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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서울은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사회

길거리 간판만 봐도 안다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서울은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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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에서 서울로 삶의 근거지를 바꾸자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에 느껴지는 것 등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만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했다.
서울은 목소리 ‘큰놈’이 이기는 사회
지난해 가을 나는 도쿄에서 며칠을 보냈다. 도쿄의 가을은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쾌적했고, 나는 평안했다.

그때 프랑스와 일본의 문화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불일(佛日)회관’이 개최한 ‘정체성, 민주주의, 세계화’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여러 명의 프랑스 유학파 학자가 모여들었다. 그 행사 내용을 여기서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그 모임을 주관한 일본학자 미우라 노부다카가 나를 다른 일본 학자들에게 소개한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는 나를 자신의 동료들에게 ‘프랑스화된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를 그렇게 소개함으로써 내가 전형적인 한국 사람과는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나는 17년이란 세월을 파리의 하늘 아래 살면서 어떻게 ‘프랑스화’되었을까? 아마도 내 친구인 미우라는 일본인 동료들에게 내가 형식적인 예절을 잘 지키지 않고 자기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상대방의 나이나 직위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대등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리려고 했을 것이다.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파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나의 몸속에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면서 나도 모르게 익힌 보이지 않는 습관들이 녹아 있을 것이다. 파리에서 서울로 삶의 근거지를 바꾸자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에 느껴지는 것 등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만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했다.

파리는 정신적 자유가 보장된 해방의 공간이고 서울은 억압의 공간이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서울을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듯이 파리가 이상적 도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일정한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문맥 속에서 만들어진 도시 공간 속에서 그런 맥락에서 형성된 삶의 방식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지난 호에서도 말했지만 이 글을 쓴 나의 관점은 인류학자의 그것이다. 인류학자는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보는 자”이다. 그는 남들이 공유하는 관습과 관행과 행동 양식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그 기원과 의미, 기능성과 역기능성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그네, 방랑자, 망명객, 유배자와 마찬가지로 기꺼이 즐거운 일상의 관찰자가 된다. 그는 주어진 당연의 세계와 물론의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 인류학자에게는 신처럼 세상을 만들거나 바꿀 힘이 없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사람들은 왜 저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파리에서 서울로 삶의 공간 이동은 나에게 두 도시를 비교할 수 있는 인류학자의 시선을 제공했다.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삶의 장소를 바꾼 데카르트가 최종적 진실을 유보하고 자신과 세계를 끝없는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듯이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아온 인류학자에게 서울과 파리는 끝없는 비교와 관찰의 대상이다.

두 도시를 오가며 살다보면 저절로 비교의 관점이 생긴다. 파리에서는 서울이 비교의 대상이 되고 서울에서는 파리가 비교의 대상이 된다. 나는 서구중심주의자가 되어 서울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민족주의자가 되어 파리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비서구를 서구의 관점에서 아직 덜 진화한 세상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은 비판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똑같이 비서구의 관점에서 서구를 야만과 폭력과 퇴폐의 세상으로만 보는 옥시덴탈리즘의 관점도 경계해야 한다. 개화기에 쇄국을 주장하던 동도서기(東道西器)론자들은 서양 사람들은 ‘에미 애비’도 모르고 임금도 모르는 야만인들, 자기의 물질적 이익과 육체적 쾌락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들, 무력으로 남을 짓밟는 짐승 같은 놈들로 보았다. 오늘날 서양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비판하던 서양의 모습에 가깝게 다가가지 않았는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그토록 부르짖었던 인권과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건너온 사상이 아니었던가?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아파트가 다 서양에서 물 건너온 것들 아닌가? 이제 감상적 민족주의도 서구중심주의도 모두 벗어버리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서울 거리에서 만나는 사소한 풍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해석해보자.

풍경 #10 서울 시내의 간판문화

서울 거리가 파리 거리에 비해 정신이 없고 어지러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혼란스러운 간판 문화가 차지하고 있다. 크기와 색채에서 주변과 무관하게 자기만 내세우는 간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서울 사람들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든다.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눈에 띄면 이긴다”는 말이 간판 문화의 원칙이다. 서울에 밤이 오면 요란한 간판 문화는 절정에 달한다. 알록달록한 네온사인과 번쩍이는 전광판들은 서울의 밤을 축제 분위기로 만든다. 낮의 질서가 자취를 감추고 밤의 들뜬 분위기가 지배한다. 간판만이 아니라 건물의 외벽도 빛으로 디자인된 옷을 입고 현란한 무늬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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