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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공무원 ‘오한심’씨의 한심한 일상

오늘 지각, 내일 결근, 모레 휴가…

파견공무원 ‘오한심’씨의 한심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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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쓰랴 화초 가꾸랴, 바쁘다 바빠!

파견공무원 ‘오한심’씨의 한심한 일상
오후 2시. 다 큰 애가 아프다더니 오 팀장, 느닷없이 사무실에 들렀다. 오자마자 SPSS책을 꺼내놓고 낑낑대더니 뭔가 신통치 않은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응, 그래서 거기서 어떻게 한다고? 어…그 값은 그렇게 처리하면 되는 거야?”

벌써 한 시간째다. 요즘 오 팀장은 통계와 씨름 중이다. 전화 통화 대부분은 통계에 대한 문의 내용이다. 물론, 거는 전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박사학위를 밟는 중이다. 경영 쪽을 공부하는데 정확히 전공이 뭔지는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 통화, 시키는 일 모두 논문과 관련돼 있다. 파견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초지일관 논문에만 마음을 쏟았다. 이따금 영어번역, 문서편집 같은 일을 시킬 땐, 얼굴 거죽이 비상하게 두꺼운 신인류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파견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논문을 여기서 끝낼 작정”이라며 우리들을 공포에 떨게 하더니 정말 1년 더 있게 됐다. 요즘 바깥 분위기가 살벌해 몸을 사리기에도 좋다나 뭐라나.

“아이고, 이게 생각보다 무겁네.”



얼마 전 새로 오신, 인상도 마음 씀씀이도 푸근한 청소 아주머니가 가쁜 숨을 내쉬며 사무실로 들어온다. 웬일인지 손에는 물주전자가 들려 있다.

“아주머니, 웬 주전자예요?”

“에, 저기 팀장님 방에 화분들이 있더라고. 고것들이 목마를 것 같아서.”

그러나 우리 팀장, 고마워하기는커녕 아주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게 분명하다.

“아주머니, 화초는 제 책임이에요. 화분에 물은 제가 줍니다. 앞으로도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물 여러 번 먹으면 우리 화초들 썩습니다.”

역시나 그랬다. 화초 가꾸기는 논문 쓰기에 버금가는 실장의 중요하고도 소중한 일과다. 마른 걸레로 이파리 하나하나 얼마나 열심히 닦는지 모른다.

오후 3시 반 즈음. 마우스로 딸깍, 몇 건의 결재를 처리한 뒤 옷을 갈아입는다. 매일 오후 두어 시간은 운동을 한다. 회사 주변 산책 코스를 걸을 때도 있고 헬스장에서 땀을 뺄 때도 있다. 그런 뒤 회사로 복귀해 바로 퇴근하거나 곧장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으로 오 팀장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짐작건대 이후 일과는 수업을 듣거나 함께 박사과정을 듣는 동료들과 스터디를 하거나 집으로 가거나 세 경우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팀원들 모두 저녁을 함께하잔다. 근처 오리집으로 갔다. 가본 적이 있는 곳인데,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오리요리 코스를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 이집 괜찮네. 좋네. 식구들 한번 데리고 와야겠구먼.”

팀장도 이 집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평소 건강을 끔찍이 챙겨 기름진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고 음식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스타일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군말이 없다. 혼자 신나 떠드는 팀장의 온갖 세상사와 논문 이야기로 간만의 회식은 ‘밥고문’이 되고 말았다. 그 맛있던 오리 요리도 오늘은 그냥 그랬다.

내가 맡은 업무는 급여, 회계, 인사 등. 물론 법인카드 관리도 내가 한다. 카드는 부서 회식 때 사용하는 부서운영용 카드와 업무와 관계된 식사자리에서 쓰는 업무간담회용 카드 2개가 있다. 오 팀장이 하는 일 가운데 제일 한심한 게 또 카드와 관련돼 있다.

짐작했겠지만, 두 카드 모두 순전히 팀장 개인용도로 쓰인다. 팀 분위기가 엉망이니 부서 회식을 할 일이 없고 업무간담회는 더욱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카드 쓰는 횟수는 1주일에 3번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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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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