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많이 깨져봐야 뒷문이 튼튼해진다

쿠엘류의 포백 실험 성공할까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체육부 차장 mars@donga.com

    입력2003-05-26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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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2는 ‘양날의 칼’과 비슷하다. 수비를 하다가 상대 패스를 끊었을 때는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 동료가 상대편 공을 낚아챘을 때 좌우 미드필더나 좌우 윙백이 공격에 가담해 최대 2-4-4를 만들 수 있다.
    많이 깨져봐야 뒷문이 튼튼해진다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쿠엘류 감독. 그가 한국축구 ‘제2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축구는 ‘공간 만들기 게임’이다.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팀은 이기고 그렇지 못한 팀은 지게 돼 있다.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는 팀은 지지 않는다.

    오렌지군단 네덜란드팀은 소위 ‘토털축구’를 지향한다. 도무지 빈틈이 없다. 순식간에 공격수가 7명이었다가 금세 수비수가 8, 9명이 된다. 허리와 수비가 그물코처럼 촘촘해 뚫고 들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상대팀은 공을 잡아도 공을 줄 곳이 없다. 네덜란드팀은 허리를 장악하고 엄청난 힘으로 상대를 압박해 온다. 숨이 턱턱 막힌다.

    히딩크가 한국팀에 접목했던 축구가 바로 이 ‘네덜란드식 토털 축구’다. 히딩크가 이 축구를 이식하는 데 꼬박 1년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선수들과 거의 1년6개월 동안 합숙하면서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그리고 마침내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토털 축구란 무엇인가. 그것을 만들어낸 네덜란드 최고의 축구 스타 요한 크루이프의 얘기를 들어보자.

    “토털 축구란 기술보다는 머리를 쓰는 축구다. 공수전환이 자유자재여야 한다. 선수와 선수 간 공간이 비지 않도록 전원이 유기적으로 뛰어야 한다. 한 선수의 단점을 옆에 있는 선수가 보완해야 한다. 그냥 보면 선수들이 우왕좌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톱니바퀴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체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상상력에 바탕을 둔 두뇌플레이가 더욱 중요하다. 핵심은 선수 사이의 공간을 촘촘히 유지하는 것이다. 이 공간이 촘촘하면 우리 선수는 공을 잡기 위해 10을 뛰지만 상대 선수는 30을 뛰어야 한다. 우리 선수의 체력을 유지하면서 상대 체력을 바닥나게 하는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 전원이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축구는 ‘공간창조 싸움’



    그렇다. 현대 축구는 한마디로 ‘공간 창조 싸움’이다. 물론 축구만 그런 건 아니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농구 경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축구와 비슷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 개념(농구에도 이와 비슷한 ‘3초 룰’이 있다)만 뺀다면 축구와 농구는 거의 똑같다.

    우선 농구에서도 상대에게 빈 공간을 주면 3점슛을 얻어맞기 십상이다. 농구에서는 상대에게 슛을 쏠 수 있는 빈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 갖가지 수비전술이 발달돼 왔다. 지역방어와 대인방어가 그렇고 지역방어만 해도 ‘투 스리 존’ 등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농구 패스는 왜 그렇게 빨리 하는가. 한마디로 공간을 만들어 슛을 날리기 위해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공을 다시 뒤로 돌린다. 현대 축구도 농구와 마찬가지로 패스가 엄청나게 빠르고 정확하다. ‘발로 하는 농구’라고 할 정도다. 그렇게 해야 빈 공간을 만들어 슛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미국 프로농구(NBA)나 국내 프로농구에서는 지역방어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한다. 수비가 촘촘한 지역방어에선 슛이 터지지 않아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신 1 대 1 대인방어를 하도록 한다. 포인트가드는 포인트가드가 맡고 센터는 센터끼리 맞대결하는 1 대 1 매치 방식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쪽이든 한두 곳은 뚫리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각각 대인방어를 하고 있는 선수 중 한두 명은 상대 선수보다 기량이나 높이(키)에서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격수이자 수비수

    결국 축구란 어떻게 아군의 공격과 수비 숫자를 최대한 빨리 늘리는가의 게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수비 숫자가 많으면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게 되고 공격 숫자가 많으면 그만큼 공간 창조 기회가 많아진다. 만약 선수 11명이 동시에 수비수가 되었다가 동시에 공격수가 될 수 있다면 그 팀은 세계 최강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축구가 추구하는 토털 축구다.

