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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일평생 여성 위한 법률활동으로 이어진 사제의 연

“네가 왜 방송국에 있느냐, 상담소에 와야지”

  •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kbh@lawhome.or.kr

일평생 여성 위한 법률활동으로 이어진 사제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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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여대 법대 학장으로 계시던 이태영 선생님으로부터 여성과 서민을 위한 법을 배우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선생님이 만드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지금은 선생님의 뒤를 이어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는 내 일생의 자랑이자 행복이다.
일평생 여성 위한 법률활동으로 이어진 사제의 연

이태영 선생님(오른쪽)은 내게 평생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었을 뿐 아니라 평생 함께할 남편과의 연을 만들어주셨다.

이태영(李兌榮·1914∼98) 선생님은 변호사, 학장, 소장 등 여러 직함을 지니셨고, 무엇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설자이자 초대 소장으로서 우리 사회에 기억되고 있다. 또한 내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신 평생의 스승이시다.

올해로 내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문을 들어선 지 서른세 해가 되었다. 어느덧 인생의 반 이상을 상담소와 함께한 셈이다. 더구나 선생님의 뒤를 이어 소장을 맡고 있으니 나와 선생님의 인연은 누구보다 깊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17일 선생님의 7주기 추모식을 마친 후 여느 해처럼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선생님을 뵈러 갔다. 벌써 7년이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던 1998년 12월 그날을 생각했다. 연말이 되어 선생님을 찾아뵌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선생님은 당신의 지식과 재능을 불행한 여성을 위해, 사회를 위해 쏟아부으신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참된 지식인이셨다. 그러나 그러한 지성과 열정도 무심한 세월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듯,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으로 고통 받으셨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안타깝고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대학에 입학하던 1965년이었다. 1963년부터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으로 재직 중이셨던 선생님은 이미 너무 큰 어른이라 처음엔 가까이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성 최초 고등고시 합격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하신 선생님은 서울대학교에 여학생 입학이 허용되자 첫 서울대 법대 여학생이 되었고,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최초로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거부로 소원(所願)하셨던 판사 임용이 불가능해지자 변호사가 되어 무료 법률상담을 시작, 여성의 권익 증진을 위해 애쓰셨다. 더구나 그 모든 일을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되신 이후에 해내셨다는 사실에서 선생님은 이미 하나의 전설이었다.

선생님은 당신의 저서 ‘나의 만남 나의 인생’에서 이화여대 법정대학장 시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날짜도 분명히 기억된다. 1963년 6월1일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이 내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중략) 법정대학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얼굴만 내밀고 학교 복도를 왔다갔다해달라는 것이었다. ‘나같이 나이 많은 가정주부도 고등고시에 합격했는데 너희들은 어찌 못 하겠느냐’는 시범 케이스로서… (중략)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8월16일 아침에 4년 임기만 한번 해보기로 약속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대학 학장의 길에 들어섰다.”

학장을 맡으신 선생님은 이화여대 법정대학에 일대 쇄신을 일으켰다. 먼저 학생들 스스로 법정대학 학생임에 자부심을 갖도록 배지를 달라고 하셨으며, 법정대학 건물을 권위 있는 본관으로 옮기고 모의법정을 만드셨고, 법정대학 전용 도서실과 고시 준비실도 마련하셨다. 선생님의 열정과 김옥길 당시 총장의 흔쾌한 뒷받침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또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커리큘럼인 법률임상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등 여성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여성지도자를 키우고, 넓은 의미의 여성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교과목을 개편했다. 법률임상교육이란 법의 평등화, 법의 서민화를 이루기 위해 법을 통한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이론과 실무 교육을 겸하는 법학교육의 새로운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법정대학이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할 때 입학하게 된 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선생님은 너무 크신 분이어서 신입생 시절에는 그저 멀리서 뵙기만 해도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곤 했다. 그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금도 ‘인형의 집’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던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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