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에 고향 통영으로 이사 와 적응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부모보다 적응이 빠릅니다.
시골에서 자란 지윤이는 꽃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고 나무를 심는 곳이 제가 사는 곳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어서 꽃씨 심어요.” 이 사람은 부모와 같이 살게 되었고, 부모의 마당과 밭을 함께 쓰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살 때보다 가꿀 땅은 오히려 늘었건만 그 땅이 낯설기만 합니다.
할머니와 꽃씨를 심기로 했다며 신이 난 지윤이가 대뜸 “아빠는 무슨 꽃씨 심으실래요?” 물었습니다. “아빠는 해바라기가 좋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해바라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풍성해진답니다. 해바라기와 키 재기 하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대견했고요. 가진 게 별로 없던 이 사람에게 해바라기는 아주 커다란 보석이었죠.
뜻밖에도 지윤이는 해바라기가 싫다고 합니다. “왜?” “너무 커져서 갖고 놀 수 없어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아이처럼 되물었지요. “사루비아는 뭐가 좋아?” 망설이던 지윤이가 꽃씨 봉지를 살피다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습니다. “사루비아 꽃말은 ‘내 마음은 불타고 있어요’래요.” 그것 하나만으로 사루비아를 심을 이유는 충분하다는 거죠. “그래라. 아빠 마음도 사랑으로 불탔으면 좋겠구나. 비가 내리고 나면 함께 꽃씨를 심자꾸나.”
지윤이가 학교에 간 후에 올봄에는 무슨 씨를 어디에 뿌릴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습니다. 부모님이 무슨 요량을 해두었을 거라 싶어서였습니다. 씨 뿌리는 일로 가족의 복잡한 심기를 어지럽히기 싫었습니다. 지난해 연말에 협심증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대장암 초기로 밝혀져 수술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럴수록 예쁜 꽃을 많이 심어야겠다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이 사람과 생각이 다르답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거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마음대로 꽃씨를 뿌릴 땅 한 뼘도 없구나 싶은 생각에 기운이 쪽 빠졌습니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다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사루비아와 샛노란 해바라기로 가득한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상상 속의 땅에 씨를 뿌리면 되겠다 싶었던 거지요. 그렇게 눈을 감고 한참을 그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지윤이 새끼손톱만한 해바라기 씨를 뿌렸습니다. 그 사이 사이에 사루비아 씨를 뿌리게 씨 뿌린 자리를 표시하면서요. 그리고 해바라기와 지윤이를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새 집에 이사 온 지윤이가 주인공이지요. 어느 따뜻한 봄날, 온 가족이 마당에 꽃씨를 심었습니다. 지윤이는 사루비아, 아빠는 해바라기. 지윤이는 아빠만큼 키가 커지는 해바라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아빠는 해바라기 씨를 하나만 심기로 합니다. 지윤이에게는 해바라기랑 키 재기를 해보라고 하지요. 지윤이가 쑥쑥 자라기를 바란다면서요.
아빠는 말합니다. “지금은 아빠가 해바라기처럼 보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는 점점 작아지고 넌 점점 커지지. 네가 다 자란 해바라기가 되면 아빠를 굽어보게 될 거야. 네게는 아빠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아빠는 정말 마음이 뿌듯할 거야.” 그러나 지윤이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