    토털 축구에서는 모두가 공격수이기도 하고 수비수이기도 하다. 폭 20~30m의 좁은 미드필드에서 처절한 백병전을 치른 뒤 스피드, 힘, 기술로 상대 최후방 전선(스리백이나 포백)을 무너뜨리고 골문에 돌진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허리에서의 압박을 강조해 백병전에만 신경쓰다 보면 거의 모든 선수가 공에만 몰려 뒤쪽에 빈 공간이 생긴다. 상대의 송곳 패스 한 방으로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압박을 하면서도 일정한 폭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명 혹은 3명의 수비수가 물막이 댐처럼 한 몸같이 움직여야 된다. 허리진도 일차 물막이 댐 역할을 해야 최종 댐이 무너지지 않는다.

    4-4-2는 4-2-4의 변형이다. 4-2-4는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17세의 펠레를 앞세운 브라질이 들고 나와 우승한 포메이션이다. 허리 2명은 때로는 공격에 가담하고 위험할 때는 순식간에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허리의 부담이 크다. 상대가 속공으로 역습을 할 때는 순식간에 아군의 최후방이 최전선으로 바뀐다. 이럴 경우 공격수 4명은 적진에 고립돼 별로 쓸모가 없다. 결국 4-2-4는 최악의 경우 ‘따로 국밥식 축구’를 하게 된다. 공격수 4명은 공격만 하고 수비수 4명은 수비만 하는 식이다.

    4-4-2는 4-2-4에서 공격수 4명 중 2명은 그대로 놔두고 좌우 날개를 허리로 끌어내린 포메이션이다. 1966년 잉글랜드가 영국월드컵에서 우승한 포메이션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윙백 2명이 순식간에 공격에 가담하기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는 포메이션이었다.

    요즘과 같이 공격적 4-4-2가 완성된 것은 1974년 서독월드컵이다. 토털 축구를 들고 나온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팀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형식은 4-4-2였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은 자리나 포메이션에 구애받지 않았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 개념에 공격·허리·수비진의 공간을 촘촘하게 하면서 상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토털 축구는 한 팀에 세계적인 스타가 6, 7명은 있어야 가능하다. 강한 체력, 번개 같은 스피드, 넓은 시야를 갖춘 스타가 베스트 11명 중 최소 60%는 넘어야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각 팀들은 4-4-2를 자기 팀 선수들 역량에 맞춰 조금씩 변형해 사용했다. 보통 땐 정상적으로 경기를 하다가 한순간 기습적으로 상대에게 압박을 가한다든가 혹은 양 윙백이 가끔씩 공격에 가담하는 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탈리아는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빗장 수비 중심의 4-4-2 포메이션으로 우승했다. 수비수 4명과 허리진 4명이 2중 3중으로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면서 상대에게 전혀 공간을 주지 않았다. 양 사이드가 돌파당할 땐 거친 태클로 상대 공격의 맥을 끊었다. 그러다 한방의 긴 패스로 기습 침투해 골을 넣고는 뒷문을 꽁꽁 잠가버렸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이 4-4-2를 들고 나와 우승했다. 당시 브라질은 지역방어 개념의 포백을 섰다. 그리고 공수 간격을 30m 이내로 좁힌 상태에서 강력한 압박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축구와 같은 일자형 포백을 쓰지는 않았다.

    포백 전술은 ‘양날의 칼’

    보통 4-4-2에서 포백은 일자로 나란히 서서 상대 공격수를 오프사이드 함정에 몰아넣거나 공격 때는 하프라인을 넘어 상대지역까지 올라가 강하게 압박한다. 당연히 공격·허리·수비진 간의 폭이 좁아 보급로가 쉽게 끊기지 않는다.

    4-4-2는 ‘양날의 칼’과 비슷하다. 수비를 하다가 상대 패스를 끊었을 때는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 동료가 상대편 공을 낚아챘을 때 좌우 미드필더나 좌우 윙백이 공격에 가담해 최대 2-4-4를 만들 수 있다. 윙백이 사이드 공격에 가담할 땐 허리에 있는 미드필더가 그 빈 자리를 메운다. 그만큼 4-4-2는 공격과 수비를 유기적으로 만드는 데 유리한 포메이션이다.

