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감독이 굽실거리면 야구가 죽는다”

전격 해임된 김성근 전 LG트윈스 감독 심경 토로

  • 글: 안승호 굿데이 야구부 기자 winho@hot.co.kr

    입력2003-01-02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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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에 빠진 사람을 건졌더니 가방을 찾아내라며 뺨을 때린다던가. 프로야구 2002 시즌 개막 전 하위권으로 평가받던 LG를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끈 김성근 전 LG 감독(60)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광적인’ LG 팬들에게 월드컵 4강에 버금가는 감동을 안겨준 김감독에게 날아든 것은 썰렁한 ‘해임 통보서’. 야구계의 ‘이단아’ 김감독이 털어놓은 해임 이후의 심경과 ‘正道 야구’론.
     “감독이 굽실거리면 야구가 죽는다”
    ‘준우승 감독 해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갈등은 한국시리즈 이후 새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불거졌다. 김감독이 추천한 인물을 구단에서 거부하며 잡음이 일었던 것.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해임사유는 LG스포츠 어윤태 사장이 장기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야구 스타일과 김감독의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2001년 12월 부임한 어사장은 90년대 초반 LG 단장 시절부터 ‘신바람 야구’를 주창한 당사자.

    어사장은 자신이 뽑지도 않았고 스타일도 맞지 않는 김감독을 사장 취임 이후 줄곧 교체대상으로 생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내내 “김감독 해고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구단 주변에서 흘러나왔던 것. 김감독이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이틀 뒤 가진 어사장과의 면담에서 들은 첫 마디가 “올해는 ‘LG 야구’가 아니라 ‘김성근 야구’를 했다”는 것이고 보면 김감독과 어사장의 엇박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김감독 또한 시즌 내내 해고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덕아웃으로 향했다고 말한다. 어사장이 현장 사령탑을 돕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적을 내고 나서 13일 만에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감독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1983년 OB에서 처음 사령탑을 맡은 뒤 다섯 차례나 유니폼을 입고 벗기를 반복한 그지만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낸 뒤 칭찬 한마디 없이 ‘봉변’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감독은 LG가 9승25패로 바닥을 기던 2001년 5월 감독대행으로 사령탑을 맡았다. 2년도 지나지 않아 특별한 전력 보강 없이 하위권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김감독의 자부심이다. 특히 모래알처럼 제각기 흩어져 있던 ‘서울 깍쟁이’ 선수들에게 근성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것. 지난 11월28일 기자와 만난 김감독은 그래서인지 아직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신바람’이 항상 통하는 게 아니다”



    -야구가 일상생활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현장을 떠난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요.

    김성근 감독은 11월10일 한국시리즈 대구 6차전에서 10-9로 역전패를 당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새벽 1시에 서울에 도착해 새벽 4시까지 다음 시즌을 위한 훈련계획을 세웠다. 한마디로 야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것. 해임된 이후 일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는 어디서나 할 수 있어요. 다만 그늘에서 하느냐, 무대 위에서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무대 밖에서 일한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열심히 하면 그만입니다. 해임통보를 받은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 야구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당분간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시즌 내내 감독 교체설이 돌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던 5월에는 구단 측이 감독 교체를 준비하며 여론을 살피기도 했고, 구단 사장은 전 LG 코치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새 코칭스태프를 조각하기도 했는데요.

    “시즌 중에 이런저런 소문은 많이 들었지요. ‘4강에 들지 못하면 해고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면 해고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사실 구단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유니폼을 벗을 생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편하게 포스트시즌을 치렀는지도 모르겠고요.”

