해 냉정하다 할 만큼 정직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예술이란 어떤 첨단기법이나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즉 메시지에 주목해야 함을 제대로 지적한 평가다.
기자는 2005년 4월 그녀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당시 기자는 미술을 담당하고 있었고, 마침 그해 4월12일∼5월13일 루이스 부르주아 신작전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녀 나이 아흔넷. 그때 쓴 기사는 짧은 분량이지만 작가의 작품세계와 예술가적 고집을 엿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보여 소개한다.
뉴욕 첼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시스턴트 2, 3명의 도움을 받아가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 이어 이번에 신작전을 갖는 그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내가 만난 몇몇 한국인은 굉장히 감성적이며 친절했다”면서 “이번 전시에 맞춰 한국에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못 갈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 흔히들 당신을 페미니즘 작가라고 한다. 맞는가.
“나는 내 작품을 어떤 ‘이즘’으로 묶는 것에 반대한다. 다만, 아는 것에 관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들을 위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그동안 드로잉에서부터 천 조각에 석판화를 찍는 작업, 수건으로 만든 조각 작품, 손바느질한 천 조각 등 장르와 재료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일관된 주제는 오랫동안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릴 적 상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