    4-4-2의 핵은 좌우 미드필더 2명과 양 윙백 2명이다. 이들은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톱니바퀴처럼 상대의 양 사이드를 파고든다. 또한 이들은 상대가 공을 잡았을 땐 수시로 압박을 가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이 압박을 가하는 지역은 대부분 양 사이드 지역이다. 같은 사이드라도 자기 골문에 가까운 후방 지역은 피한다. 그곳에서 압박에 실패할 땐 단번에 골을 먹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 사이드 지역에서 압박에 성공할 땐 곧바로 상대 골문이 사정거리에 든다. 보통 중앙에서의 압박은 3, 4명의 선수가 에워싸야 하므로 인력과 품이 많이 들어 피한다. 이에 비해 사이드에선 2명만으로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

    포백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4명의 수비수가 나란히 늘어서는 일자형. 대부분의 유럽 프로리그에서 채택하고 있는 전술로 일사불란한 전진과 후퇴로 강한 압박을 구사한다. 쿠엘류 감독이 지향하는 한국팀의 전술도 이와 같다.

    그러나 일자형 포백에도 약점은 있다. 그곳은 바로 포백 등뒤 지역이다. 상대의 빠른 공격수들이 등뒤를 파고들면 뼈아프다. 그래서 포백을 쓸 때는 상대가 양 사이드를 뚫지 못하도록 모든 선수가 상대 공격수들을 압박해 공을 경기장 가운데로 몰아야 한다. 상대가 공을 잡는 순간 모든 선수가 양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사이드 압박’과 ‘상대로 하여금 중앙으로 공을 몰게 해야 한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말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상대를 사이드 쪽에서 강하게 압박하면 공은 중앙 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많이 깨져봐야 뒷문이 튼튼해진다

    지난 4월16일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한·일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안정환(왼쪽)이 일본의 수비수 모리오카를 앞에 두고 슈팅을 날리려 하고 있다.

    브라질 등 남미에서는 가운데 2명의 수비수 중 한 명을 스위퍼 형태로 처지게 배치한다. 일본은 남미식을 기본으로 가운데 2명을 모두 처지게 배치해 U자형으로 수비를 안정시키고 양 측면에서 공격 가담을 많이 하는 변형 포메이션을 구사한다. 따라서 일본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상대가 원톱 포메이션으로 나올 땐 포백을 쓴다. 원톱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미드필더의 활동반경을 넓혀주기 위한 전술이다. 바꿔 말하면 상대의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양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가 실제적인 저격수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결국 상대가 원톱 포메이션으로 나올 땐 원톱 1명과 미드필더 3명 등 공격수가 4명이 되고 이를 막기 위해선 포백으로 맞서는 게 효율적이다. 더구나 실제 상황에선 상대편의 양 사이드 미드필더가 동시에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역습 땐 매우 위험하므로) 사실상 상대가 원톱으로 나올 땐 공격수가 3명이 되는 셈이다. 이런 경우 수비는 상대 공격수보다 늘 1명 이상 많아야 된다는 축구전술 원칙과도 부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대가 투톱을 쓸 경우엔 보통 수비 숫자가 1명 더 많은 스리백으로 맞선다. 그러나 말이 투톱이지 상대 미드필더 2명도 공격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 스리백에서는 보통 미드필더 2명을 포함, 5명이 수비를 하게 된다.

    스리백은 수비 약점을 메우기 위해 중앙 수비수를 양 측면 수비수보다 조금 앞으로 배치해 상대의 포워드를 차단하는 ‘스토퍼 포메이션’이나 중앙 수비수를 처지게 배치하는 ‘스위퍼 포메이션’을 쓰기도 한다. 이 수비전술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독일(3-5-2)이 우승하며 크게 유행했다.

    스리백은 ‘맨투맨 방어’ 개념이고 포백은 ‘지역방어’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 스리백이라 해서 줄곧 맨투맨 방어만 하거나 포백이라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역방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선수 특징에 따라 경기중에도 수시로 스리백과 포백, 그리고 지역방어와 맨투맨 방어가 혼합된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전 기술위원장(세종대 교수)은 “포메이션은 생물체와 같다”고 말한다. 절대적,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선수, 상대팀에 따라 가변적,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브라질은 카를로스와 카푸라는 최고의 윙백을 보유했던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포백(4-4-2) 포메이션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지난해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와 호나우디뉴의 공격력을 살리는 스리백(3-5-2)으로 정상에 올랐다.

