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1년 경북 영천 출생<BR>●서울대 경영학과 졸업<BR>●노동인권회관 소장, 15·16·17대 국회의원<BR>●現 경기도지사<BR>●저서 :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 ‘대통령 대 국민’
하지만 그가 우스개나 하고 다니는 물러 터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사형제에 찬성할 정도로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주의자다. 남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은 자신도 같은 벌을 받게 해야 살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다양한 면모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재임 시절 그는 다른 의원들이 외면하던 결식아동 지원 예산을 집요한 노력 끝에 받아내 ‘김결식’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얼마 전 삼성 특검에서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수사가 기업을 달달 볶아서 내쫓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위장취업을 위해 환경관리기사, 안전관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을 만큼 열렬한 노동운동가였고, 1986년 5·3직선개헌투쟁을 주도하다 2년6개월을 복역했으며, 민중당 노동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철저한 사회주의자였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어떤 정치가보다 시장경제 체제를 열렬하게 지지한다.
그러나 김 지사의 그런 상반된 얼굴들은 모순이 아니라 같은 바람의 다양한 표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바람은 바로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그는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를 택했다. 이제 그의 말과 행동의 밑바닥에는 자유와 번영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 자유를 최대한 주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법치의 원리가 놓여 있다. 누구보다 철저한 자유주의 정치인, 김문수 지사를 만나러 수원의 경기도청을 찾았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미신
김정호 김 지사는 아마도 정치인 중에서 가장 자유주의에 철저한 분일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좌파 노동운동을 했는데, 어떤 계기로 철저한 자유주의·시장경제 지지자로 바뀌게 됐습니까.
김문수 1990년대 초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가장 큰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평등하게 잘사는 것이 옳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적나라한 삶이 드러났고, 그것은 제가 그리던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거죠. 참혹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죠.
김정호 좌파 중에서 어떤 계파에 속했나요.
김문수 민중주의에 가까웠습니다. 반독재, 반재벌, 반외세가 연합한 광범위한 민중주의 말이죠. 스웨덴 식의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서 러시아의 변화를 보게 됐죠. 혁명을 추구하던 제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러다 급진적 혁명보다는 제도권 안에서 개혁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민중당을 창당했지만 선거에서 실패했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민자당(한나라당)에 들어가게 된 거죠.
김정호 도지사 재임 2년이 돼갑니다. 그간 중점적으로 해온 일은 어떤 것들입니까.
김문수 수도권 규제에 대한 사회 분위기를 바꾼 것을 먼저 내세우고 싶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용감하다 싶을 정도로 일관되게 수도권 규제 혁파를 주장해왔고, 이제는 분위기가 상당한 정도로 바뀌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