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정재민의 리걸 에세이

법관 경력 늘수록 형량 줄어드는 이유

  •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입력2018-07-04 22: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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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고인을 한 명씩 재판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평행우주처럼 또 다른 법정이 병렬적으로 열리곤 했다. 그 법정의 피고인석에는 옥색 수의를 입은 내 자신이 앉아 있다. 실제 법정 피고인의 죗값을 천칭에 올려 저울질할 때마다 천칭의 반대편에는 평행법정 피고인의 죗값을 올려놓고 형량을 잰다.
    [Pixabay]

    [Pixabay]

    변론이 종결되고 나면 판사는 사무실로 들어와서 판결 선고일까지 기록을 다시 보면서 판결문을 쓰게 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판사 생활이다. 책상 앞에 두꺼운 기록물을 쌓아놓고 골무를 낀 손으로 뒤적거리다가, 연필로 메모지에 메모를 하다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판결문을 적다가, 다시 기록을 읽어보다가, 한숨을 몇 차례 내쉬다가, 기록에 첨부된 동영상을 틀어서 몇 차례고 되돌려보다가, 맹렬하게 판결문을 다시 쓰기 시작하다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다가, 한참 더 기록을 읽다가 고개를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서 고민하다가 답이 안 나오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좌우로 걸어 다니다가, 컴퓨터로 유사한 판결들을 찾아보다가, 법전이나 논문을 찾아보다가, 옆 동료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다시 컴퓨터로 초안을 작성하다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출력해서 다시 읽어보다가, 그러다 연필로 초안의 문장들을 죽죽 긋고 수정을 해보다가 하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밤늦게까지. 

    판결을 내리는 일은 경력이 쌓일수록 버겁고 두렵고 어렵다.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은 물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자백을 한 사건도 적정한 형량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 정의의 핵심이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이므로 양형도 같은 사건은 같게, 다른 사건은 다르게 정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실제 문제를 놓고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지, 다르다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판단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버겁고 두려운 판결

    이런 사건이 있었다. 남녀가 사귀다가 서로 성기 사진을 찍었는데 한 사람이 유출하자 다른 사람도 유출했다. 그런데 후자가 유출한 사진 수가 더 많았고 유출한 대상도 (상대방의 직장인 대화창에도 보내서) 더욱 폭넓었다. 이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사건도 있었다. 직장인 선후배 사이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선배가 버릇없이 굴지 말라고 주의를 주자 덩치가 훨씬 큰 후배가 자기가 유도를 오래했다면서 한판 붙자고 했다. 화가 난 선배는 ‘좋다, 한판 붙자’고 하면서 ‘대신 다치더라도 고소하거나 배상을 청구하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제안했고 후배도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라면서 거듭 확인했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가서 싸움을 벌였는데 의외로 체구가 작은 선배가 후배를 온 얼굴이 퉁퉁 붓도록 흠씬 두들겨 팼다. 선배가 뜻밖에도 권투를 오래한 것이었다. 후배는 입원을 하고 자기 온몸을 촬영한 다음 선배를 형사고소해서 결국 내가 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고민이 된 문제는 서로 다치더라도 고소나 배상청구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데 대한 판단이었다. 물론 법적으로 이러한 합의는 사회 상규에 반하는 법률행위라서 무효다. 그렇다고 이런 약속 없이 폭행한 사건과 완전히 똑같이 취급하는 게 타당할까. 피해자도 나서서 이런 약속을 했으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도발했거나 자신이 어느 정도 폭행당하는 것을 승낙한 것으로 보고 가해자의 책임을 조금 덜어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이것은 기사끼리의 결투가 허용되던 옛날 옛적의 야만적이고 반문명적인 생각일 뿐일까.



