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35% 못 지킨 대통령들 불행 겪어
약이 된 노태우의 세 가지 콤플렉스
정통성 갖춘 대통령들, ‘청산’ 내걸며 위기 시작
선거연합 깨지며 지지율 뚝 떨어져
文, 지지율 지켰지만 콘크리트 비토층 50% 만들어
제왕적 대통령제 없다, ‘제왕적 야당 대표’ 있을 뿐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동아DB]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 같은 논지에 단호히 각을 세웠다. 1월 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통념과는 다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분히 상식적이다.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면 위기가 빈번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들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복잡할지 모르나 ‘불행을 알리는 징조’는 간명하다. 바로 지지율 35% 붕괴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따르면 1987년 이래 지지율 35%를 수성한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임기 기간은 물론 이후로도 큰 고초를 겪지 않은 이 역시 문 전 대통령뿐이다.
나머지 전직 대통령들은 수감 생활을 하거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자녀가 구속됐고(김영삼·김대중), 극단적 선택(노무현)을 했다. 윤 대통령 역시 임기 내내 부진한 지지율을 기록했고, 탄핵 위기에 처하면서 앞선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불행은 지지율 35%를 지키지 못하며 시작되는 셈이다.
선거연합 만들지만 결국 대통령에게 권력 쏠려
비슷한 맥락에서 박성민 대표는 오랜 시간 ‘35대 55’를 강조해 왔다. 대통령 긍정 평가가 35% 아래에 맴돌고, 부정 평가가 55%를 웃돌면 정권심판론, 즉 대통령 심판 여론이 정국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35% 이하의 득표율로 당선된 이는 없다. 지지율이 35% 아래로 향했다는 것은 내 편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날 박 대표는 “역대 대통령들은 청산을 내걸면서 선거연합을 깬 측면이 있다”며 “그때부터 (대통령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선거연합을 해체하면서 무너졌다. 왜 이들은 선거연합을 유지하지 못했나.
“자신의 정체성으로만 집권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근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 선거연합을 꾸리는 것이다. 선거연합이라는 말 자체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다는 의미 아닌가. 과거 미국과 소련이 독일·일본에 맞서기 위해 연합군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3당 합당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모두 자기만의 정체성으로는 선거를 이기기 어려워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은 결과다. 이 지점에서 불안정성이 생긴다. 애초에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권력은 대통령에게 쏠리게 돼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정체성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오히려 선거연합을 통치연합으로 확장한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어떻게 통치연합을 만들 수 있었나.
“당시는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시기였다. 우리도 여기에 조응하려고 했고, 그 결과 ‘3당 합당’이라는 대연정이 가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세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첫째가 자신이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36.6%의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은 ‘여소야대’라는 정치 지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세 가지 콤플렉스를 만회하려고 3당 합당을 결행했다. 덕분에 업적도 많이 남겼다. 북방 정책과 남북 동시 유엔 가입 등 여러 성과를 냈다.”
지지율 위기로 이어진 군부 청산·지역주의 청산
“다음 대통령부터는 정통성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초의 문민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정권교체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 불리지 않았나. 정통성을 갖춘 후보가 대통령이 되다 보니 ‘청산’을 집권 목표로 세우기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군부 청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 청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득권 청산을 내걸었다. 이후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좌파 청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종북 청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추진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반국가 세력 청산을 말하고 있다.”
‘청산의 정치’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각 대통령이 내건 청산 레거시는 일정 부분 시대의 요구에 저마다 내놓은 답변이기도 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군부 청산이 대표적 예다. 문제는 청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적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대선까지 함께했던 이들이 포함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부 청산을 하며 TK와 이별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청산을 추진하다 호남과 갈등했다. 청산이 선거연합을 해체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 박성민 대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청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선거연합도 깨뜨리게 되고, 연합을 해체하면서 대통령도 흔들리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데, 이후 JP를 내쫓아 충청도의 표심을 잃었고, 1994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TK(대구·경북)와 이별했다. 결국 TK와 충청권이 연합해 자유민주연합을 만들어 1996년 총선에서 50석을 차지했다. 김영삼 정부는 그때부터 흔들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연합이 해체되면서, 전국 정당을 추구한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 기반이 깨지며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때만 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동 정권을 꾸릴 것으로 생각됐는데, 막상 집권하니 공천 과정에서 갈라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예 새누리당을 멀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지율 수성에 성공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연합을 해체하지 않았지만, 탄핵에 찬성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국민 85%가 찬성했고, 새누리당 국회의원 62명 역시 함께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탄핵의 주체로 대선에서 자신에게 표를 준 사람들만을, 넓게 봐도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를 뽑은 이들까지만 인정했다. 덕분에 콘크리트 지지층 40%가 있다지만, 콘크리트 비토층 50%도 만들어냈다. 결국 그것 때문에 국론이 분열됐고 정권을 빼앗겼다.”