    본받아야 할 히딩크의 임기응변

    축구에서 ‘명수비수 한 명 만드는 게 명공격수 10명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비수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포백은 ‘축구의 공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는 포메이션이다.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선 4명의 수비수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생각하는 축구’를 해야 한다.

    콜롬비아와 일본전에서 선보인 쿠엘류 사단의 포백(박충균-김태영-조병국-최성용)은 김태영을 빼고는 아직 경험이 적은 데다 어릴 때부터 대인방어 개념에 익숙한 신진들이다. 그만큼 같이 훈련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며 국제 경험도 더 쌓아야 한다. 핫토리-모리오카-아키타-나라하시로 이어지는 일본의 포백은 월드컵 훨씬 이전부터 호흡을 맞춰 오늘날의 ‘철벽 포백’이 됐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취임 초기 포백을 시도하다 끝내 스리백으로 돌아왔다. 한국선수들의 문제점과 특성을 파악한 뒤 굳이 포백을 고집하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탁월한 스위퍼 홍명보의 존재도 스리백으로의 전환을 마음먹게 한 요인이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은 포백이 전술적으로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전술에 얽매이기보다 선수들의 특성을 우선시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다고 히딩크가 월드컵 기간 중 스리백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에 따라 선수들의 위치를 이동시키며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이는 이영표와 송종국 등 ‘히딩크의 황태자’들이 포지션 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벽히 소화해냈기에 가능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이용수 교수는 “히딩크는 풍부한 경험으로 한국 선수들에 대한 분석은 물론 상대팀을 철저히 파악, 순간순간 창의적으로 전술을 발전시켜 적용했다”며 “우리 지도자들도 전술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히딩크로부터 이런 임기응변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포백은 전술 운용상 장점이 많다. 히딩크 감독이 포백을 도입하려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신임 쿠엘류 감독도 “포백은 내가 한국대표팀을 맡고 나서 가장 보완된 부분이라고 자부한다. 포백은 4명이지만 스리백은 자세히 보면 (특히 수세 때) 5명이 서는 경우가 많다. 포백은 좌우 측면 수비가 공격을 지원해줄 수 있다. 다이내믹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대표팀의 포백 포메이션은 프로구단 성남 일화가 쓰고 있는 것이나 똑같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얼마나 역동적이냐 하는 점이다. 전술을 다이내믹하게 운용하기 위해 앞으로도 4-2-3-1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지 않겠다. 내가 한국에 온 뒤 국내 프로구단들이 3-4-3이나 3-5-2의 스리백에서 포백 포메이션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쿠엘류 국가대표팀 감독의 일급 조력자인 박성화 수석코치는 “포백 포메이션이 수비조직적인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고 단언한다. 박코치는 국내에서 포백 포메이션을 가장 먼저 실제 전술로 도입한 지도자다.

    박코치가 포백을 처음 접한 것은 국내에서 스리백이 대세를 이루던 1993년. 유공(현 부천SK) 감독이던 박코치는 당시 일본 동계훈련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수비에 유공 선수들이 쩔쩔매는 것을 보고 포백 포메이션의 위력을 확인한 뒤 곧바로 도입했다. 박코치는 이어 1995년 1년간 영국에서 연수하며 포백을 더욱 익힌 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아 본격적으로 갈고 닦았다. 그의 고집은 지난해 청소년대표팀(20세 이하)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면서 열매를 맺었다.

    박코치는 “한국 선수들이 포백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축구를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스리백에만 익숙해진 결과”라며 “조직력만 잘 갖추면 포백은 스리백보다 더 강한 포메이션”이라고 장담했다. 박코치는 또 “포백은 수비조직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팀의 전술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 현대 축구에 적합하다”며 “청소년팀같이 일찌감치 포백을 접한 선수들은 오히려 포백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17세 이하 한국 청소년팀이 이탈리아 국제대회에서 일자형 포백으로 우승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윤감독도 “선수들이 포백을 더욱 편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리백이니 포백이니 하는 수비 포메이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비수 개인의 역량이다. 결국 모든 전술은 선수들 역량에 맞춰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센터라인은 ‘축구의 백두대간’

