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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58주년 특집

사학자 이현희 교수가 겪은 전란 속 서울

눈 부릅뜬 시체더미, 남녀 포로 나체 연행… 30년보다 긴 3개월

  •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한국근현대사 jookdang37@naver.com / 일러스트 박진영

사학자 이현희 교수가 겪은 전란 속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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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6월25일, 비극은 시작됐다. 너나없이 봇짐 하나 달랑 이고 남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누구는 다리 하나를, 누구는 목숨을 잃었다.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시민도 수두룩했다. 이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위태로운 시간을 조마조마하게 견뎌야 했다. 사학자 이현희 교수도 그 가운데 하나. 당시 13세이던 그는 인민군 치하의 3개월을 소년의 감성으로 꼼꼼히 기록했다. 포탄이 터지고 불길이 치솟을 때 2층 다다미방에서 숨죽이거나 옆집 방공호에 납작 엎드린 채 적어내려 갔다. 이를 정리, 요약해 공개한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인민군 쳐들어오다

사학자 이현희 교수가 겪은 전란 속 서울
이웃 사는 북성초등학교 동창생 김진희가 새벽에 달려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는 “북의 김일성이 인민군을 앞세우고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보았다. 북아현동 일대에 트럭이 붕붕대며 뿌연 먼지 속을 내달렸다. 38선 근처에서 종종 벌어지던 인민군과의 크고 작은 충돌일 것이라고 믿었으나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가족과 동네사람들 모두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서대문 로터리로 달려갔다. 개성 동두천 파주 등지에서 인민군을 물리쳤다는 호외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이웃의 초등학교 동창생 이강석이네를 찾아갔다. 그는 서울중학교 신입생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이기붕 서울시장을 통해 사정을 알아보려 했으나 집에 아무도 없어 발걸음을 되돌렸다. 라디오에서는 우리 국군이 38선에서 인민군을 북으로 몰아내고 있으니 염려 말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내 중심에는 군용차와 트럭이 바쁘게 움직이고 백차에서 “군인은 즉시 부대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이날 정부의 포고문은 ‘군경을 신뢰하고 시민은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고 동요치 말라’고 한다. 그렇게 됐으면 좋으련만….

6월 26일 월요일, 전쟁 중 수업

오늘자 조선일보는 ‘이북 북괴 불법 남침, 25일 아침 38선 전선에서’라는 기사를 냈다. 남침이 확인된 것이다. 나는 학교(양정중)로 가서 수업을 받았다. 이영규 선생의 공민과 최영보 선생의 국어시간까지는 마쳤다. 최 선생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라고 교직자다운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간간이 총성과 포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도 도망가야 산다더라. 서울이 곧 김일성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라는 이런저런 불안한 뜬소문이 무성하다. 정확히 사태를 알려주는 이는 없다. 궁금증이 더해간다.

수업도 중단되어 모두 뿔뿔이 헤어져 집으로 가자는 말이 나왔다. 정세가 불안해 국군 지휘관들이 긴급회의에 들어가 남침 방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옹진반도가 김일성 수중에 들어갔다고도 한다. 개성이 떨어졌고 의정부 동두천 파주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교사인 아버지는 라디오가 전하는 ‘유엔군이 우리를 도와준다’는 소식에 안심하는 눈치다. 트루먼 미 대통령도 한국을 지원하라고 명령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서울에 뿌려진 헌병사령관과 서울시경국장의 포고문의 ‘군경을 믿으라’는 말을 서울시민들은 다 믿는 것 같다.

텅텅 빈 이기붕 시장의 집

6월 27일 화요일, “서울 사수”

날렵한 소련제 야크기가 서울 일대에 마구잡이 폭격을 하고 있다. 귀가 찢어질 듯하다. 비를 맞으면서 옷이며 가재도구를 앞마당에 파묻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은 사수할 것이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한다. 믿어야지 않겠나 싶다. 의정부를 탈환하고 국군이 북진하고 있으니 서울 시민은 동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능안(북아현동)의 이기붕 시장 아들 이강석이네를 다시 찾았으나 집은 텅텅 비었다. ‘아차’ 싶었다. 우리도 피란을 가야할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통령이 서울을 지킨다고 했는데 왜 도망가느냐”고 태연하다. 신성모 국무총리 서리는 정부를 수원으로 옮긴다고 발표해 정부의 발표가 들쭉날쭉하다. 저녁에는 수원 이동을 부인하고 서울을 지키기로 했다며 발표를 번복했다. 의정부와 동두천을 되찾았다고도 한다. 믿을 수가 없다.

우리 옆집의 전예용 서울시 부시장도 벌써 보따리 싸서 줄행랑을 쳤다. 조용한 것을 보니 틀림없이 피란을 간 것이다. 높은 분들은 시민을 버려두고 저만 살겠다고 다 도망쳤다. 서울을 사수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불안하다. 서민은,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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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한국근현대사 jookdang37@naver.com / 일러스트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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