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1968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92년까지 뉴저지주에서 가정의로 일했다. 그 후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변신해 11년간 플로리다주 올랜도 시 소재 연방 교도소 의무과장을 지냈다. 연봉만 16만9000달러에 달하는 고위직이었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봉사를 해야겠다는 의과대학 신입생 시절의 각오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의사가 돼서 돈 벌면 가난한 이웃에 도움 되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생각해낸 것이다. 의료봉사 하기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그는 뉴욕에 있는 가톨릭의료선교본부를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케냐, 멕시코 등지의 시설과 함께 한국의 요셉의원을 소개했다. 직원이 미국인인데도 요셉의원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울 영등포역 부근에 있던 요셉의원은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고 한다. 날씨는 더운데 냉방이 안 돼 땀이 비오듯하고 화장실 냄새가 가시지 않는 곳으로, 미국생활에 익숙했던 그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첫해 3개월을 근무했던 그는 2년 뒤인 2005년 4월에 와서는 6개월을 일했다. 이후 지난해 4월에 와서 3개월 있었다. 2004년에는 전해 가을에 시작한 한의대 공부 때문에 오지 못했다. 그가 한번 오면 이처럼 장기체류하는 이유는 비행기 삯이 아깝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못 올까 싶어서다. 남부 플로리다 한인감리교회 권사인 그는 “환자들에게 베푸는 것보다 내가 훨씬 많은 은혜를 받는다”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었다.
어려운 이웃들의 버팀목

환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급으로 일하는 봉사자 덕분이다. 전문의 80명을 포함해 의료봉사자 200명과 일반봉사자 400명 등 연 600여 명의 봉사자가 이곳에서 일한다. 21년간 요셉의원을 지켜온 선우경식 원장이 지난 4월18일 별세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요셉의원은 다른 병원들이 문을 닫는 저녁 7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의사들이 자기 병원에서 퇴근해 이때부터 일을 하기 때문이다. 대신 낮에는 상주의사, 은퇴의사가 내과진료를 한다. 앞서 소개한 심재훈 선생 등이 낮 시간에 환자를 본다. 1일 내원 환자는 100여 명. 의사가 약 처방을 내면 약사가 바로 약을 내준다. 약값은 없다.
병명도 고혈압부터 당뇨병, 관절염, 피부병, 간질환까지 7, 8개 질환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종합병동’이다. 알코올 질환자는 부지기수고, 막노동하다 다친 정형외과 환자도 많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강남성모병원, 도티기념병원 등 10곳의 협력병원으로 응급 이송한다. 그러나 협력병원에 병실이 없으면 이곳 돈으로 일반 병원에 입원시킨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는 방법이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