    축구에도 백두대간이 있다. 센터라인이 바로 그것이다. 센터라인은 우리 몸의 ‘등뼈’나 같다. 축구에서는 공격 허리 수비 등 각 부문의 포지션 리더다. 골키퍼-센터백-수비형 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센터포워드로 이어지는 이들은 체격이 좌우 날개들보다 커야 한다. 또한 노련하고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그래서인지 골키퍼-센터 백-수비형 미드필더는 대개 A매치 경험이 많고 나이도 많다. 2002월드컵 당시 한국팀의 이운재(30·182cm)-홍명보(34·183cm)-유상철(32·184cm) 김남일(26·181cm)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팀 센터라인의 체격조건을 보자. 골키퍼 바르테즈(183cm)-센터백 드사이(185cm)-수비형 미드필더 비에이라(191cm)-공격형 미드필더 지단(185cm)-센터포워드 앙리(188cm). 평균 키가 무려 186.4㎝인 데다 평균 몸무게 또한 83㎏이나 된다. 센터백 드사이(85㎏)는 몸싸움에 강해 ‘우람한 바위’로 불릴 정도다. 센터백은 ‘4명의 물막이 댐’ 한가운데 서서 수비진을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대인 방어 능력, 고공 장악 능력, 과감한 태클, 정확한 위치 선정 등 못하는 게 없어야 한다.

    쿠엘류사단의 한국 센터백은 현재 김태영(33·180㎝ 73㎏)과 조병국(22·183㎝ 78㎏). 이 중에서도 수비진의 지휘는 김태영이 맡고 있다. 세계적으로 센터백은 키가 최소한 185㎝ 이상이어야 하며 노련하고 빨라야 된다. 또 상대 공격수에 못지않은 순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명수비수 출신 쿠엘류 감독은 부임 후 “세대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펠레도 마라도나도 은퇴했다. 그래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홍명보가 은퇴했다고 한국수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수비라인이 노쇠하지만 숨은 진주들은 여전히 많다. 한국올림픽대표팀에 있는 185㎝ 이상의 건장한 수비수들을 눈여겨봐 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최성용 박충균 조병국 등 신인들을 발굴 기용했고 그들에게 만족스런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한일 친선경기를 본 후 조광래 안양 감독은 “중앙 수비라인의 김태영과 조병국은 저돌적이고 파이팅은 돋보였지만 지능적인 플레이가 아쉬웠다. 미드필드진의 압박도 예전 같지 않았다. 수비-미드필드-공격으로 이어지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해 일본에 여러 차례 공격 기회를 내줬다”고 말했다. 김희태 포천축구센터 감독도 “한국의 일자 포백은 스루 패스와 2선 침투에 의해 단독찬스를 허용하는 약점을 여러 번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은 “적응기간이 너무 짧아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지만 쿠엘류호는 비교적 안정된 수비에다 빠른 좌우 측면 돌파로 활기찬 경기를 펼쳤다. 미드필드진이 상황에 따라 위치를 바꿨고 변화를 주면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다만 가운데 원톱은 보강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3월23일 한국과 0-0으로 비긴 후 콜롬비아 마투라나 감독은 “경기 결과가 말해주듯이 쿠엘류 감독의 포백 시스템은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다지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은 여러 명의 선수가 동시에 공격에 가담해 수 차례 골 찬스를 만드는 등 공격력도 좋았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이탈리아 인터밀란에서 뛰고 있는 콜롬비아 수비수 이반 코르도바도 “정말로 포백을 처음 쓴 것인가? 그렇다면 축하해주고 싶다. 포백은 상대 공격을 옥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은 2002월드컵을 위해 3년 전부터 준비하며 팀워크를 다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역시 잘 조직된 팀이었다. 그라운드 전체를 압박을 통해 촘촘하게 사용하며 선수 전체가 좋은 움직임을 보여 상대하기 힘들었다”고 맞장구 쳤다.

    이에 대해 쿠엘류 감독은 “콜롬비아전을 위해 선수들이 불과 이틀 동안 두번밖에 훈련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포백시스템을 잘 이해했다는 게 맘에 든다. 한국은 국제적인 팀이므로 앞으로 포백이든 스리백이든 상대팀의 전력을 봐가며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쿠엘류 감독은 일본전에서 패한 뒤에도 “수많은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은 원톱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던 시스템의 부조화 때문이다. 수비 부분에서도 지금 상황에서 포백이든 스리백이든 손발이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선수들의 이해력 부족은 훈련으로 보완할 수 있으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주장 유상철도 콜롬비아전을 마친 뒤 “월드컵 이후 유럽으로 진출한 선수들의 전술 이해력이 굉장히 높아졌다. 처음 포백을 썼는데 금방 이해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3-5-2 전형이 경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라면 포백은 조직적이어서 체력적인 부담이 덜하고 역으로 상대는 공격하기 힘든 전형”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족집게 강사 vs 가정교사

