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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의사들

떠돌이, 신용불량, 자살…“야간분만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

  • 이은영 신동아 전속기고가 donga4587@hanmail.net

몰락하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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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의사들

2007년 8월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성분명 처방’ 방침에 반발해 벌인 휴진 투쟁에 동참해 문을 닫은 서울 홍제동의 한 병원.

2006년 자살한 강남의 산부인과 여의사는 병원이 잘되는데도 자살했어요. 인근 지역에 병원을 선전하고 매스컴에 광고를 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썼더라고요. 또 동업자가 그만두면서 ‘내 지분을 빼달라’고 하자 스트레스를 받았고, 불면증 때문에 프로포폴을 사용하다 결국 그걸로 자살해버렸어요.

얼마 전 ‘명기를 꿈꾸는 여인들을 위하여’라는 책의 저자이자 강남 M여성의원 원장인 M씨가 석시콜린이라는 근육이완제로 자살했어요. 우울증이 원인이었어요. 근육이 수축했다 이완했다 하면서 호흡이 이뤄지는데, 석시콜린을 과다 주입하면 근육이 다 풀어져 호흡을 못하게 되는 거죠. M원장은 오른쪽 손목에 수차례 주사를 놓은 흔적으로 봐서 자살이 명확해 부검까지는 하지 않았어요. 석시콜린을 쓰면 호흡을 서서히 못하게 되므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무척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내도 신용불량자 전락

박 부검의는 의사들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의사들은 살면서 위기관리에 대해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잖아요. 의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주변에서 대우만 받아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 번도 멸시당하거나 내몰려본 적이 없어요. 남자가 전문의 따고 군대 갔다 오면 30대 초반이 됩니다. 전문의 딸 때까지의 생활을 생각해보세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병원에서만 살았을 거예요. 오로지 병과 환자만 봤지 사회의 톱니바퀴를 느낄 시간이 없었잖아요. 사회적 스트레스에 단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었을 것이고, 엘리트 의식에 취해 살았을 겁니다. 한국의 부모들, 자식이 의대를 다니면 공부만 하게 하지 집안의 고민이나 고통을 공유하게 하지 않아요. 또 의사들이 투쟁에 약해요. 의료사고가 터지면 국과수 부검결과가 나오기 전에 병원은 망해버립니다.”



월급의사의 길도 험난하다. 병원 경영에 실패한 의사는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면서 일하는 ‘페이닥터’의 길을 선택한다. 10년 전만 해도 지역의 준(準)종합병원 취직을 시시하게 여기던 의사들. 하지만 요즘은 평균 4.5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겨우 취직할 수 있다.

최근 장기불황 여파로 폐업신고를 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저출산 추세에 직격탄을 맞은 산부인과의 폐업이 눈에 띈다. 폐업하는 병원이 개업하는 병원보다 많아 지난해의 경우 90여 군데가 문을 열었고 120군데가 문을 닫았다. 전국적으로 연간 진료비가 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산부인과가 51.8%에 이른다.

산부인과 의사가 ‘보따리 의사’로 전락하는 건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그들은 “병원 개업하는 것보다 야간분만 당직이나 ‘땜빵’ 당직 아르바이트 벌이가 더 낫다”고 까놓고 말한다.

서울 도봉구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했다가 2년 만에 문을 닫고 3년째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다는 산부인과 전문의 이모(41)씨의 얘기다.

“요즘 절박해요. 산부인과는 취업이 잘 안 돼요. 분만 전문 병원에 계약직으로 취직하면 5~6년간 월 700만~800만원 받으니 괜찮은 편이에요. 그런데 그것도 마흔이 되면 끝이에요. 병원측이 부담스러워하는 거죠. 월급을 올려주기 싫으니 잘라버려요. 병원 지분을 가진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죠. 값싼 30대 의사가 많잖아요. 저도 그런 경우였어요. 개업한 지 2년 만에 문을 닫고 분당의 모 산부인과에서 1년, 구리에서 1년, 광명에서 1년씩 돌았어요. 요즘은 서울 도심지 모 산부인과에서 야간분만 당직 아르바이트로 하루 저녁에 20만~30만원 받으면서 일해요. 한 달에 25일 일하면 700만원을 벌 수 있어요. (월급의사보다) 훨씬 나은 거죠. 낮에는 실컷 잘 수도 있고….”

최근 병원의 대형화 추세로 지역마다 중소병원이 늘면서 의사들이 지분 참여를 통해 병원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사들은 “계약조건이 의사를 신용불량자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한다”고 반발한다. 자칫 병원이 금융부채를 막지 못한다면 경영에 참여한 의사들이 고스란히 빚더미에 앉을 수 있기 때문. 소액 지분을 가졌음에도 대표원장직을 맡게 해 경영부채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우는 계약이 많다고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3, 4명이 병원을 차리려고 모이면 이 중 2명은 신용불량자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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