    형량이 불가능한 일들

    처벌을 하면서 내가 하는 처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을 정도로 황망한 심정이 들 때도 있다. 영아살해죄로 기소된 여대생 피고인을 재판한 적이 있다. 어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한두 살 연하 남자와 사귀다 아이를 가진 뒤 헤어졌다. 피고인은 임신 사실을 가족을 비롯한 모두에게 숨기고 있다가 혼자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배가 불러오는데 허리띠를 졸라매 배를 감추고 다니기만 하고 병원조차 가보지 않을 정도로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처신을 하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아기를 낳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여대생은 가위로 혼자 탯줄을 자른 다음 농을 열고 그 안에 쌓인 이불 더미 사이에 아기를 넣어놓고 며칠을 보냈다. 당연히 아기는 죽었다. 일주일 뒤에 피고인은 죽은 아기를 꺼내서 쇼핑백에 담은 다음 전 남자친구의 아파트 문 앞에 놓아두었다. 그 쇼핑백을 전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열어보고 경악하면서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나는 그 창백하고 파란 아기 시체 사진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이런 사건을 보면 그저 마음이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인간이란, 생명이란, 삶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뿐, 적법과 위법을 따지고, 징역 몇 년이 적정한지 따지고, 실형인지 집행유예인지 따지는 것이 뜬금없고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식당에서 칼을 휘둘러 강도로 구속된 50대 피고인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는 월세 2만 원짜리 창고에서 살았다. 월세 2만 원짜리 숙소가 어떨지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죗값을 치르고 교도소에서 나오니 일하라고 받아주는 곳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아 일하기도 어렵고, 가족은 다 떠났고, 친구도 없었다. 그날도 피고인은 배가 고픈데 밥 사 먹을 돈이 부족해 소주를 한 병 사 먹고 그 좁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생쥐가 찍찍거리면서 얼굴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잠을 깼는데 배가 고파도 너무 고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허기가 진 그는 근처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찾았다. 놀란 주인이 냄새나는 침입자인 그를 몰아내려고 하면서 몸싸움이 일어났는데 그는 한 손으로는 도마 위에 있던 칼을 휘두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음식을 집어먹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칼을 휘두르면서 음식을 빼앗았기 때문에 강도가 된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징역 몇 년을 선고해야 하는가. 징역형 선고 대신 법대 위에 밥상을 차려서 배불리 먹여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사건도 있었다. 법정경위가 사건번호를 부르자 방청석에 있던 피고인이 휠체어를 타고 법대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휠체어 위에 피고인의 상체만 놓여 있을 뿐 두 다리가 없었다. 솜사탕 장수인 피고인은 솜사탕 기계가 설치된 트럭을 몰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걸어가던 네 가족을 들이받아 아빠와 어린 두 딸을 즉사시켰다. 가장 오른편에 걷다가 혼자만 살아남은 그 가족의 엄마는 숨을 쉴 때마다 화염을 들이켜는 것처럼 괴롭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트럭이 벽을 들이받는 바람에 운전하던 피고인도 두 다리를 잃었다. 그 무렵 피고인은 솜사탕 장사가 너무 안돼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가 나던 날 아침에는 집주인이 집세가 한 번 더 밀리면 집을 비워달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날 피고인이 속이 상해서 과음을 했고 취중에 운전하다가 그 사달이 난 것이다. 피고인이 월세를 내기도 벅찼으니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도 못했다. 배상금은커녕 자기 다리 수술비도 다 내지 못했다. 

    여기서 피고인은 얼마나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유족에게는 또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가? 사지가 멀쩡한 사람의 징역 1년과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의 징역 1년은 같은 것인지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보를 글자로 보고 머릿속으로 적정한 형량을 가늠하는 것은 차라리 쉽다. 판사가 되어 바로 눈앞에서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휠체어 위에 앉아 두려운 눈빛으로 벌벌 떨고 있는 왜소한 남자의 눈빛을 마주한 채로 판단하려고 하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월세 방에서 살고 있는 가족이 그를 위해 눈물로 쓴 탄원서까지 읽는다면 더더욱 묵직한 무게를 마음에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일은 한 다리가 잘려나가서 다리가 세 개 뿐인 말에게 빨리 달리지 않는다고 채찍질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물론 딱한 사정을 주장한다고 해서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과장해서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월급이 1000만 원이나 2000만 원이면서 자꾸만 자기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한다. 어느 피고인은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힘들게 살아왔다’라며 읍소했는데 기록을 보니 존속살인죄 전과가 있었다. 또 다른 피고인은 자신이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해달라고 간청했는데 기록을 살펴보니 전처에 대한 살인미수죄 전과가 있었다.

    스톡과 플로

    사람 인생의 어느 단면을 잘라보면 잘했다, 잘못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스톡(stock)’이 아니라 ‘플로(flow)’를 놓고 보면 한마디로 잘했다, 잘못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징역 10월인지, 1년 6개월인지, 벌금 150만 원인지, 벌금 30만 원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려고 해보면 이 판단이 얼마나 어렵고, 모호하고, 난처한 일인지 알게 된다. 

    양형기준표가 있지만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인간사의 경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어떤 일을 얼마나 나쁘게 평가할 것인지 사람마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을 때가 많고 통일되기도 어렵다. 

    내 자신부터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마저도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달라진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지만 내 자신도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변한다. 그 변화의 양상을 일일이 말하자면 끝도 없으니 생략한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피고인에게 선고하는 형량이 대체로 약해진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징역 2년을 선고했을 사건에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실형을 선고했을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을 사건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하는 식이다.

    평행법정

    경력이 짧을 때는 선배 판사들의 형량이 약한 것이 불만이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더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니 법질서가 제대로 서지 않는 것이라 비판하는 마음도 있었다. 피고인들의 범죄를 보면 분노가 일었고 그 분노를 정의감이라 착각했다. 판결을 통해 그런 분노를 화염방사기처럼 방사하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 착각했다. 그 분노가 내 무의식에 잠복하고 있는 트라우마나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혹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반듯하게 제자리를 잡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범생 특유의 완벽주의적 강박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음을 한 조각도 의심하지 못했다. 

    재판 경력이 쌓이면서 형량이 약해지는 것은 점차 내 자신을 피해자보다 피고인에게 투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은 정의의 관점에서 순결하고 앞으로도 평생 순결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살아온 날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나 역시 잘못 처신하는 일이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내 가슴속 법정에서 내 자신이 피해자석에서 피고인석으로 한 걸음씩 옮겨간 모양이다. 

    피고인을 한 명씩 재판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평행우주처럼 또 다른 법정이 병렬적으로 열리곤 했다. 그 법정의 피고인석에는 옥색 수의를 입은 내 자신이 앉아 있다. 실제 법정의 피고인의 죗값을 천칭에 올려 저울질할 때마다 천칭의 반대편에는 평행법정 피고인의 죗값을 올려놓고 형량을 잰다. 어느 피고인의 죗값이 더 무거운지를.

    정재민
    ●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 前 판사, 舊 유고유엔국제 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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