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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클래식 다방의 추억

클래식 다방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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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에 자주 드나들던 대학생 중에 기억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몸이 삐쩍 마르고 얼굴빛이 하얗던 그 대학생에게는 뭔지 모를 신기(神氣) 같은 것이 느껴졌다. 친구로부터 그가 다방에서 베토벤의 ‘운명’에 맞추어 지휘를 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좀처럼 그 현장을 목격하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다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드디어 그 광경을 목격했다. 듣던 대로 베토벤의 ‘운명’이 흐르고 있었고 그는 다방 한구석에서 신들린 듯 지휘를 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앞에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기라도 한 듯, 그는 손님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휘에만 열중했다. 얼마나 열심히 ‘운명’을 들었는지 각각의 악기가 나올 차례에 정확히 신호를 주는 것이 한두 달 연습한 솜씨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멋지다기보다는 처절하다는 느낌에 목이 콱 막혀왔다. 그저 젊은 날의 치기로 웃어넘길 수 없는 처절한 목마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토록 음악에 열중하게 만들었을까.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음악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자가 베토벤의 ‘운명’을 4악장까지 지휘하겠다고 죽기살기로 마음먹고, 마치 시험공부를 하듯이 죽기살기로 외우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기살기로 지휘를 감행한 것. 그 상황이 그렇게 처절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랬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그렇게 처절하게, 죽기살기로 문학과 예술에 열중했다.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예술 나부랭이를 배우고 즐길 여유조차 없던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콤플렉스를 기필코 극복해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각오로 그렇게 한풀이를 했던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나는 비교적 형편이 나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워 음악전공자로서 마음껏 꿈을 펼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것조차 버거운 내게 무슨 미래가 있을까. 그저 목숨같이 소중한 음악을 죽기살기로 짝사랑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 나는 음악을 듣는 일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대학 3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 이삭에서 사귀던 순수파와도, 그들과 함께 듣던 클래식 음악과도 결별을 고한 채 나는 ‘클래식을 즐기는 것은 나이브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하는 이른바 참여파와 어울렸다. 오페라 아리아 대신 당대 유일의 앙가주망 음악이었던 운동가요를 부르며 대학생활의 후반부를 보낸 것이다. 그때 나의 감성과 나를 둘러싼 현실 사이에서 몹시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클래식에 목숨을 걸었던 대학생활의 1막과,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대학생활의 2막. 완전히 상반된 세계인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세계 사이에는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세월 좋은’ 시절에는 볼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음악이란 목숨 걸고 들어야 하는 것도, 목숨 걸고 듣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 시절은 항상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정말 세월이 좋아진 것 같다. 그렇다면 목숨 걸고 음악을 들을 필요도, 또 목숨 걸고 음악을 외면할 필요도 없는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행복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상 요즘 아이들인 내 딸들을 보면서 나는 이 질문을 마치 화두(話頭)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신동아 200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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