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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신들의 정원

신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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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은 거기까지 왔는데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빨리 돌아가자고 재촉했다. 신들의 정원을 급히 빠져나오며 느닷없이 로빈슨 크루소가 떠올랐다. 그가 떠내려간 무인도에서 겪었을 두려움과 막막함을, 그 섬을 절망도라 이름지은 심정을 그 순간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라나이 신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들은 왜 그렇게 황량한 곳을 정원으로 삼았을까. 그리스의 신들은 위대한 능력과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느라 고독할 틈이 없었을 텐데, 그곳의 신들은 얼마나 외로웠기에 인간의 형상을 한 돌무더기들을 세워놓고 그 곁을 거닐었을까. 신들도 인간을 그리워하는가.

그러고 보니 나를 내내 휩싸던 두려움의 정체는 사람들과 멀리멀리 떨어진 데 대한 불안감이었다. 생명체에 대한 맹목적인 그리움이었다. 아니 좀더 좁혀 말한다면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하던 내 나라 내 이웃 속에 섞이고 싶은 갈망이었다.

나는 낙원의 섬이라고 생각하던 하와이에 있는 ‘신들의 정원’을 벗어나면서 인간의 환상과 현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체가 얼마나 다른지를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것만이 아니다. 환상의 세계가 결코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죽음의 세계라는 사실과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런데 나는 왜 ‘신들의 정원’에 머물렀을 때처럼 홀로 있으면 사람들이 그립지만, 군중 속에서는 왜 때로 고독을 느끼는 걸까. 아마 군중 속의 고독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죽음과 같은 세계에서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하와이를 낙원으로 생각하고 서울을 떠나게 된 것은 휴식의 목적도 있겠지만 내가 서 있는 땅, 아니 내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아온 서울의 고마움을 모르고, 그곳에서 도피하려는 잠재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그날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서 움직이는 현실세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이 고마워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나는 그동안 정말 등잔 밑이 어두운 줄 모르고 살아왔다. 수차례 해외여행을 하며, 이국의 정취와 설렘에 취해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내 나라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가.



이렇게 여행이라는 비현실적인 안락의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서울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서울은 복잡해도 넘치는 생명력 때문에 내일이 있지만, 정적만 머무는 신들의 정원에는 내일이 없다는 것을 가슴이 뻐근하도록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매연에 찌든 공기, 거리의 부산함,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피해 섬을 찾았던 나는 ‘심심한 천국, 재미있는 지옥’이란 책제목처럼 온갖 공해와 소란이 가득한 서울이 몹시 그리웠다.

신동아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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