    -‘신바람 야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 해고 이유였습니다. ‘신바람 야구’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윤태 사장이 말하는 ‘신바람 야구’란 ‘선수들의 기(氣)가 살아야 그라운드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김감독 해임 이후 어사장이 1994년 우승 감독이자 ‘신바람 야구’의 파트너였던 이광환 감독을 일찌감치 차기감독으로 내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감독대행을 맡고 보니 선수들이 경기장 분위기에 이끌려 쉽게 들뜨더군요. 자연스레 자기 위주 플레이를 하면서 자기가 잘못하면 다른 선수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잘못된 스타의식을 갖고 있었던 거죠. 팀 전력이 엄청나게 강하면 이런 식의 야구가 통하겠지만 지금의 LG는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선수들 모두 동료를 생각하는 ‘책임야구’를 하도록 애를 썼던 겁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LG팀이 보여준 플레이가 그 전형이 아닌가 싶어요. 비로소 좋은 팀이 됐는데 완성을 못하고 물러난 것이 가장 아쉽죠.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다져놓은 선수들의 정신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 LG트윈스가 전력의 열세를 딛고 강팀을 꺾어나간 플레이를 ‘옳은 야구’ 또는 ‘바른 야구’라고 부른다. 선수들이 필요 이상의 스타의식을 버리고 자기에 대한 책임감과 동료의식을 갖고 뛰었기 때문에 팀 전력이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처음 LG에 와보니 코치들이 오히려 간판선수들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이었어요. 이것부터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01년 6월 무렵 SK전에서 근 10점차로 지고 있었는데 중견수 이병규가 좌중간으로 빠진 볼을 천천히 쫓아갑디다. 그래서 선수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불러 세워놓고 큰소리로 혼을 냈습니다. 그날 밤 병규가 찾아와서 사과를 하더군요. 그 일이 병규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지요. 다른 구단에서는 간판선수가 호되게 혼나는 경우가 있지만 LG에서는 드물었던 모양이에요. 아마 스타급 선수들 중에서는 병규가 후배들 앞에서 제대로 혼이 난 첫 번째 경우였을 겁니다.”

    실제로 LG 선수들은 지난 2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인기팀 스타선수들이 휩싸이기 쉬운 ‘거품’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 그간 LG를 지켜본 많은 야구인들의 중론. 이는 김감독이 스타선수뿐만 아니라 무명선수에게도 충분히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2002시즌 LG의 주역인 최동수 권용관을 비롯해 주로 2군에 있던 선수들이 팀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도 ‘이름값’으로 선수들을 차별하지 않은 결과다.

    “현장 책임자는 구단이 아니라 감독”

    김감독이 구사하는 이 ‘적극적인 용병술’의 위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김감독은 1988년 OB를 떠난 뒤 1989년부터 2년 동안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1996년부터 4년 동안은 SK 전신인 쌍방울에서 감독을 맡으며 약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키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인정받았다.

    -스타선수가 별로 없던 태평양이나 쌍방울 감독 시절과 비교하면 어땠습니까.

    “태평양이나 쌍방울도 처음 팀을 맡았을 때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선수들이 대체로 단체의식이 없었고 여기저기 틈이 많이 보였어요. 1989년 태평양 감독직을 수락한 뒤 인천구장에서 선수들을 처음 봤을 때는, 계약만 하지 않았다면 도로 물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훈련하는 모습이 어찌나 한심한지 서울로 돌아오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신 일단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뒤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죠. LG 때도 그랬듯이 선수들에게 ‘우리는 한팀이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려 노력했고 선수들을 강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때는 지난해 LG에서보다 훈련을 더 많이 했어요. 이후 최창호, 정명원, 박정현 등 좋은 투수들이 나오면서 팀이 강해졌습니다.

    1996년 쌍방울 간판선수는 김기태였죠. 11월 마무리훈련을 하고 소감을 적어내라고 했더니 김기태가 ‘지금 훈련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시즌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일찍 무리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항의였죠. 그런데 정확하게 1년 뒤 같은 방식으로 적어낸 소감에는 ‘이 시기에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썼더군요. 하나씩 고비를 넘기다보니 팀이 바뀐 거죠.”

    -태평양과 쌍방울 시절에도 구단 고위층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굽실거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것은 감독입니다. 감독에게 힘이 없으면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고, 그만큼 팀 전력은 새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되면 정작 그 팀이 구사해야 할 플레이 컬러가 바랩니다. 그래서 구단 사장에게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던 거죠. 이번에도 위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내년 시즌을 위해 적임자라 생각한 코치를 구단에 요청했던 겁니다. 결국 구단에서 끝까지 거부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그 다음날 바로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김감독의 좌우명은 일구이무(一球二無). 김감독의 팬클럽 이름 역시 ‘일구이무’다. ‘공 하나에 두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라는 이 말에는 자기가 선택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감독이 구단에 필요한 코치를 요구한 것도 ‘다음 시즌 성적을 책임지는 것은 다름 아닌 감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구단 책임자와 팀 감독은 역할이 분명히 다릅니다. 종합병원 경영진과 전문의의 관계를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병원 경영진이 나서 ‘이런 약을 써라, 저런 약을 써라’ 하고 간섭하면 제대로 의술을 발휘할 수 없을 겁니다. 야구 감독도 마찬가지죠. 팀을 운영하고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