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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포클레인과의 전쟁… “뒷짐 지지 마! 악다구니로 막아!”

  • 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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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십리. 도읍 자리를 정하러 가는 승려에게 도사가 나타나“한 10리쯤 돌아가야 할 것”이라 했대서 붙여진 이름이라던가. 서울의 한쪽 구석 공장지대가 되어 수많은 사람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버텨내던 이곳에선, 요즘 뉴타운 재개발 바람을 타고 싸움이 한창이다. 철거용역업체 직원들과 왕십리2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집주인도 아니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무슨 권리가 있다고 저리 버티고 있을까.’ 싸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든다. 공연한 떼쓰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생존을 위한 투쟁일까. “법대로 집행되지 않아 그냥 버틸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신산한 삶 속으로, 그들이 가진 왕십리의 추억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 보았다.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1. “이모, 막다간 우리 둘 다 다쳐”

옥양목처럼 눈부신 날, 허물어진 건물 앞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을볕을 쬐고 있다. 얼굴이 쪼그라든 할머니는 어디에서 찾았는지 집 짓는 데 쓰이는 스티로폼을 깔고 웅크리고 앉는다. 야구 모자로 얼굴을 가린 젊은 애기엄마는 고무줄놀이 하듯 한쪽 벽이 없는 건물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팔짱을 끼고 선 서너 명의 표정이 ‘성북동 비둘기’처럼 불안하다. 연신 손 깍지를 꼈다 풀었다 하는 중년 아줌마의 아랫입술에 흰 각질이 가득하다. ‘아시바’(안전펜스장치) 작업이 한창인 왕십리 2구역 주차장 풍경이다.

건물 맞은편 골목에도 그만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검정 상하의를 걸친 건장한 남자들이 ‘왕십리 2구역 세입자 대책위’라고 적힌 붉은 조끼를 입은 여자들과 마주서서 이야기하다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주인이 버리고 갔다는 흰 발바리가 연신 꼬리를 흔든다. 광대뼈가 도드라지게 웃던 여자가 한 남자에게 묻는다. 시장에서 콩나물 값 깎을 때 짓는 표정이다.

“삼촌, 물어볼 게 있는데 말야. 장비(포클레인) 언제 들어오는 지 알아?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이번 주에 들어오는 거 맞지?”

“에구머니나 어찌 아셨수? 아마 이번 주에는 올 거야. 오늘 아시바 치면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오겠지. 근데 이모, 오면 뭐할 건데? 설마 지난번처럼 막진 않겠지? 괜히 그랬다간 이모 몸만 다치니까 막을 생각일랑 말어. 막다간 우리 둘 다 다치는 거야. 크게 다친다구.”

검은 옷의 사내들은 철거반 용역직원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서로 적(敵)인 셈. 말을 이어나가는 용역직원은 영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그럼 목요일 금요일에는 비상(문자) 때려야겠네. 삼촌들도 알다시피, 세 들어 사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어? 오늘도 조금 막는 척하다가 그냥 하라고 냅두잖아. 그래도 장비 오면 진짜 철거하는 거니까 어떻게든 막아야지 않겠냐고.”

소처럼 멀건 눈망울의 젊은 엄마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삼촌들도 보면 알잖아요. 우리가 무작정 떼쓰는 것도 아니고 법대로 하자는 건데, 조합이 너무하는 거라고 봐요, 정말. 둘 다(주거대책비, 임대주택입주권) 안 해주는 날엔 끝까지 갈 거예요, 두고 보라고 해요 어디.”

철거가 진행된 지난 6월부터 얼굴을 트고 지냈으니 아무리 세입자, 철거 용역직원이라도 정들 만도 하다. 적대 관계가 익숙하지 않은 아줌마들에겐 누군가를 무작정 미워하는 일이 쉽지 않은 듯했다. 곰돌이, 삼땡, 백상어, 대머리…. 철거요원들에게 저마다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며칠 전 대머리는 흑까치가 됐다. 한 세입자가 “혹시 별명을 듣고 상처받을 만한 별명은 짓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 뒤부터다.

얘기가 통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번에는 허심탄회한 부탁이 오간다.

“우리도 삼촌 입장 다 알아. 그러니까 우리 사정 좀 봐서 철거 좀 늦춰줘.”

“이모 사정 아니까…. 노력해 보긴 하겠는데 쉽진 않아, 이게 직업인 걸. (지나가는 중년여자를 보며) 이모, 그 부침개 맛있게 잘 먹었어요, 엄마가 해준 것처럼 맛있더라….”

말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자리를 떠나려던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낮춘다.

“글구 이모네 프락치나 좀 잡아. 우리한테 자꾸 정보 주는 사람이 있어. 대책위원회 직위고 전화번호고 다 가지고 있던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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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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