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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⑨

‘중경삼림(重慶森林)’ ‘첨밀밀(添蜜蜜)’

두 얼굴의 홍콩,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중경삼림(重慶森林)’ ‘첨밀밀(添蜜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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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은 정거장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왔다가 이곳을 떠난다. 이 거리와 바람을 피우거나 정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연애는 하지 않는다.” 1997년 홍콩을 떠나며 영국인들이 남긴 말이다. 영국의 지배가 끝나고 중국에 반환될 시기가 다가오자 홍콩인들은 불안해했다. 홍콩은 오랫동안 중국이면서 중국이 아니었기에. ‘중경삼림’과 ‘첨밀밀’은 한국인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랑 영화지만,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 홍콩인이 겪은 배신감과 피로감, 홍콩과 중국 대륙과의 미묘한 관계가 녹아들어 있다.
‘중경삼림(重慶森林)’ ‘첨밀밀(添蜜蜜)’

홍콩 빅토리아항의 전시·컨벤션센터.

아편전쟁(1840∼42) 때의 일이다. 영국군은 광저우, 상하이 등 남부 주요 도시를 점령한 뒤 1842년 8월 대포를 난징성에 조준한 채 청나라가 항복하기를 재촉한다. 청나라는 영국군이 요구하는 투항 조건이 무엇인지 탐색하려고 흠차대신을 파견한다. 하지만 단 한 차례의 정식 협상도 못 해보고 영국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고 만다. 1842년 8월29일, 난징 앞바다에 정박한 영국군 군함에서 중국 근대 역사상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이 맺어진다.

이 조약으로 조그만 시골 어촌이던 홍콩은 다시 태어난다. 영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때 영국에 넘어간 것은 홍콩이라는 ‘섬’뿐이다. 그런데 이 홍콩 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영국은 1860년에 다시 홍콩 섬과 마주한 주룽(九龍·광둥에선 카오룽으로 발음) 지구를 차지한다. 영국은 1898년에 중국으로부터 주룽 반도 북쪽의 이른바 신제(新界) 지역도 99년간 임차한다.

임대 만료 시기를 앞두고, 영국과 중국은 1982년부터 협상을 진행한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덩샤오핑에게 신제 지역의 조차(租借)기간을 연장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이 중국에 돌려줘야 할 곳은 99년간 임차하기로 한 신주 지역뿐이다. 하지만 신제 지역을 중국에 돌려주고 주룽과 홍콩 섬이 생존할 방법은 없다. 신제는 주룽과 홍콩 섬에 물과 식량 등 생존기반을 공급한다. 덩샤오핑은 영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홍콩 전체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1984년까지 2년에 걸친 중·영 회담 끝에 조차기간이 만료되는 1997년 7월1일에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고, 중국은 50년 동안 홍콩의 현행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 한 나라 안에 두 가지 제도를 시행하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기로 합의한다. 실제 반환협상은 1982년부터 시작됐다. 한 세기 전의 약속이 정말 실행에 옮겨질지 실감하지 못한 홍콩인들은 그때부터 비로소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기 시작한다. 홍콩인들에게 ‘1997’이라는 숫자는 종말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과 초조가 홍콩인들을 사로잡았다. 1980년 이후 홍콩인 40여 만명이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홍콩 영화의 토양은 바로 홍콩의 ‘1997 신드롬’이었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중경삼림(重慶森林)’(1994)은 ‘1997’이라는 임대 만료 시기가 임박한 홍콩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영화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고, 네 명의 주연배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진청우(金城武)와 린칭샤(林靑霞)다. 진청우는 사복형사 223호이고, 린칭샤는 마약밀매상이다. ‘아미’라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진청우는 이별한 그날부터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은다. 그 통조림들의 유통기한은 모두 5월1일이다. 4월30일 저녁에도 유통기한이 2시간밖에 남지 않은 통조림을 찾는다.



홍콩과 통조림

5월1일은 그의 생일이다. 그는 만일 자신의 나이와 같은 30개의 통조림을 다 먹을 때까지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랑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지나는 통조림을 모조리 먹어치운 진청우는 느글느글한 속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러 간다. 술집에 처음 들어온 여자와 사귀기로 마음먹는다. 그 여자가 마약 중개상 린칭샤다. 인도 사람들을 고용해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려던 린칭샤는 공항에서 인도인들이 마약을 가지고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그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둘은 함께 술을 마신다. 취해 곯아떨어진 린칭샤를 호텔에 재운 뒤 진청우는 생일인 5월1일 아침, 몸 안의 눈물을 땀으로 모두 배출하기 위해 조깅을 한다.

그날 아침 린칭샤는 자신을 배신한 보스에게 권총세례를 퍼붓는다. 옆에는 유통기한이 적힌 통조림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권총세례를 받은 보스는 백인이다. 영화에서 린칭샤는 백인 보스에게 배신당하고, 진청우는 애인에게 버림받는다. 진청우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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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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