    축구황제 펠레는 말한다. “조직력은 가르치거나 연습해서 단기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습장에서 수백 번 반복 훈련한 전술이라도 실제 경기에선 한 번을 제대로 써먹기 힘들다. 실전에서 상대팀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상황이 연습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중에 팀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 개개인의 두뇌와 반사신경에 의해 그때그때 ‘창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수비 조직력은 수많은 경험과 개인의 역량에 의해 그때그때 창조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포백이 한국팀에 맞느니 안 맞느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

    히딩크가 코앞에 닥친 시험(월드컵)을 앞두고 모셔온 ‘족집게 강사’였다면 쿠엘류는 정상적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의 ‘가정교사’라고 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사실상 1년6개월 동안 선수들과 합숙하며 선수들의 본성까지 자기 색깔에 맞게 바꿔버렸다.

    반면 쿠엘류 감독은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 사흘 전에야 선수들을 소집할 수 있다. 쿠엘류가 히딩크처럼 선수들의 본성까지 바꾼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학교생활을 희생해가며 합숙 훈련을 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어디까지나 학생의 학교 공부를 도와주며 실력을 키워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일전(4월16일)을 일주일 앞두고 대표팀을 소집했으나 일부 프로팀의 거부로 훈련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좋은 예다.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은 “쿠엘류 감독이 프로 감독들의 도움을 받아 대표팀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쿠엘류는 무작정 앞에 찔러주고 돌진하는 ‘한국형 치고 달리기식’ 축구를 싫어한다. 그는 ‘패스를 통한 콤비네이션 축구’를 원한다.

    현대 축구 추세는 누가 뭐래도 스피드다. 그런데 한국팀은 기본적으로 이 부분이 잘 갖춰져 있다. 여기에 볼을 소유하고 패스하는 능력만 갖추면 세계적인 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선수들은 유럽선수들처럼 체력을 바탕으로 강한 압박 플레이를 펼친다. 또한 공을 상대방에게 빼앗기면 포기하지 않고 되찾으려는 집념도 뛰어나다. 게다가 한국선수들의 학습능력은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다. 총명하고 배우려는 열의가 강한 한국선수들과 함께라면 지금보다 30%는 더 전력을 높일 수 있다고 쿠엘류는 믿는다.

    그러나 그는 언어장벽을 절감한다. 포르투갈 감독 시절엔 선수들에게 얼마든지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아 선수들에게 다가서기 힘들다. 그건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금 히딩크의 월드컵팀에서 서서히 색깔을 바꿔가는 도중에 있다. 여기엔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 쿠엘류는 김두현 최성국 김상식 박동혁 박주성 등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을 잘 조련해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 정말 그는 매일 선수들과 같이 있고 싶어한다. 1년6개월 동안이나 선수들과 함께한 히딩크가 부러울 것이다.

    쿠엘류는 갈비를 좋아한다. 그러나 아직 김치에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김치 맛에 익숙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는 ‘국가대표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우선 그 나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치를 먹고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 때문이다. 히딩크는 김치엔 전혀 손대지 않았다. ‘한국선수들도 영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한국어를 하지 않는다’며 한국말도 별로 배우려 하지 않았다.

    ‘너무 배고픈’ 쿠엘류

    쿠엘류는 코치진들에게 “축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앞으로 내 이름인 움베르토로 불러달라. 나도 당신들을 ‘(박)성화’ ‘(최)강희’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감독과 코치가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한 것이다. 히딩크가 자신에 대한 호칭만은 ‘미스터 히딩크’로 부르게 한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쿠엘류는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조용하다. 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굳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경기를 응시한다. 히딩크는 벤치 주변에서도 쇼맨십이 화려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적도 거의 없고 수시로 그라운드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큰 소리로 선수들을 격려한다. 판정이 마음에 안 들면 심판 옆으로 다가가 강력한 항의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 골이 들어가면 ‘어퍼컷 세리머니’로 주먹을 허공에 연거푸 질러댄다.

    슈우웃 고오올~인. 쿠엘류의 골 세리머니는 과연 무엇일까. 그가 온 후 한국팀은 아직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쿠엘류는 요즘 너무 너무 배가 고프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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