박 대표의 평가를 종합하면 문 전 대통령은 선거연합을 해체하지 않았지만, 청산 레거시는 끝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반쪽의 승리’다. 유일하게 역대 대통령 중 불운한 말로를 겪진 않았지만 정권을 연장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대통령은 당파의 대표와 초당파적 국가원수라는 모순적 지위를 부여받는다”며 “문 전 대통령은 후자의 역할을 하지 않았고, 이는 퇴임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국가 원로의 역할을 해야 할 전직 대통령이 퇴임 이후인 2024년 4·10 총선에서 민주당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도운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이 2024년 4월 2일 울산 동구 보성학교 전시관 앞에서 파란색 점퍼를 입고 김태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울산 동구 후보를 격려하고 있다. [뉴스1]
난국 풀어줄 곳 헌법재판소밖에 없어
탄핵 국면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2020년부터 민주당이 절대적 의석수를 확보했는데,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비토크라시(Vetocracy) 상태가 됐다. 대통령은 (민주당에 대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하고, 민주당은 탄핵으로 맞섰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운명이 헌법재판소에 맡겨져 있고, 국회를 이끄는 제1당의 대표의 운명은 법원에 좌우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게다가 헌법기관, 권력기관, 수사기관이 전부 상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법, 제도, 기관, 사람들이 전부 동시에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검찰, 경찰, 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호처가 서로 얽매인 상황이다. 이 난국을 풀어줄 수 있는 곳은 헌법재판소밖에 없다. 헌재가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 만큼 신뢰가 흔들리면 안 된다. 지금 내란죄 문제를 빼느냐에 대해서도 헌재가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신속한 판단도 중요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의 빌미를 주면 안 된다. 이 경우 (헌재의 판단에) 승복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심리적 내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정치사적 비극이 되풀이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사라졌다고 본다. 제왕적 야당 대표가 있을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사라졌다?
“먼저 분명히 말해 둘 것이 있다. 박정희·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제왕이었다. 6개 주체, 즉 행정부·집권당·권력기관·국회·사법부·언론을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못지않은 권력이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가 이뤄졌고, 이후의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세 대통령은 ‘제왕적’이었다. 이들은 행정부·권력기관·집권당은 지배했지만, 나머지 3개 즉 국회·사법부·언론은 더는 통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막 내린 ‘제왕적 대통령 시대’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는 노무현 정부 들어 사실상 막을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대통령이 집권당마저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서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8월 12일 청와대에서 연 간담회에서 “전임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이른바 인사권인 공천권을 가지고 (집권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통치해 왔다”면서 “나는 지금 당 총재도 아니고 공천권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는 더 이상 집권당 총재가 아니니, 집권당의 대표는 선거로 뽑으라’며 당정 분리 선언을 했다. 그 결과가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 그때부터 대통령과 집권당 의장 및 대표 간의 충돌이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무성 전 대표와, 윤 대통령도 이준석·한동훈 전 대표와 충돌했다. 충돌의 핵심이 공천권이다.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선언했다는 것은 더는 당무 및 총선에 개입할 수 없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 야당 대표는 마음대로 공천에 개입하기 때문에 ‘제왕적 야당 대표’가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명태균 게이트 등으로 직권남용 혐의를 받게 되면서 권력기관마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6개 주체 가운데 사실상 행정부만 손 안에 두게 된 상황이다. 박 대표는 “걸핏하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말하는데, 현 상황이 과연 그러한가”라며 되물었다.
“(윤 대통령이) 과연 제왕적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명태균 씨에게 (공천을) 부탁받고 수사 대상이 됐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은가. 윤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이 강한가. 이 대표의 야당 장악력이 센가. 후자가 훨씬 세다. 걸핏하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다’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만 하더라도 민주적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에 국회를 존중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극단적으로 국회를 무시하다 보니 결국 폭발해 버렸다.”
정당에서 오랜 기간 육성되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정당에서 육성됐건 안 됐건, 정치는 하나의 공통점만 찾아도 상대를 동지로 여기는 이들이 해야 한다. 아홉 가지가 다르더라도 한 가지만 같으면 동지가 되는 것이다. 사실 정치 외에도 군과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 중국의 국공합작, 애플에 맞서기 위한 구글과 삼성이 맺은 동맹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검사 및 운동권 출신, 즉 청산을 하려는 이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본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법조계, 종교계, 시민운동계 출신은 정치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미리 답을 정해 놓고 문제를 풀어가기 때문인가.
“이들은 항상 ‘최선이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최선이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항상 최악의 결과를 만든다. 민주주의는 차선과 차악 중에 고르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의대 증원이 최선’이라며 더 나은 안이 있다면 갖고 오라는 식으로 말했다. 최선의 안을 내놨다면서 더 나은 안을 가져와 보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최선인데 더 나은 안이 어디 있는가. ‘이 방법이 최선이지만 국민도 불편해하고 의사들도 반대하니 의료계가 차선책이라도 가져오면 수용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역시 ‘더 나은 안이 있으면 갖고 오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주 오만한 태도다. 민주적 리더십이 있으면 현행 헌법 체계에서도 국정을 잘 펼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채널A 유튜브 채널 캡처]
‘尹 주장’ 국민 20% 이상 지지 받지 못해
박 대표는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야당 추천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는 등으로 대연정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헌법 체계에서도 얼마든지 (협치가) 가능한데 대통령들이 안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청산 레거시를 이어가고 있다.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이 자유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합법적 권력의 최고봉에 위치한 대통령으로서 수사기관을 통해 적법하게 대처할 문제다. 탄핵소추된 내란 수괴 피의자로 어떻게 이들과 싸워 청산겠다는 것인가. 윤 대통령의 주장이 국민 51%의 지지를 받는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국민 20%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을 갖고 나라를 지배하려 하니, 안 되는 것이다.”
신동아 2월호 표지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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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탄핵 찬성하면 시민, 반대하면 극우… 왜 우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