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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신철수

‘국어 달인’ 울린 ‘국어 지존’의 준엄한 충고 “다시는 학교 올 생각 마라”

  •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 chjoo@ehwa.ac.kr

신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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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수

동북중학교 재학 시절(오른쪽) 나는 신철수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이후 선생님의 조언 덕택에 나는 ‘글 쓰는 PD’로 이름을 날렸다.

고려대 국문과에 지원한 건 배짱지원에 가까웠다. 실력이 많이 모자랐음에도 선생님은 기꺼이 원서를 써주시며 “넌 국어 하나는 확실하니까 붙을 수도 있어” 하며 희망을 불어넣어주셨다. 나는 내심 후기대학 국문과를 생각해두고 있던 터라 무모한 도전을 그대로 감행했다. 하지만 역시 수학의 문턱은 높았다. 120점 만점에 어이없게도 16점을 맞았다. 그나마 사지선다형 문제가 없었다면 0점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로지 국어 시험을 잘 본 덕으로 나는 무려 9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면접 때 전공주임이시던 정규복 교수님은 “넌 커트라인에 걸려서 들어왔으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 거다”라고 친절하게 내 점수까지 알려주셨다. 그러나 커트라인이면 어떻고 데드라인이면 또 어떤가. 나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선생님 저 국어 하나는 잘합니다. 열심히 해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고 그 약속을 4년 내내 충실히 지켰다.

‘리틀 신철수’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여러 차례 모교를 방문했다. 동북은 이제 더는 내게 똥북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의 든든한 운동장이었다. 선생님은 후배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며 “수학은 16점 국어는 100점” 하시며 흐뭇해하셨다. 모교에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도 신 선생님이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의 국어실력(!)을 기억하시는 교장 선생님은 나를 ‘리틀 신철수’라고 부르며 졸업하면 모교에 오라고 취직 약속까지 하셨다.

문제는 군대였다. 대학 시절 내내 몸무게가 48㎏을 밑돌던 나는 군대 신체검사에서 두 번이나 판정유예를 받았고 세 번째 신검을 받던 4학년 때는 입영 장정 중 가장 낮은 단계의 합격으로 입대가 결정됐다. 그때 나는 하루라도 빨리 교단에 서고 싶었다. 알아보니 군대를 안 갈 수는 없지만 좀 늦게 갈 방도가있었다. 바로 대학원 진학이었다.



나는 교수가 될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과감하게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고 운 좋게 합격했다. 그러나 난 대학원 입학시험보다는 순위고사, 즉 교사임용고시에 더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예닐곱 군데의 학교에서 전화를 받을 만큼 좋은 성적으로 순위고사에 합격했다. 당당히, 아니 당연히 나의 발걸음은 은사님이 계시는 모교로 향했다. 군 미필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당히 정식교사로 임용됐다.

신 선생님은 내가 대학원에 가는 시간을 감안해 수업시간표를 손수 짜주셨다. 그리고 늘 하시는 말씀이 “공부해”였다. 돌아보면 같은 교사 신분이었지만 선생님께 나는 늘 부족한 제자였을 뿐이다. 달콤했던 2년 반이 지나고 드디어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1980년 7월30일 논산 연무대 입대. 선생님은 내가 군복무 하는 동안 휴직할 수 있음에도 굳이 사표를 쓰라고 강권하셨다.

“대학원까지 마쳤는데 네가 원하면 왜 복직이 안 되겠냐. 적은 돈이지만 퇴직금으로 휴가 때 책도 사서 읽어라.”

이게 당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정든 학교를 떠나 훈련소로 향했다.

제대를 두 달 정도 앞두고 휴가 때 모교를 찾았는데 선생님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얼굴 표정부터가 사뭇 달랐다.

“넌 다시 학교로 올 생각 마라.”

한마디로 청천벽력이었다.

“넌 계속 공부해서 대학으로 가라. 너만큼 국어실력이 탄탄한 사람도 드물다. 네가 연구할 국문학 분야가 많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 깊은 사랑이 절절하게 이해되지만 당시엔 엄청난 배신감으로 다가와 여린 나를 혹독하게 찔렀다. 하지만 바로 그날이 내 인생의 갑오경장이 될 줄이야 그때는 까맣게 몰랐다.

선생님에 대해 서운함을 안은 채 하염없이 걷다가 내 발걸음이 머문 곳이 엉뚱하게도 바로 광화문의 옛 문화방송사 자리였다. 젊은이들이 무슨 게시판 앞에 잔뜩 몰려 있어서 다가가 보니 미래 방송의 주역을 찾는다는 내용의 신입사원 모집광고였다. 도대체 방송사에는 어떤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지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맨 위에 국어라고 씌어 있는 게 아닌가. 그 밑에는 수학 대신 영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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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 chjoo@ehw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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