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골프장 교통 문제, 할 말 있다!

  • 박용훈 도시교통연구소 소장, 방송인

    입력2006-11-06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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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장 교통 문제, 할 말 있다!
    요즘 주말 골퍼들에겐 타수를 줄이는 것보다 골프장 오가는 일이 더 걱정인가 보다. 이른 아침엔 티오프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허둥대고 오느라 정신이 없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도착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막혀 짜증스럽다.

    그러다 보니 골퍼들은 늘 교통 문제로 고민한다. 계획된 도로가 뚫리면 회원권 값도 뛸 텐데, 지금이라도 잡아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다 교통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아무리 교통난이 심각하다 해도 골프장에 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필자는 골프장에 가면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는다. 첫째 이유는 나의 엽기적인 플레이다. 버디 기회에 항상 보기를 기록하는 징크스가 그렇고, 공이 카트 도로를 너무 자주 타는 것도 말을 만든다. “직업은 못 속인다”는 것이다. 드라이브에서 퍼트에 이르기까지 항상 2%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자칭 고수’들의 현장 코멘트가 끊이질 않는다.

    말을 많이 듣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안면이 있건 없건 마주치는 사람마다 필자에게 교통 문제를 빨리 해결해달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몇 시간을 허비했다느니, 물어물어 겨우 왔다느니 하면서 갖가지 푸념이 그치질 않는다. 대개는 도로소통 문제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표지나 안전시설, 심지어 주차장 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 또한 고객의 한 사람으로서 불만이 샘솟는다. 길을 만드는 거야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지만, 장소를 안내하거나 안전을 지켜주는 시설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못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골프장 교통 문제, 할 말 있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톨게이트에 있는 골프장 안내표지판.

    여기저기 부킹을 부탁하다 겨우 확약을 얻어내어 찾아가는 골프장은 낯선 곳에 있기 일쑤다. 내비게이션을 보며 찾아가는 사람이야 마음 편할지 몰라도 지도나 약도를 들고 도로표지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찾아가는 이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이른 아침, 약속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이정표마저 인색한 초행길을 달리자면 푸념과 원망이 동시에 쏟아진다. 도로망이 바뀐 지 오래인데 수년 전에 만들어놓은 약도를 홈페이지에 그대로 실어놓거나, 약도인지 추상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대충 그려놓은 무성의함은 주말 골퍼들의 혈압을 펌프질한다.

    표지는 한술 더 뜬다. 원래 도로표지는 초행길의 운전자를 기준으로 위치를 선정하고 정보를 줘야 한다. 그런데 표지가 들쭉날쭉 있어야 할 곳엔 없고 없어도 될 곳엔 두세 개씩 있다. 길을 안내하기 위한 것인지 광고를 위해 목 좋은 데 세워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게다가 스폰서별로 로고와 브랜드를 싣다 보니 표지의 형식이나 내용이 제각각이고 남은 거리 표시나 화살표의 방향이 틀린 경우도 부지기수다.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주차장 출입 동선을 사고가 나기 십상으로 설계한 골프장이 적지 않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불필요하게 많이 돌아가는 경우는 셀 수도 없다.

    접근로 안전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골프장이라는 게 본래 평지보다는 산 중턱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접근하는 길이 좋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만찮은 경사에 구불구불 커브길이 많아 가뜩이나 시간에 쫓겨 골프장을 찾는 차량은 교통사고를 낼 가능성이 다분한데, 반사경이나 선형유도시설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곳은 새벽이나 날씨가 나쁠 때 가자면 사고 위험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실제로 가평이나 광주 등 경기도 소재 골프장 주변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진입로 도로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 새벽에 발생했다. 물론 운전자의 과실이 크지만 불량한 도로환경 개선에 소홀한 골프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선입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골프장은 대체로 카트길 관리도 엉망이다. 캐디에게 물어보면 아니나다를까 크고 작은 카트 사고 얘기가 쏟아진다.

    요즘에는 골프장에 갈 때마다 한 가지 다짐을 한다. 조만간 전국의 골프장 안내표지판 디자인을 통일하고 시설을 정비하는 등 골프장과 관련된 교통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서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다 그렇듯 실행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골프장에 갈 때는 확고하던 다짐이 18홀을 돌다 보면 ‘망각의 강’이 아닌 ‘망각의 홀’로 빠져버린다.

    그래서 이제는 다짐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바꿨다. 내가 싱글이 되거나 홀인원을 하는 날, 그동안 미뤄온 일에 바로 착수하겠다고 말이다. 이미 내 뜻에 동참하는 사람도 10여 명은 되는 듯하고 여기저기 공언을 해두었으니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그런데 그 시점이 과연 언제가 되려나?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 주님만이 아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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